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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팍 Aug 21. 2018

모두까기인형

모두까기 즐기다 나도까기 당한다

회의는 필요악 必要惡이다.

최소화할수록 좋지만 집단지성 Collective Intelligence이 필수인 요즈음, 회의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회사들은 '회의적인 회의'를 어떻게 하면 줄일까 고민이 많다.


회의는 복잡 미묘하다.

보고, 결정, 협의, 논쟁, 갈등, 정치, 아부, 잔머리, 눈치, 무임승차, 빛나는 혹은 빛바랜 아이디어, 지시, 잔소리, 질책, 면박, 모욕, 칭찬, 분노, 사과, 침묵, 웃음, 짜증 등 수많은 이성과 감성이 교차한다.


회의는 다자간 소통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더하고, 빼는 과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 속도에 맞춰 남의 생각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 여기서 삐끗하면 멍청이가 된다.


어떻게 하면 회의할 때 멍청이가 아닌 똑똑이로 보일 수 있을까?


똑똑이를 만드는 '손쉬운 레시피 Quick and Easy Recipe'는 다음과 같다.

절대로 먼저 의견을 내지 마라. 어설픈 아이디어일 경우 물어뜯기기만 한다.

무표정 금지,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낼 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끄덕여라.

상대방 의견에 대해 일단 칭찬하라. 그다음엔 논리적으로 비판하라. 칭찬은 짧게, 비판은 길게.

비판할 때에는 산업 흐름, 경쟁사, 내부 자원 등 현실에 근거해 실행에 문제가 있음을 짚어라.

항상 젠틀한 태도를 유지해라. 그래야 내 비판에 반발하지 않는다.

"첫째, 둘째, 셋째", "따라서", "때문에" 등의 단어를 쓰면 스마트해 보이므로 적극 사용하라.

회의 결과, 나에게 일이 주어질 것 같으면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여력이 없다", "저희보다는 A팀에서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식으로 말하며, 되도록 일을 받지 마라.

책임이 요구되는 발언은 절대 하지 마라. 논점을 모호하게 흐려서 내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사실, 이 레시피는 <내 이익만 챙기는 똑똑이>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개인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 없지만, 회사를 좀먹는 악한 방법이다. 이 레시피를 활용하는 똑똑이가 많을수록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는 멍청이에게 일이 몰린다. 멍청이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에 지쳐 번아웃 Burnout되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다. 어떻게든 일을 안 하려는 똑똑이들만 남은 회사는 그렇게 점점 경쟁력을 잃어간다.

 

<나만 이득을 보는 똑똑이>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양비론 兩非論을 펼친다. 회의에서 똑똑이의 발언을 들어보면 그럴싸하지만, 결론을 요약해 보면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다'라는 주장밖에 남지 않는다. 즉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기만 하는 <모두까기인형>일뿐이다.


호두까기인형 *출처: www.souschef.co.uk


<모두까기인형>은 자기 유리하자고 이것저것 다 까다가 호두 껍질과 알맹이 모두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호두까기인형>이 제 역할을 하려면 껍질만 까고 알맹이는 고스란히 남겨야 한다. 즉 비판은 하되 대안도 함께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으로 껍질을 까고, 대안이라는 알맹이를 남겨야 한다. '대안 없는 비판'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두 부술뿐이다.


<모두까기인형>이 되지 않기 위한 '어려운 레시피 Slow and Delicious Recipe'는 앞의 레시피를 뒤집어 생각하면 된다.

먼저 의견을 내라. 나의 어설픈 아이디어가 물어뜯길수록 모두에게 발전이 있다.

조직을 망치는 의견에 미소를 짓지 마라. 인상을 써서라도 그 의견에 반대함을 표현하라.

짧은 칭찬 후 길게 비판하는 패턴은 몇 번 반복되면 상대방도 그 칭찬이 거짓임을 알게 된다.
칭찬도 확실히, 비판도 확실히 하는 게 진정성 있다.

현실에 근거해 비판하되, 현실의 제약을 극복할 대안을 함께 고민하라.

항상 젠틀할 필요는 없다. 얼굴 벌게지면서 격하게 논쟁하는 게 생산적인 경우도 있다.  

억지로 스마트해 보이려고 노력하지 마라.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밝히는 게 낫다.

당장 일을 맡기 버겁더라도 미래의 내 역량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과감히 도전해본다.

책임의 크기를 키우려 노력하라. 책임의 크기와 내 존재의 가치는 비례한다.


손쉬운 레시피 Quick and Easy Recipe는 단기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금방 들통난다.

어려운 레시피 Slow and Delicious Recipe는 당장에 손해가 많지만 장기적으로 나를 성장시킨다.


나 자신은

모든 것을 부수는 모두까기인형인가,

알맹이를 남기는 호두까기인형인가.


나 자신은

내 이익만 챙기는 똑똑이인가,

남 이익도 챙기는 멍청이인가.


/ 직장인 업무기본서, 업무전과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www.casadivita.despar.it/la-noc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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