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못 보는가] 악순환의 세 자물쇠

by 한경수

몇 년 전 한 대학의 데이터사이언스학과 신임 교수 채용 심사에 들어간 적이 있다. 3년 동안 매번 들어갔다. 3년 동안 눈에 들어오는 후보자가 한 명도 없었다.

후보자들의 이력서가 부실했던 게 아니다. 키워드는 다 갖춰져 있었다. 통계 박사 학위, 머신러닝 논문, 코딩 경험, 산업 인턴십. 표면은 매끈했다. 그런데 통계와 컴퓨터를 다 깊이 다룰 줄 아는 한 명은 없었다. 통계 박사면 통계만 깊었고, 컴퓨터 박사면 컴퓨터만 깊었다. 다른 영토는 덧칠된 약간에 가까웠다.

이게 한 학과의 채용 운이 나빴던 것일까. 아니다. 한국 대학 시스템이 왕래의 깊이를 가진 박사를 키우지 않으니, 채용 시장에 그런 사람이 올 수가 없다. 새 학과를 만들고 채용 공고를 낸다고 해서 그 학과에 맞는 사람이 행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이전 시스템 안에서 자란다. 이전 시스템이 한 우물 안에서만 박사를 키웠으니, 새 학과의 후보자도 한 우물 출신이다.

왜 시스템이 왕래자를 키우지 않는가를 묻기 시작하면 세 자물쇠가 보인다. 박사 과정에는 지도교수가 없고, 신임 교수에게는 시간이 없고, 승진에는 한 영토의 깊이가 필요하다. 이 셋이 동시에 작동하니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왕래를 포기한다. 비용을 견딜 사람이 한 세대에 몇 명 안 된다.


첫 자물쇠는 박사 과정에 있다.

박사 과정은 지도교수의 영토 안에서 자라는 일이다. 지도교수가 통계학자라면 학생도 통계학자로 자란다. 지도교수가 컴퓨터과학자라면 학생도 컴퓨터과학자로 자란다. 왕래의 깊이를 가진 지도교수가 거의 없으니 왕래의 깊이로 자란 박사도 거의 없다.

이게 단순히 없는 사람을 따라 자랄 수 없다는 문제가 아니다. 제도가 왕래의 깊이를 박사 학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제다. 박사 논문은 한 영토 안에서 새 발견이어야 통과한다. 두 영토에 걸친 논문은 어느 영토에서도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심사 위원회의 통계학자는 통계 이론이 약하다고 하고, 컴퓨터과학자는 알고리즘 분석이 약하다고 한다. 둘 다 자기 영토의 척도로 본다. 두 척도를 다 통과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박사 과정의 합리적 선택은 한 영토에 머무는 일이다. 왕래해 보고 싶은 학생도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한 영토로 돌아간다. 박사를 받은 후에 왕래를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박사를 받고 교수가 되면 또 다른 자물쇠가 기다린다.


둘째 자물쇠는 신임 교수의 시간이다.

신임 교수의 시간은 생존에 다 쓰인다. 강의 준비, 학생 지도, 학과 행정, 연구비 신청, 논문 작성. 왕래의 자리에 시간을 쓸 여유가 없다. 왕래는 비효율이고, 신임 교수에게 비효율을 견딜 시간이 없다.

미국이라면 Tenure-track 7년이 그 시간을 어느 정도 보장한다. 그 7년 동안 신임 교수는 깊이를 만들고 동시에 옆으로 펼치는 일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일부 보호한다. 한국은 그런 보호가 약하다. 신임 교수가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빠르게 올라가야 자리가 안정된다. 사다리의 단마다 논문 수가 핵심 척도다. 왕래에 시간을 쓰면 논문 수가 줄고, 줄면 사다리에서 떨어진다.

셋째 자물쇠가 가장 깊다. 승진 논문이다.

승진 논문은 학회의 인정을 통해 검증된다. 박사 영토의 학회와 새 영토의 학회 둘 다에서 어중간하면 논문이 안 받힌다. 한 영토에 깊이를 만들어야 그 영토의 학회가 받는다. 그래서 분야를 바꾼 사람은 새 영토에서 다시 깊이를 만들어야 승진 논문을 쓸 수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박사 5년의 결과를 일부 버리고, 새 영토에서 다시 5년을 들여 깊이를 만든다. 그 5년 동안 승진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동기들은 박사 영토 그대로 논문을 쓰며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분야를 바꾼 사람은 제자리에서 다시 출발한다.

이 비용을 직접 치러 본 적이 있다. 박사 영토와 교수가 되어 일한 영토가 완전히 같지 않았다. 새 영토에서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들었고, 그 시간 동안 동료들과의 격차가 벌어졌다. 시스템이 왕래자를 처벌하는 구조를 본인의 일생으로 통과해야 했다. 비용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이 적으니 왕래자가 적다. 이게 3년 동안 한 명도 못 본 채용 결과의 가장 구체적인 이유다.


세 자물쇠를 한 번에 풀 수는 없다. 다만 어디서부터 가능한가를 묻게 된다.

지도교수의 자물쇠는 가장 풀기 어렵다. 박사 과정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고, 그 변화는 학회와 학과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결정으로는 안 된다.

시간의 자물쇠도 어렵다. 신임 교수의 부담을 줄이려면 학과의 강의 부담 분배·연구비 구조·평가 척도가 같이 바뀌어야 한다. 학과 단위의 결정.

승진 논문의 자물쇠는 가장 깊은데, 풀 수 있는 자리가 의외로 학회에 있다. 학회가 왕래의 결과를 학회의 정식 논문으로 받는 길을 만들면, 분야를 바꾼 사람도 학회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한국 통계학회가 데이터사이언스나 통계 교육 같은 분과를 정식으로 두고, 그 분과의 논문을 주류 논문과 같은 무게로 인정하면, 분야를 바꾼 사람의 비용이 한 단계 줄어든다.

이건 학회 안에서 결정자 한 명이 결심하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학과 신설보다 작고, 박사 제도 개혁보다 작고, 채용 시스템 개혁보다 작다. 그래서 가능성이 있다. 다만 학회의 결정자도 자기 영토의 척도로 자란 사람이니, 다른 척도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하기 어렵다. 한 세대가 다시 작동한다.

후보자의 이력이 한 우물 출신뿐인 자리는 후보자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이 박사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영토를 따라야 학위를 받았고, 신임 교수 시기에 시간이 없었고, 승진을 위해 한 영토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후보자 한 명 한 명이 합리적 선택을 한 결과가 왕래의 깊이가 없는 이력서다.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시스템이 왕래의 비용을 한 사람이 다 지게 만들어 두었으니,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그 비용을 안 진다.

비용을 진 사람만이 왕래자가 되는데, 비용을 질 수 있는 사람이 한 세대에 몇 명 안 된다. 그 몇 명도 비용을 진 결과로 시스템 안에서 위로 못 올라간다. 위로 못 올라가니 시스템을 바꿀 자리에 못 간다. 시스템은 그대로 굴러간다.

악순환의 고리는 안의 결정자들의 의지로 끊기지 않는다. 그들의 척도 자체가 고리 안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끊을 자리는 고리 바깥에서 자란 한 사람이 고리 안에 들어가는 일에 있고, 그 한 사람이 기록을 남기는 일에 있다. 시스템이 받지 않은 진단이 기록 안에서는 받힌다. 받힌 기록이 다음 세대의 한 결정자를 만든다. 한 세대가 한 칸씩 옮겨 간다. 그게 콥(George Cobb)이 한 세대라고 적은 시간의 가장 정확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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