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INNOSPARK, 2011년 6월호
독수리 사장이 CEO로 있는 버드 주식회사에서는 매일 가져오는 모이의 양에 따라 새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매월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이 회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과를 올리는 새는 '닭'이다.
사람들이 모이통에 수시로 사료를 채워주기 때문에 모이를 찾으러 다니느라 노력과 시간을 낭비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새들처럼 성과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피둥피둥 찌는 살이 더 걱정이다.
닭 다음으로 높은 성과를 보이는 새는 '비둘기'이다.
고질적인 피부병에 시달리고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간혹 토사물을 먹느라 몸이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모이가 풍부한 도심에 완전히 적응한 비둘기는 닭의 자리를 위협하며 사내에서 ‘닭둘기’라는 애칭까지 얻게 되었다.
비둘기 다음은 '갈매기'이다.
갈매기는 ‘새우깡 사냥꾼’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사람들 손에 있는 새우깡을 귀신같은 솜씨로 낚아채간다. 새우깡을 너무 많이 먹어 소화 불량에 걸리기도 하고, 새우깡에 너무 의존해 물고기 사냥하는 법을 잊기도 하지만 갈매기는 탁월한 비행 능력으로 많은 모이를 획득한다.
회사에서 가장 성과가 낮은 새는 '키위새'이다.
날개가 없는 키위새가 모이를 찾기 위해서는 부리 끝에 있는 코로 흙 속에 있는 곤충과 지렁이의 냄새를 맡아 잡는 수밖에 없다. 코가 헐도록 열심히 흙 속을 뒤지지만 갈매기에 훨씬 못 미치는 성과를 올리기 때문에 송골매 팀장의 부리에 자주 쪼이곤 한다.
키위새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송 팀장에게 심하게 쪼인 날에는 풀숲에 숨어 ‘애초에 불공정한 게임인데 괜히 헛고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키위새가 불공정을 인식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
회사에서는 수집한 모이의 양에 따라 평가하기 때문에 닭, 비둘기, 갈매기, 키위새의 순서로 인센티브가 차등 지급된다. 키위새가 불만을 갖는 이유는 갈매기와 비교해 자신의 인센티브가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키위새는 하루에 8시간 동안 일해 16만 원을 받는다. 반면에 갈매기는 6시간 동안 일해 18만 원을 받는다.
갈매기가 새우깡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열심히 날갯짓한 대가로 키위새보다 2만 원 더 받는 것이라 볼 수도 있는데 왜 키위새는 이를 불공정하다고 느낀 걸까?
키위새는 업무 영역과 몫을 분배하는 절차 자체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버드 주식회사에 입사할 때에는 분명 각자의 역량에 맞게 업무에 배치하고, 가져오는 모이의 양에 따라 공정하게 성과를 평가한다고 들었지만, 몇 년 동안 업무를 해보니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자신과 같이 날개가 퇴화되어 비슷한 수준의 업무 역량을 가진 닭은 아침잠이 많은 독 사장이 눈을 뜰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이유로 양계장에 배치되었다.
송 팀장은 비둘기가 같은 학교 후배라 그런지 다른 팀원들보다 유달리 챙기고 있다. 심지어 비둘기가 모이를 많이 모으지 못한 날에는 송 팀장이 슬쩍 모이를 물어다 준다는 소문까지 있다.
갈매기는 그냥 잘 생겼다는 이유로 독 사장과 송 팀장이 좋아한다. 걸핏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잘 생긴 애들이 일도 잘 한다니까’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갈매기가 가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격려금 명목으로 전에 받던 인센티브를 그대로 받기도 한다.
독 사장과 송 팀장이 명문화된 절차 그대로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융통성 있게 절차를 적용했을 수도 있는데 왜 키위새는 이를 불공정하다고 느낀 걸까?
키위새는 자신이 한적한 뉴질랜드의 풀밭에 배치되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하지도 못 했고, 결정된 후에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했고, CEO와 팀장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동물원에서 한가롭게 햇볕을 즐기고 있던 어느 날, 독 사장이 자신을 발톱으로 움켜쥐고 한참을 날아 풀밭에 떨어뜨려놓고는 그 큰 날개로 등을 퍽 치며 “이곳이 바로 우리 회사의 전략적 요충지이네, 자네가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상할 테니 최선을 다해주게”라고 말한 것이 전부이다.
닭처럼 누군가 사료를 갖다 준다면, 비둘기처럼 모이가 풍부한 곳에 있다면, 갈매기처럼 새우깡을 먹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얼마 전 송 팀장에게 전근을 요청했으나 “날개도 없는 게 가긴 어디를 가, 그런 생각할 시간에 흙이나 한 번 더 파!”라는 고함만 들었다.
회사 입장에서 키위새의 능력과 적성에 맞게 배치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왜 키위새는 이를 불공정하다고 느낀 걸까?
키위새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회식 자리에 가면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낀다. 독 사장과 송 팀장은 회식하는 내내 닭이 우리 회사 최고의 인재이기 때문에 모든 새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비둘기와 갈매기에게는 피부병에 바르는 연고와 소화제를 건네며 ‘일도 좋지만 몸 생각하면서 일하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한다.
키위새도 이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괜히 흙을 뒤적이며 애꿎은 지렁이만 부리로 쿡쿡 찌르곤 한다. 독 사장과 송 팀장은 회식 자리를 빌려 성과가 우수한 인재들을 격려한 것뿐인데 왜 키위새는 이를 불공정하다고 느낀 걸까?
키위새가 무언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 까닭은 단순히 자신의 몫이 절대적으로 남들보다 적어서가 아니라 분배, 절차, 관계 측면에서 불공정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공정의 인식과 해소에 대해 1960년대 초부터 사회학과 심리학 분야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어 공정성이 조직과 구성원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공정성은 크게 분배 공정성, 절차 공정성, 상호작용 공정성의 세 가지로 나누고 상호작용공정성은 다시 정보 공정성과 관계 공정성으로 나눌 수 있다.
분배공정성은 조직의 분배 결과에 대해 지각된 공정성을 의미한다.
분배공정성은 업무 수행을 하며 내가 조직을 위해 투입 Input한 것과 조직이 나를 위해 분배한 결과물 Output을 비교함으로써 판단된다. 이때 ‘투입’에는 교육 수준, 경력, 경험, 기술의 숙련 수준, 주어진 책임, 업무상 스트레스, 개인의 공헌도, 업무 시간, 노력한 정도, 달성한 업무 성과 등이 있으며 ‘결과물’에는 급여, 상여금, 도전적 업무 기회, 직업 안정성, 칭찬과 인정, 승진, 근무환경 등이 있다.
키위새가 ‘분배의 불공정’을 느낀 이유는 인센티브 총액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투입 대비 결과물의 비율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위새와 비둘기가 받는 인센티브는 총액으로 보면 16만 원과 18만 원으로 하루에 2만 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8시간 동안 16만 원을 받는 키위새는 시간당 2만 원이고, 6시간 동안 18만 원을 받는 갈매기는 시간당 3만 원이므로 비율상으로는 무려 1.5배나 차이가 난다.
게다가 같은 1시간을 일해도 키위새는 부리가 닳도록 흙을 파는 힘든 일이지만 갈매기는 간혹 사람들이 새우깡을 뿌릴 때에만 날아오르면 되기 때문에 업무 강도에도 차이가 있다.
절차공정성은 조직에서 분배를 결정하는 절차에 대해 지각된 공정성을 의미한다.
즉 분배공정성은 결과물의 크기에 대한 공정성이고, 절차공정성은 결과물의 크기를 결정하는 과정의 공정성이다.
절차공정성의 지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기준의 공정함, 절차의 일관성, 이의 제기의 허용, 절차 변경 기회의 제공, 보상 결정 과정에의 참여, 본인 성과에 대한 상부 보고의 정확성, 결과물 분배 결정 시 편견(연고, 결정권자의 감정, 외부 영향, 학력 차이, 남녀차별)의 배제 등이 있다.
키위새가 ‘절차의 불공정’을 느낀 이유는 역량에 따른 업무 배치와 성과에 따른 결과물의 분배 시 진행되는 절차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닭은 날개가 짧아 키위새와 비행 역량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 사장의 알람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양계장에 배치되었다. 비둘기는 송 팀장과의 학연 덕에 꾸준히 고성과자 대우를 받고 있다. 갈매기는 잘 생긴 외모 덕에 낮은 성과를 기록해도 인센티브를 받는다.
상호작용공정성은 분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질에 대해 지각된 공정성을 의미한다.
상호작용공정성은 분배 결정이나 특정 절차의 사용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어떤 유형의 정보가 전달되느냐에 대한 정보공정성 Informational justice과 분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정중하게 존중받았느냐에 대한 관계공정성 Interpersonal justice으로 나누어진다. 학자에 따라 상호작용공정성을 절차공정성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두 개념을 서로 구분하는 쪽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분배공정성과 절차공정성은 얼굴이 없는 조직으로부터 발생되지만, 상호작용공정성은 매일 얼굴을 마주 보는 상사와의 대인관계에서 주로 발생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상호작용공정성의 지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신뢰성, 존중, 적정성, 정당한 설명, 인간적 배려, 친절하고 호의적인 태도, 진실한 태도 등이 있다. 특히 정보공정성과 관련된 것에는 영향받는 사람의 의견 반영,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수집하려는 노력, 결정 내용과 과정의 알림, 미칠 영향에 대한 설명, 보완책의 마련 등이 있다.
키위새가 ‘정보의 불공정’을 느낀 이유는 충분한 설명 없이 무조건 열심히 일이나 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독 사장과 송 팀장이 키위새를 풀밭에 배치한 까닭에 대해 진실한 태도로 키위새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상세히 설명했다면 키위새가 이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키위새가 ‘관계의 불공정’을 느낀 이유는 독 사장과 송 팀장이 평소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배려하지 않은 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새들에 대한 관심과 키위새에 대한 무관심이 대조되면서 불공정의 크기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만약 키위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다면 키위새가 이렇게까지 서운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혁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즐거운 일터로 변화, 유쾌한 생각의 향연, 기발한 제품의 출시, 판매의 폭발적 증가와 같은 좋은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분들이 간혹 있다. 분명 이런 것들도 혁신의 한 단면이겠지만 사실 혁신은 즐겁고 유쾌한 면보다는 힘들고 고단한 면이 더 많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존 영역에서 늘 하던 일을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혁신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새로운 일을 맡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의 키위새 이야기에서 독 사장이 키위새에게 “이곳이 바로 우리 회사의 전략적 요충지이네, 자네가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상할 테니 최선을 다해주게”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었다.
사실 독 사장은 UN 식량농업기구 (FAO, United Natio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에서 개최한 '식량으로서의 곤충, 이제는 인간이 깨물 차례'라는 워크숍에서 앞으로의 식량난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로 인해 지금껏 열심히 모았던 사료나 새우깡보다 땅 속에 있는 곤충의 가치가 높아질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독 사장은 곤충을 통한 혁신을 꿈꾸며 키위새를 풀숲에 배치했지만, 공정성을 소홀히 여기는 바람에 키위새로부터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을 이끌어 내는 데 실패하게 되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공정성이 조직 변화에의 몰입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2]
먼저 분배공정성이 낮은 경우 조직 구성원은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투입을 감소시키므로, 조직 내 자원의 재분배를 유발하는 조직 변화 상황에서는 낮은 분배공정성을 고려해 변화를 지지하고 따르는 노력을 적게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절차공정성이 높으면 조직구성원은 조직이 주도하는 변화 프로그램을 신뢰할 수 있으므로 보다 열심히 변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호작용공정성이 높아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변화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과 수용도가 높아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임금 만족, 직무만족, 이직의도, 조직몰입, 상사 및 경영자에 대한 신뢰, 조직 시민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공정성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조직과 상사가 분배공정성, 절차공정성, 상호작용공정성에 공을 들여야 구성원들의 머리 속에 ‘지각된 공정성’이 자리 잡게 된다.
요컨대 새로운 도약을 위해 혁신을 시도하는 조직에서는 폼나게 전략 어젠다를 설정하기에 앞서 우선 조직 내 공정성 수준을 파악하고, 중요한 공정성 이슈를 파악해 구성원들의 불공정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번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던 키위새는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키위새는 자신이 날개가 없어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것이라 자책하며 버드 주식회사를 나와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을 준비한다. 날개가 없어 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 하고 항상 땅만 내려다보던 키위새가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정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다음 생에는 키위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영상을 보내드린다.
날아라 키위새!
[1] http://www.info-rotorua.com/rainbow-springs/
[2] 조직공정성, 조직몰입, 학습조직 분위기가 6시그마 몰입과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 유지수, 김주영, 조봉순, 김혜정
[참고자료]
삼성전자 신뢰향상 프로그램, Fairness 과정 / PSI컨설팅 김문숙, 박상훈
리더십이 인사공정성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 김지한, 김영우, 권우덕
보상의 공정 지각이 조직몰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증연구 / 심원술, 전옥규
임금 분배의 공정성에 대한 노동자 의식과 결정요인 / 정이환
조직 공정성이 구성원의 지식공유에 미치는 영향 / 박희태, 이수진, 손승연, 김석영, 윤석화
조직시민행동의 선행요인과 성과평가에 미치는 영향 / 윤영채, 이광순
직장인들의 공정성 인식 변화에 대한 연구 / 오계택, 윤정구
조직공정성인식, 조직신뢰, 조직시민행동간 영향관계분석 / 김호균
조직공정성이 상관신뢰와 공직몰입에 미치는 영향 / 박철민, 김대원
상사의 리더십 행동과 조직공정성 및 조직시민행동의 관계에 대한 연구 / 정윤길, 이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