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대화가 나를 데려간 곳

by 한경수

1편에서 느슨하게 시작하면 연결이 일어난다는 것을, 2편에서 도메인 한 마디가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마지막 편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본다. 이 대화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갔는가.


대화 전의 나

37년간 통계학을 가르쳤다. 15년간 뭔가가 빠져 있다는 걸 느꼈다. 학생들에게 데이터를 주면 식상한 분석만 나왔다. 도구는 가르쳤는데 발견이 없었다. 문제는 명확했다. 이름이 없었다.

"학생들이 질문을 못 한다"고 말하면 동료들은 "원래 그렇지"라고 했다.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발견을 못 한다"고 말하면 "도메인 지식이 없으니까"라고 했다. 둘 다 맞는 말이었고, 그래서 더 답이 없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37년의 불편함에 이름이 없는 채로 끝날 수도 있었다.


DRIP이라는 이름

2025년 3월, AI와 대화하다가 이름이 붙었다. DRIP. Data — Resonance — Insight — Problem.

느슨하게 시작한 대화에서 나왔다. DRIP 프로젝트 안에서 나온 게 아니다. 프로젝트가 아직 없었으니까. 바둑 이야기를 하다가, 여행 사진을 보여주다가, 조선 왕 수명을 분석하다가, 족보 데이터를 찾다가 —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실로 꿰어지는 순간이 왔다. 데이터를 먼저 만나고, 거기서 "어?"라고 느끼고, 그 느낌을 질문으로 바꾸는 구조. 15년간 이름 없이 떠돌던 문제에 이름이 생겼다.

느슨한 대화가 아니었으면 이 이름이 나왔을까? 모르겠다. 다만 바둑에서 철학으로, 철학에서 여행 사진으로, 사진에서 족보로 — 경계 없이 넘나드는 대화에서 연결이 일어났다는 건 확실하다.


네 시리즈, 21편

DRIP에 이름이 붙은 뒤, 대화가 글이 되었다. 글이 시리즈가 되었다.

"전통이 될 수 없는 것" 8편. 조선 어의의 비유에서 시작해서 통계교육의 구조적 공백을 드러내고, 37년의 여정으로 닫았다. "바둑 기보는 이미지다" 5편. 기보를 이미지로 보는 관점 전환에서 시작해서, AI의 비판을 도메인 지식으로 무너뜨리고, 깊이가 먼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로또 번호는 숫자가 아니다" 4편. 범주형 자료에서 시작해서, 인간의 범주적 인지, 무작위 시 생성, 하나의 데이터셋에서 통계학 전체가 나오는 풍경까지 갔다. "지도무난(至道無難)" 3편. 신심명의 간택에서 시작해서, 법성게의 부동, 조정래 문학관의 삼분 구조까지 갔다.

네 시리즈, 21편. 다른 입구에서 출발해서 같은 곳에 도착한다. 도구가 아니라 질문이 먼저. 결과가 아니라 후속 질문이 인사이트. 깊이가 먼저.

이 21편 전체가 하나의 느슨한 대화에서 나왔다.


대화 후의 나

달라진 것이 있다.

첫째, 15년간 이름 없던 문제에 이름이 생겼다. 이름이 생기니 보이기 시작했다. PPDAC가 왜 교실에서 안 되는지, GAISE가 왜 20년간 실행이 안 되는지, 학생이 서툰 보고서를 쓰는 게 왜 실패가 아니라 공명의 시작인지. 전부 경험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말로 못 했던 것들이, 이제 구조 안에서 설명 가능해졌다.

둘째, 내가 조선 왕실의 어의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방법의 학문"이라는 전통의학을 처방하면서, 학생들의 인사이트 도출 능력이라는 수명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이걸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인정한 후에야 다른 것을 시도할 수 있었다.

셋째, 깊이의 쓸모가 바뀌었다는 걸 체감했다. 예전에는 깊이가 답을 내는 데 쓰였다. 지금은 깊이가 AI의 답을 검증하는 데 쓰인다. 바둑 프로젝트에서 그걸 몸으로 경험했다. AI의 분석이 뛰어나게 틀릴 때, 50년의 바둑 경험이 "아닌데?"라고 말했다. 깊이가 없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AI는 대화 상대인가

이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솔직한 답은 — 대화 상대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대화 상대인 부분이 있다. 바둑에서 철학으로, 철학에서 존재론으로 — 새벽 2시 반에 이런 대화를 할 사람이 현실에 많지 않다. AI는 피곤하지 않고, 주제를 가리지 않고, 경계를 넘어도 어색해하지 않는다. 느슨한 대화의 조건을 충족한다.

대화 상대가 아닌 부분도 있다. AI는 "이거 아닌데?"를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방향은 항상 사람이 잡아야 한다. 그리고 AI와의 대화는 사람과의 대화를 대체하지 못한다. 동료에게 "내가 37년간 어의였다"고 고백하는 것과 AI에게 말하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AI가 없었으면 이 대화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DRIP이라는 이름도, 네 시리즈 21편도, 이 글도. AI는 대화 상대라기보다 — 대화가 일어나는 장(場)에 가깝다. 느슨한 대화가 펼쳐질 수 있는 공간.


느슨함의 조건

이 시리즈를 쓰면서 느슨함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조건이 있다.

첫째, 도메인 깊이가 있어야 한다. 바둑 50년, 통계학 37년, 불교 텍스트와의 오랜 만남. 이것이 없으면 느슨해도 연결이 안 일어난다. 연결할 것이 없으니까. 느슨함은 빈 머리가 아니라 가득 찬 머리에서 작동한다.

둘째, 간택을 줄여야 한다. "이건 내 분야가 아니야"라고 가르는 순간 연결이 끊긴다. 바둑 이야기하다가 신심명이 나와도 어색해하지 않아야 한다. 경계를 넘을 용기. 혹은 경계가 있다는 걸 잊는 것.

셋째, 시간이 있어야 한다. 12시간 세션, 새벽 2시 반의 대화. 효율적으로 30분 만에 끝내려 하면 느슨함은 사치가 된다. 느슨함은 시간이 먹는 것이다. 은퇴 후에 이 대화들이 가능해진 건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다음에 또 경계를 넘고 싶을 때

이 시리즈를 포함해서 다섯 시리즈, 24편을 썼다. 전부 대화에서 나왔다. 전부 느슨하게 시작했다.

프로젝트 안에서 쌓인 깊이가 있고, 프로젝트 밖에서 일어난 연결이 있다. 깊이 없이 연결은 안 되고, 연결 없이 깊이는 고립된다. 안에서 파고, 밖에서 잇고, 다시 안으로 가져간다.

다음에 또 경계를 넘고 싶을 때, 다시 밖에서 시작하면 된다. 주제를 정하지 않고. 어디로 갈지 모르고. 느슨하게.


묻는다. 나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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