[먹는 것의 출처] 출처를 추적하고 나서

by 한경수

아홉 번의 추적이 가르쳐 준 것

아홉 편을 썼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중에 그 이름과 그 믿음의 출처를 정확히 아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한 그릇씩, 한 단어씩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무엇이 나오는가.


결과는 의외였다. 출처를 추적하면 보통 두 종류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출처가 너무 작다는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출처가 너무 많다는 풍경이다.


너무 작은 출처들

믿음을 다룬 다섯 편(MSG, 소금, 달걀, 유기농, 야식)에서 가장 자주 마주친 것은 "거대한 믿음과 작은 출처"의 비대칭이었다.

MSG의 공포는 1968년 NEJM에 실린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제대로 된 연구도 아니었다. 한 의사의 개인적 경험을 적은 짧은 글이었다. 그것이 반세기의 식품 공포가 되었다.

소금이 고혈압의 원인이라는 상식은 1960년대 루이스 달의 쥐 실험에서 시작되었다. 정상의 147배에 해당하는 용량을 먹인 쥐들이 고혈압에 걸렸다는 결과였다. 그것이 미국 상원의 식이 권고가 되었고, 전 세계 의사가 환자에게 "짜게 먹지 마세요"라고 말하게 했다.


달걀이 심장에 나쁘다는 믿음은 1967년 NEJM에 실린 리뷰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그 논문은 설탕 업계가 하버드 교수 세 명에게 5만 달러를 주고 의뢰한 것이었다. 그 사실이 드러난 것은 50년 뒤였다.

이 세 편이 모두 같은 구조다. 하나의 작은 사건 — 편지 한 통, 쥐 한 마리, 수표 한 장 — 이 거대한 믿음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자라나는 동안, 사람들은 출처를 잊어버렸다. 출처를 잊어버린 믿음은 검증을 받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믿음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미래에 어떤 식이 상식을 의심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유는, 그 상식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우리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MSG도 소금도 달걀도, 그것이 미신이 되는 순간 누구도 미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너무 많은 출처들

이름을 다룬 네 편(떡볶이, 설렁탕, 김치, 짜장면)에서 가장 자주 마주친 것은 "출처가 너무 많아서 사라지는" 풍경이었다.

떡볶이의 원형은 궁중의 간장 떡찜이었다. 1953년 마복림이라는 한 여성이 신당동에서 고추장을 섞으면서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같은 이름인데 다른 음식이 두 개 있다.

설렁탕의 어원은 네 가지 설이 있다. 선농단설, 몽골어 슐루설, 의성어설, 한자 설농탕설. 어느 것도 정설이 아니다. 출처가 네 개라는 것은 출처가 없다는 것과 같다.


김치는 이름의 출처가 16세기의 침채(沈菜)에 있고, 색의 출처가 17세기 신대륙에서 건너온 고추에 있고, 모양의 출처가 19세기 말의 통배추에 있다. 한 그릇 안에 세 개의 시간이 겹쳐 있다.

짜장면은 1882년 산둥에서 인천으로 건너왔고, 1948년 캐러멜이 들어가면서 단 음식이 되었고, 한자가 잊혔고, 2011년 표기법이 현실에 항복했다. 네 번 변형되었다.


이 네 편을 통과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원래 우리 것"이라고 부를 때, 그 "원래"가 가리키는 시점은 거의 언제나 임의적이다. 떡볶이의 "원래"는 1953년인가, 19세기 말인가, 19세기 초인가. 김치의 "원래"는 16세기인가, 18세기 중반인가, 19세기 말인가. 어느 시점을 골라도 그 이전이 있다. 출처는 언제나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원래"라는 단어는 보통 마케팅의 단어다. 어느 시점을 선택하느냐가 그 음식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학문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다.


두 가지 예외

이 시리즈에는 두 가지 예외가 있었다.

7편 유기농은 다른 다섯 편의 B계열과 정반대 구조였다. 출처는 분명하고 거대했다. 240편의 메타분석. 343편의 후속 메타분석.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데 시장은 반대로 갔다. 사람들이 유기농을 사는 진짜 이유가 영양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타분석은 영양에 관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의 믿음은 영양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출처와 믿음이 다른 곳에서 작동하는 경우다.


9편 야식도 다른 편들과 달랐다. "밤에 먹으면 살찐다"는 결론은 부분적으로 옳았다. 그런데 그 결론에 도달하는 추론이 옳지 않았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메커니즘 — 잠자는 동안 칼로리가 안 빠져나가서 — 은 사실이 아니다. 진짜 메커니즘은 생체시계에 있다. 결론은 같은데 추론이 다른 경우다.

이 두 편이 가르쳐 준 것은, 출처 추적이 항상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믿음은 출처가 명확한데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믿음은 결론이 옳기 때문에 잘못된 추론이 검증받지 않고 함께 살아남는다. 추적은 시작일 뿐이고, 추적이 끝났다고 해서 무엇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추적이 가르쳐 준 것

아홉 편을 쓰고 나서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무엇을 듣거나 읽을 때, "이 문장의 출처는 어디인가"를 한 번 묻는 습관이다.

이 질문은 언제나 답을 주지는 않는다. 어떤 출처는 추적할 수 있고, 어떤 출처는 추적할 수 없다. 어떤 출처는 너무 작아서 놀랍고, 어떤 출처는 너무 많아서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질문 자체가 사라지면, 우리는 들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아마도 가장 위험한 상태다.


이 시리즈는 음식에 관한 글이지만, 사실 음식에 관한 글이 아니다. 음식은 가장 친숙한 영역이다. 매일 먹고, 매일 보고, 매일 이야기한다. 그 친숙한 영역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것이 이렇게 많다면, 정치, 경제, 역사, 과학 같은 더 멀고 큰 영역에서는 어떨까. 출처를 모르는 채 받아들인 것들이 우리 머릿속에 얼마나 쌓여 있을까.


이 질문은 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답이 없는 질문이 가장 오래 머무는 질문이기도 하다.

당연한 것들의 출처는, 추적해 보면 거의 언제나 의외의 곳에 있다. 너무 작거나, 너무 많거나, 너무 멀거나, 어쩌면 우리 자신의 추론 안에 있다. 출처를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출처를 묻기 시작하면, 적어도 우리는 들은 것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 한 번이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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