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거짓말을 했는가. 안 했다. 데스크가 검증을 미루었는가. 안 미루었다. 독자가 게으른가. 게으르지 않다.
그런데 왜 결과가 이런가.
사슬을 한 고리씩 본다.
기자. 한겨레의 그 기자는 자기 기사에 "꼼꼼하게 쓰겠습니다"라는 태그라인을 단다. 기사 자체는 사실관계를 어기지 않았다. 폴리마켓이 97.5%로 표시했고, 그가 그것을 인용했다. 인용이 정확하다. 그가 폴리마켓 방법론을 깊이 알았어야 한다는 요구는 그의 직무 정의에 들어 있지 않다. 정치부 기자가 예측시장 메커니즘을 검증하는 일은 직무 외 작업이다.
데스크. 헤드라인을 골랐다. "세계 최대 예측 사이트"라는 권위 표지를 사용했고, 87% 같은 부속 숫자를 끌어와 기사의 흐름을 만들었다. 클릭 평가 위에서 사실 인용이 정확하고, 출처가 권위 있어 보이고, 숫자가 흥미롭다가 통과 기준이다. 데스크가 한국 여론조사와 폴리마켓 가격을 비교하는 단락을 추가하라고 지시할 의무가 있는가. 그 의무가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독자. 모바일에서 기사를 스크롤했다. 어렴풋이 위화감이 들었다. 그런데 알림이 왔고, 다음 기사가 추천되었고, 위화감을 기록할 자리가 없었다. 그가 검색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그의 일상은 그를 검색하게 만들지 않았다.
각 고리는 자기 자리에서 양심적이다. 그런데 사슬 전체로 보면 정보가 손실됐다. 폴리마켓 가격이 한국 여론조사의 외화 환산이라는 사실, 97.5는 새 정보가 아니라는 사실 — 이 사실이 어느 고리에서도 적극적으로 죽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슬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답은 단순하다. 그 사실을 살리는 일이 어느 고리의 직무 정의에도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거짓 진술에 의해서만 죽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자리에서도 죽는다.
여기서 한 단어가 떠오른다. 방임.
일상어에서 방임은 내버려둠이다. 의도가 빠진 행동, 책임이 옅어지는 자리.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다르다. 방임은 행동의 부재가 아니라 부재의 행동이다. 누구도 이 정보 손실을 막지 않기로 각자의 자리에서 결정했다. 결정이 모여 사슬이 되었고, 사슬이 정보를 잃었다.
이 결정은 적극적이지 않다. 의식되지 않는다. 기자는 매일 마감 앞에서, 데스크는 매일 클릭 지표 앞에서, 독자는 매일 알림 앞에서 — 결정하지 않기로를 결정한다. 작은 결정의 누적이다. 결정의 무게는 가볍지만 결정의 수가 많다.
방임은 결정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는다. 그래서 누가 잘못한 것인가를 묻는 것.
이 질문은 사슬을 보지 못하게 한다. 잘못한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을 바꾸면 된다는 결론이 따라오는데, 잘못한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는 바꿀 사람이 없다. 교체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슬이 운명인가. 아니다. 사슬의 모양은 직무 정의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어떤 직무에 무엇이 포함되고 무엇이 빠지는가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바뀌려면 누군가가 이것이 내 일이다라고 새로 정의해야 한다. 새 정의가 들어와야 사슬의 모양이 변한다.
이게 어렵다. 새 정의는 자발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사슬 안에 있는 사람은 사슬의 모양을 보기 어렵다. 안에서는 안 보인다.
사슬의 모양은 밖에서 보인다. 사슬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이 본다. 또는 사슬에서 한 발 빠져나온 사람이 본다. 또는 사슬에 아직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 본다.
이 사슬을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은 그 자리에 있다. 폴리마켓 기사를 흘려보내는 자리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 그래서 사슬이 보인다. 보았다고 해서 사슬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지 않으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보는 일이 사슬 바깥의 일이고, 사슬 바깥의 일이 사슬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97.5는 만들어졌다. 통과되었다. 사슬을 통과했다.
사슬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로 사슬이었다.
다만 보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사슬이 사슬이라는 것이 보인다. 사슬을 사슬로 보는 일이 첫 번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