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못 보는가] 같이 두면 왕래가 생긴다?

by 한경수

1970~80년대 한국 대학에는 전산통계학과나 계산통계학과 같은 이름의 학과가 여럿 있었다. 통계학과 전산학을 한 학과 안에 두는 시도였다. 그 시기의 컴퓨터는 통계 계산의 도구로 들어왔으니, 두 분야를 한 지붕 아래 두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한 학과 안에 두 진영의 교수들이 같이 있었다. 통계 교수와 전산 교수. 학생들은 양쪽 강의를 다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두 분야가 만나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작 두 분야가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 한 건물 안에 두 진영이 따로 살았을 뿐이다. 통계 교수는 통계만 가르치고, 전산 교수는 전산만 가르쳤다. 학생은 양쪽을 다 들었지만 양쪽이 어떻게 만나는지는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만남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같은 학과에 30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두 진영 사이의 왕래의 문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게 첫 번째 회의 가장 깊은 진단이다. 같이 있다가 왕래한다를 자동으로 뜻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전산통계학과가 갈라졌다. 표면적 이유는 각자의 학문이 너무 커져서였다. 통계학은 통계학대로, 컴퓨터는 컴퓨터대로 깊어졌으니 따로 가야 한다는 논리. 그럴듯해 보였다.

그런데 이 논리는 절반만 맞다. 깊어진 게 갈라짐의 진짜 원인이라면, 깊어진 두 분야가 서로를 더 필요로 해야 정상이다. 통계가 깊어질수록 더 큰 계산이 필요하고, 컴퓨터가 깊어질수록 더 정교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 깊어짐이 왕래의 동기를 늘렸을 자리.

그런데 갈라졌다. 깊어짐이 왕래를 늘린 게 아니라 분리를 늘렸다. 이건 깊어짐이 원인이 아니라 왕래의 부재가 원인이라는 뜻이다. 같이 있던 30년 동안 왕래의 문법을 못 만들었으니, 깊어지자 공통 언어가 없어서 갈라진 것. 깊어짐은 방아쇠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갈라진 두 학과는 각자의 길을 갔고, 그 사이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영토가 됐다. 통계학자는 데이터의 처리가 자기 일이 아니라 했고, 전산학자는 그 데이터의 의미가 자기 일이 아니라 했다. 사이에 떨어진 학생들이 어디에도 답이 없는 질문을 들고 헤맸다.

이 시기에 한 세대가 지나갔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같이 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흐려졌다. 처음부터 따로 있던 것처럼 보이게 됐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데이터사이언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합치기 시작했다. 새 학과가 만들어지고, 기존 통계학과가 데이터사이언스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학부에 융합전공이 생겼다. 통계와 컴퓨터에 더해 수학과 경영과 경제까지 같은 학과 안에 들어왔다. 진영이 더 늘었다.

문제는 합치는 방식이 30년 전과 거의 같다는 데 있다. 한 지붕 아래 여러 진영을 다시 모은다. 그러면 만남이 일어날 거라는 가정. 이번에도 같은 가정 위에 서 있다.

이 가정이 30년 전에 한 번 깨졌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같이 두면 왕래가 생긴다는 가정이 한 번 작동하지 않았는데, 같은 가정으로 다시 합치고 있다. 한 세대 전의 결과가 다음 세대의 결정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시스템이 학습하지 않는다는 진단이 가장 분명한 자리.

지금 데이터사이언스학과에 채용되는 신임 교수들도 이력의 모양이 30년 전과 비슷하다. 통계 박사 또는 컴퓨터 박사. 왕래해 본 사람이 아니라 한쪽에 자기 자리를 두고 다른 쪽 도구를 약간 익힌 사람들. 깊이는 한 영토에 있고, 다른 영토는 덧칠된 약간만 있다.

이 사람들이 학과의 정식 교수로 자리잡는다. 자기가 자란 방식대로 가르친다. 학생들은 자기가 들은 강의 대로 자란다. 학과 이름은 새인데, 안의 가르침은 옛이다. 한 바퀴를 더 돈다.


이 두 번째 회가 또 한 번 갈라지지 않으려면, 같이 두는 일 외에 다른 무엇이 같이 있어야 한다. 왕래가 일어나도록 설계된 자리가 따로 필요하다.

미국 대학들이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푼다. 학과는 그대로 두되, 그 위에 Center나 Institute라는 별도의 자리를 얹는다. 여러 학과의 교수가 같이 소속되고,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은 세미나에 모인다. 학생도 학과를 통해 박사를 받지만 센터의 일원으로 연구한다. 학과는 깊이를 보장하고, 센터는 왕래의 무대를 보장한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한 교수가 두 학과에 공식적으로 동시 소속되는 Joint appointment. 강의도 하고, 학생도 지도하고, 박사 위원회에도 들어간다. 이 자리가 있으면 한 사람이 평생 여러 학과를 왕래해도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채용·예산·승진의 모든 자리에서 왕래가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 융합학과가 만들어질 때 빠진 게 이 부분이다. 학과 이름은 합쳤는데, 학과를 가로지르는 별도의 자리는 만들지 않았다. 합치기만 했지 가로지르는 자리는 안 만들었다. 그래서 안의 사람들이 분리된 채로 한 학과에 모여 있게 된다. 30년 전의 한 지붕과 같은 모양.

같이 두는 것이 합침의 전부가 아니다. 같이 두는 일은 한 번의 행정으로 끝나지만, 가로지르는 자리를 만드는 일은 제도의 여러 자리를 같이 손대야 한다. 채용 기준에 다른 학과와의 협업 이력을 넣는 일, 한 교수가 두 학과의 강의를 정식으로 하게 하는 일, 박사 위원회에 외부 학과 교수를 의무로 두는 일, 평가 단위를 학과에서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일. 작아 보이는 결정 여럿이 같이 작동해야 가로지르는 자리가 만들어진다.

큰 결정 한 번보다 작은 결정 여럿이 더 멀리 간다. 한국 교육은 큰 결정은 자주 하고 작은 결정은 드물게 한다. 학과 이름을 바꾸는 결정은 5년에 한 번씩 하면서, 채용 기준의 한 줄을 바꾸는 결정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니 30년 전과 같은 결과가 두 번째로 나오고 있다. 학습하지 않는 시스템에서, 같은 실패가 한 세대 간격으로 반복된다.

세 번째 회가 오기 전에, 왕래는 같이 두는 것에서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한 줄을 한 번이라도 받아 본 결정자가 한 명이라도 늘어나야 한다. 그 한 명이 작은 결정 한 자리를 다르게 내릴 수 있다. 그게 사슬을 한 칸 옮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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