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이 한국경제에 칼럼을 썼다. 2026년 4월 22일자다.
AI에게 시제를 주고 시를 쓰게 했더니 결과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AI가 쓴 시는 조잡한 문장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맹탕이고 졸렬했다." 결론은 단정적이다. AI는 시를 못 쓴다.
문장이 매끄럽다. 김소월의 '봄비'와 빈센트 밀레이의 '4월'을 인용해 AI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고 봉인하고, 시는 비효율의 역설을 보여주는 장르라는 좋은 명제로 글을 닫는다.
읽으면서 한 자리에서 멈췄다. "누가 봐도"의 누구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을 1,634명에게 던진 연구가 있다. Brian Porter와 Edouard Machery, Nature Scientific Reports, 2024년 11월.
ChatGPT 3.5에게 셰익스피어·초서·디킨슨·엘리엇·휘트먼·플라스 등 영미 시인 10명의 스타일을 흉내 내라고 시켰다. 그렇게 만든 50편의 AI 시와, 그 시인들이 실제로 쓴 50편을 섞어 비전문 독자 1,634명에게 보여주었다. 한 편 한 편 보고 답하라고 했다. 인간이 썼나, AI가 썼나.
정확도 46.6%였다. 동전 던지기보다 못했다.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더 흥미롭다. 사람들은 AI가 쓴 시를 인간이 쓴 시보다 더 자주 인간이 썼다고 답했다. 인간으로 식별된 비율이 가장 낮은 다섯 편은 모두 진짜 인간 시인이 쓴 것이었다. AI 시는 리듬과 아름다움 같은 항목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연구자들의 해석은 이렇다. AI 생성 시의 단순함이 비전문가에게 더 이해하기 쉬워서, 사람들은 인간 시의 복잡성을 AI가 만든 비일관성으로 오인한다.
너무 명료해서 인간, 너무 어려워서 AI. 사람들이 쓴 휴리스틱은 정확히 거꾸로였다.
여기서 한 번 더 멈춰야 한다. 그 1,634명은 누구인가.
연구는 비전문 독자를 모았다. 시 경험이 적다고 자기보고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칼럼이 가정한 "진짜 시 독자" — 김소월의 결을 음미할 줄 아는 독자 — 는 어디에 있는가.
미국 NEA 통계. 2017년 미국 성인 중 시를 읽은 사람은 11.7%로 15년 만에 최고치였다. 다만 가장 최근 자료인 2022년 SPPA에서는 9.2%로 다시 떨어졌다 — 시 독자가 약간 줄어드는 추세 안에서도, 인구 1할이 채 안 되는 좁은 자리다.
좁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그 안에서 시집을 사는 독자가 누구인가가 핵심이다.
영국의 Nielsen BookScan 2018년 자료가 가장 단단한 1차 데이터를 준다. 시집 구매자의 3분의 2가 34세 이하, 41%가 13~22세, 가장 큰 소비자는 10대 소녀와 젊은 여성. NPD Group의 같은 시기 미국 자료는 2017년 미국 시집 판매의 47%가 인스타포엣 책이라고 보고한다 — Rupi Kaur, Lang Leav, Atticus, r.h. Sin. 영미 시집 시장의 절반 가까이가 SNS에서 출발한 짧고 명료한 시였다.
한국은 더 극적이다. 예스24가 2026년 3월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시집 구매자 중 1020세대 비율이 2020년 11.7%에서 2025년 19.2%로 6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되었다. 한국 시 단독으로는 12.7%에서 20.1%. 텍스트힙 트렌드 이후 한국 시 분야 판매량이 2024년 +46.4%, 2025년 1분기 +33.7% 상승했다. 인상적인 문장을 SNS에 공유하는 문화가 시집을 팔고 있다.
베스트셀러 시집의 정체도 이 흐름과 맞물린다. 교보문고가 2022년 11월 발표한 2012~2022년 10년 누적 데이터에서 나태주 시인의 작품이 상위 30위 중 6편으로 가장 많았다. 윤동주 4편, SNS 시인 하상욱 3편이 뒤를 이었다. 한강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2024년 노벨문학상 이후 전년 대비 67배, 2025년에 다시 43배 판매가 늘었다 — 시인의 시 자체가 아니라 수상이라는 사건이 판매를 만들었다.
여기서 한 자리 더 들여다본다. 시집의 주독자층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자료마다 다르다.
교보문고 2022년 누적 데이터에서는 *20대 여성이 20.4%*로 1위. 예스24의 2018~2025년 추세에서는 50대가 구매 연령대 1위. 같은 한국 시집 시장인데 두 서점의 답이 다르다.
이건 양쪽이 모두 정확할 수 있다 — 교보문고와 예스24의 독자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시장의 다수 독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어느 자료를 보느냐에 따라 다른 답을 받는다는 사실은, 그 질문 자체가 단일한 답을 허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칼럼은 단일한 답을 가정한다. "진짜 시 독자는 김소월의 깊이를 음미한다". 그 가정이 어느 데이터에 근거한 것인지는 묻지 않는다.
두 데이터가 한 자리에서 만난다.
시 시장의 실제 다수 독자 — 그가 1020세대 텍스트힙 독자이든, 인스타포엣 책으로 시장의 절반을 채우는 영미권 34세 이하 독자이든 — 는 Porter & Machery 연구에서 AI 시를 더 선호한 비전문 독자층과 거의 겹친다.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시집에서 원하는 것은 짧고, 명료하고, 위로가 되고, 공유 가능한 문장이다. AI가 정확히 잘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장석주 칼럼이 비교군으로 세운 김소월·밀레이의 깊이를 음미하는 독자는 시 시장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있다. 시인 단체가 강연을 듣는 그 자리, 시인이 시인을 호명하는 그 자리. 정작 시집을 사는 독자가 아니다.
칼럼은 *"AI가 우리 영역을 침범한다"*는 시인의 불안에 답하려고 쓰여졌다. 그런데 시인이 정작 안 본 것은 AI가 아니다. 자기 독자가 누구인지다.
칼럼의 마지막 명제로 돌아간다. "시는 비효율의 역설을 보여주는 장르다." 좋은 문장이다.
그러나 칼럼 자체는 효율의 자리에서 쓰여졌다. AI에게 한 번 시켜본다. 결과를 본다. 단정한다. 김소월을 불러 봉인한다. 1,634명의 데이터를 거치지 않는다. 자기 독자가 누군지 묻지 않는다. 묻더라도 단일한 답을 가정한다.
비효율의 역설을 옹호한 글이 효율의 방식으로 쓰여졌다.
이게 못 봄의 구조다. 자기가 디디고 선 자리를 한 번 더 의심하지 않는 자리. 시인이 시인의 안위를 위해 시인의 언어로 봉인하는 자리.
(이 글을 쓰면서 인용 자리들을 직접 점검했다. NEA의 시 독서율 11.7%는 2017년 데이터이고 가장 최근인 2022년 자료에서는 9.2%다. 인스타포엣 47%는 NPD Group의 2018년 발표, 2017년 미국 데이터로 1차 출처가 단단하다. 영국 시집 구매자의 3분의 2가 34세 이하는 Nielsen BookScan 2018년 자료. 한국 예스24와 교보문고 데이터는 각 서점의 공식 발표를 추적해 시점과 수치를 맞췄다. 다만 두 서점의 시집 주독자층 1위 연령대가 서로 다르게 나오는 것이 이번 점검의 가장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 단일한 답이 없는 자리를 단일한 답으로 가정하는 일이, 시인만의 함정은 아니라는 점을 같이 메모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