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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3.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3


(출국일 D-15)



여행은 여행이니, 준비를 해야지.

아무 생각 없이 죽으면 죽자고 끊었던 티켓인데, 신기하게도 갈 준비를 하게 된다.  


파리에 9박 11일 내내 있을 생각은 없었다. 대도시보다 시골을 좋아하는 나는 보고 싶던 도시들 따로 있었다. 누가 나더러 취미를 물으면 '토요일 아침에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보는 것'이라고 답할 만큼 여행 프로는 꼬박꼬박 보아서 웬만한 도시는 들어본 적이 있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도시들은 따로 다 외우고 있었다. 다른 유럽 도시나 중동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애쓰지 않아도 갈망하는 나의 무의식이 외우는 도시 이름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이탈리아 시에나, 레바논 제라쉬....  



나는 프랑스 오베르뉴의 '르 퓌 엉 벨레'(Le-Puy En Velay)라는 소도시와 '카르카손'(Carcassonne)이라는 곳을 찍었다. 반 고흐가 혼자 예술인 마을을 만들고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던 '아를'(Arles)과, 교황청이 있다는 '아비뇽'(Avignon)도 골랐다. 아비뇽은 사실 끌렸다기보다는 TGV를 타고 파리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거쳐야 했다. 현지에서 아비뇽에 홀딱 반할 줄은 이때는 몰랐다.   



대학 도시라는 몽펠리에 (Montpellier)나 수도교를 보고 싶었던 님 (Nimes)은 루트가 나오지 않아 포기했다. 혼자 겨울에 가는 탓에 니스(Niece)나 모나코(Monaco)도 눈물을 머금고 스킵. 지금은 프랑스 국가가 된 프랑스혁명의 노래, 라 마르세이유 (La Marseille)가 시작되었던 마르세이유도 뺐다. 여자 혼자서 여행하기에는 치안이 염려된다는 평이 유럽 여행 커뮤니티에 꽤 많았다.



위에 나열한 도시들도 사실 대부분이 지역 주도인 경우가 많아 한국에 알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진짜로 가고 싶었던 곳들은 이런 곳들이었다.


생 폴 드 방스 (Saint-Paul de Vence),

생 시르크 라포피 (Saint-Cirq-Lapopie),

로카마두르 (Rocamadour),

무스티에 생트 마리 (Mourstier-Sainte-Maire),


그리고 언젠가는 저곳에서 죽으리라 마음에 남겨두었던 곳.

빌 프랑쉬 (Villefranche). 빌 프랑쉬의 어원은 '간섭할 수 없는 자유'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에 담아두었던 곳 전부를 갈 방법이 없었다. 내 스케줄로는 불가능했다.


3일 정도 찍은 도시들의 루트를 연결하고, 숙소를 골랐다. 이동편도 골라서 예매를 했다.


르 퓌 엉 벨레 라는 곳을 먼저 갔다가, 파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 다음 카르카손을 가기 위해서 툴루즈를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경유하고,
카르카손에서 아비뇽은 남프랑스를 지나는 기차를 탄 후에,
아비뇽에서 파리로 돌아온다.



여행지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챙기는데 혼자 가려니 치안이 제일 걱정이었다. 눈에 안 띄는 작은 지갑을 찾는 내게 기숙사 룸메가 물었다.



“까비, 자끄 팬티 있어?”

“뭐라고?”

“자끄 팬티. 지퍼 달린 거 있어.”


난생처음 듣는 물건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세신사 분들이 일 할 때 쓰시는 제품이었다. 속옷 앞에 지퍼가 달려있다. 무엇인가를 넣고 닫아버릴 수 있는 속옷이다.


룸메는 자끄 팬티가 여행지에서 보안이 철통이라며 자부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여행 가는지 아는 룸메가 자끄 팬티 2장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선물해주었다. 이 지퍼 팬티는 나중에 현지에서 어떤 사건을 하나 터뜨린다.



옷이랑 세면도구, 목 베개, 비상약, 멀티 어댑터, 선글라스... 리스트를 쭈욱 적어 내려갔다.

카메라는 따로 넣지 않았다. 유럽 관광지에서 혼자 셀카 찍는 여자는 소매치기들의 표적이라고 했다. 핸드폰 카메라로 대신하기로 했다.

굽이 높은 앵클부츠도 넣었다. 여행지에 무슨 불편한 신발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불안했다. 여기서도 작아서 무시당하는데 동양인 여자 혼자 거기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책도 한 권 넣을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이번 여행에는
내 생각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잊을 수 없지.

컵라면.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지퍼 팬티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쉽게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프랑스 가던 당시에는 지마켓에서만 일부 판매하던 정도였는데 지금은 검색하니 많이 나오네요. 어쨌든 현금을 비롯해 귀중품을 보관하는 데는 이만한 아이템이 없습니다.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질 못했습니다.


2. 지금 프랑스로 겨울에 다시 여행을 간다면, 백 퍼센트 핫팩을 잔뜩 챙기겠습니다. 지사제와 수면양말도 꼭 챙겨 넣을 거예요. 이유는 후속편에 설명할게요.


3. '나 여자 혼자 갔다 왔는데 별 일 없었는데?' 마르세이유에 다녀오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치안은 복불복인 것 같아요. 두 어명이 가서도 털렸다는 글들도 많이 보긴 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마르세이유 전경을 보고 싶었는데. 다음으로 넘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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