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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팍 Aug 10. 2018

꼼수 판별법 (하)

박상훈의 INNOSPARK, 2011년 11월호

1886년, 미국의 화학자 아서 디혼 리틀 Arthur Dehon Little이 Arthur D. Little을 설립하면서 경영컨설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

그 이후 수많은 컨설팅 회사들이 설립되었는데 Vault.com에서 매긴 최근 순위에 따르면 Bain & Company, McKinsey & Company, The Boston Consulting Group, Inc., Deloitte Consulting LLP, Monitor Group과 같이 역사가 길고 유명한 회사들이 1위에서 5위까지 포진해 있음을 볼 수 있다. [2] HR (Human Resources) 분야로 한정한다면 Top 5는 Mercer LLC, Towers Watson, Aon Hewitt, Hay Group, Deloitte Consulting LLP이다. [3]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사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입장에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많은 돈을 들여 유명 컨설팅 회사와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도 선행 프로젝트의 산출물인 유명 컨설팅사의 보고서를 검토하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예를 들면 뚜렷한 포인트 없이 보고서 분량 불리기만 했다던가, 구체적인 근거와 논리적 전개 없이 임의로 결론을 내리거나, 후속 프로젝트에 대한 연계성 또는 현업 적용성을 고민한 흔적이 없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혼탁한 비즈니스 아이디어 시장


제프리 페퍼 Jeffrey Pfeffer와 로버트 서튼 Robert I. Sutton이 함께 쓴 증거경영 (Hard Facts, Dangerous Half Truths, and Total Nonsense)에서는 유명 컨설팅 회사들이 주도하는 비즈니스 아이디어 시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멀쩡한 관리자들이나 컨설턴트가, 변화를 주도할 책임자들이 비즈니스 아이디어 시장으로 가지만, 슬프게도 그들을 오도하는 주장들과 조언들에게 바로 압도당하고 만다. 비즈니스 아이디어 시장에는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 전염병처럼 돌고 있다. (중략)

첫째, 한 사람이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있다. 경제경영 전문 잡지와 신문만 최소한 100개가 된다. 또 절판 안 된 경영 관련 서적만 최소 3만 권이며, 매년 3,500권이 새로 시장에 나온다.

둘째, 경영 관행에 대한 권고들이 체계적이지도 않고 제각각이어서 도저히 기억할 수도 없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다.

셋째, 경영 관련 서적, 미디어 기사, 경영문제의 대가 Guru 혹은 컨설턴트들의 수는 늘어가지만, 관리자들이 듣는 조언들은 놀랄 정도로 일치하지 않는다. (중략)

바른 조언과 틀린 조언을 구별 못 하는 관리자들은 틀린 경영 관행을 믿고 시행해 보라는 유혹에 계속 시달리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컨설턴트와 비즈니스 아이디어 공급자들은 아이디어와 해법을 판매하면 '언제나' 보수를 챙기고 결과에 따라 '가끔씩' 보수를 요구한다. 그러나 제시한 권고(조언)가 효과가 있어야 보수를 받겠다는 경우는 '결코' 없다. (중략)

물론 우리는 관리자들이 다른 업무들에 이미 지쳐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책들과 세미나,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조언들 속에 있는 아이디어들을 영악하게 구별해 낼 수 있을 때 당신과 회사가 커다란 이익을 낼 것이다.


인용한 부분과 관련해 저자들이 경영 지식을 만들고, 평가하고 판매하며, 또 적용하는 데 필요한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책의 본문에서 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그럼 지금부터 컨설턴트가 꼼꼼하게 자기를 포장하는 수법을 파악하는 꼼수 판별법에 대해 알아보자.



1. 달변의 꼼수


컨설턴트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고객을 설득하며 어려운 과제를 진척시켜 나가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말을 잘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 제안 PT를 자주 하고, 프로젝트와 별도로 강의를 병행하는 경우도 많아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발표에도 능하다.

컨설턴트가 고객과의 원활한 소통에 지장이 있을 만큼 과묵한 것도 문제이겠지만 더 위험한 것은 말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이다.


'달변의 꼼수'는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어 프로젝트 중간에는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객사 담당자가 이 꼼수에 낚이면, 자신이 부질없는 말의 향연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런 '달변의 꼼수'를 판별하려면 TFT 멤버들과 함께 문서화되는 프로젝트 산출물을 꼼꼼하게 평가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이 제대로 반영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즉 컨설턴트가 말은 거창하게 해놓고 이를 문서에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면 한 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2. 용어의 꼼수


듣도 보도 못한 용어로 담당자의 기를 죽여 주도권을 잡으려는 컨설턴트들이 종종 있다. 이 '용어의 꼼수'는 '달변의 꼼수'와 자주 결합되어 쓰이는데 권위를 높이기 위해 '최근 외국 유명대학의 모 교수가 제시한 모 이론에 의하면...'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용어의 꼼수'를 즐겨 쓰는 컨설턴트는 난해한 용어가 갖고 있는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내 비주류 이론을 알아두거나 독특한 용어를 외워두곤 한다. 이와 달리 고객 중심적인 컨설턴트는 복잡한 이론과 어려운 용어도 고객 눈높이에 맞춰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한다.


'용어의 꼼수'를 막기 위해서는 컨설턴트와의 미팅 이후 고객사 담당자가 그 용어의 명확한 의미를 알아보고, 해당 이론이 그 분야에서 충분히 검증된 것인지, 그 이론을 이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잠깐만 검색해 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으므로 고객사 담당자는 컨설턴트가 언급하는 어려운 용어를 흘려듣지 말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3. 만능의 꼼수


프로젝트 시작과 함께 킥오프 미팅 Kick-off meeting을 하면 고객사의 기대사항을 보다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데, 간혹 프로젝트 하나로 조직의 수많은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고객도 만나곤 한다.

물론 그런 고객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컨설팅사에 지불하기로 한 비용은 일정하므로 이왕이면 프로젝트를 통해 최대 효과를 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A의 효과를 목표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A, B, C의 효과를 동시에 노리는 프로젝트로 그 성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A의 비용으로 A, B, C의 효과를 달성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이렇게 프로젝트의 목표가 분산되면 대개의 경우 본래 달성하고자 했던 A의 효과도 거두기 어렵다.


문제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기대하는 고객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해 '만능의 꼼수'를 쓰는 컨설팅사가 있다는 점이다. '만능의 꼼수'는 제안 단계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제안서에 고객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수주가 확정되면 이런저런 어려움을 들며 인력 투입을 줄이게 된다.

'만능의 꼼수'를 판별하려면 최근에 해당 컨설팅사와 유사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에 연락해 평판을 체크해야 한다. 이때 컨설팅사 안에서도 PM (Project Manager)과 PL (Project Leader)이 누구냐에 따라 품질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제안서 상의 PM과 PL에 대한 정보까지 디테일하게 확인하는 것이 좋다.



4. 후광의 꼼수


한 부분에서 받은 인상 때문에 다른 부분 또는 전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확대 해석하는 부적절한 일반화의 오류를 후광효과 Halo effect라 한다. 이를 꼼수로 승화시켜 악용하는 컨설턴트는 고객사 담당자가 갖고 있는 컨설팅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이용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관철시키기도 한다.

'후광의 꼼수'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구는 "작년에 수행한 S전자 및 H자동차와 프로젝트를 한 경험에 따르면...", "전에 제가 글로벌 기업인 B기업에 재직하고 있을 때..." 등이다.


이 꼼수는 사실 앞의 세 가지 꼼수보다 판별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고객사가 바른 조언을 채택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할 때에도 위의 문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컨설턴트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그런 말을 할 때 자기를 위해서인지, 고객을 위해서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방법을 있는 그대로 우리 회사에 적용하려 하는지, 그 방법을 우리 회사에 맞게 변형시켜 적용하려 하는지를 눈여겨보면 된다. 고객사마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 산업의 특성이 다르고, 조직의 문화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선진 기업에서 쓴 방법이라 하여 있는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면 '후광의 꼼수'일 확률이 높다.



꼼꼼한 수법, 꼼수


지금까지 달변의 꼼수, 용어의 꼼수, 만능의 꼼수, 후광의 꼼수를 들어 꼼수 판별법을 정리해 봤다. 이외에도 프로젝트에 적용한 방법론의 단점과 부작용은 배제하고 장점만 부각하거나, 실패할 확률이 낮은 '오래된 비즈니스 아이디어'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최신 아이디어'만을 제시하거나, 실행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계획만 세우고 빠져나가는 등 무궁무진한 꼼수들이 있다. 컨설턴트의 꼼수는 워낙 꼼꼼하게 디자인된 수법이라 쉽게 판별하기도 어렵고, 설령 알아차렸다고 해도 애매한 부분이 많아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이에 필자는 고객사 입장에서 ‘꼼수에 대처하는 방법’과 컨설턴트 입장에서 ‘꼼수 대신 고수가 되는 방법’에 대해 제언 提言하고자 한다.



꼼수 대처 방법


컨설턴트가 꼼수를 쓰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소속되어 있는 컨설팅사가 정책적으로 프로젝트 산출물의 품질 Quality보다는 프로젝트 수주 물량 Quantity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경우, 그리고 컨설팅사의 정책과 관계없이 컨설턴트 개인이 꼼수를 즐겨 쓰는 경우이다.


그 까닭에 관계없이 이러한 꼼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개인적으로 항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해당 컨설팅사에 공식적으로 문서를 송부해 문제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치를 통해 고객사 담당자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컨설턴트와 개인적인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컨설팅사는 고객의 경고 신호를 수용해 문제가 반복되는 컨설턴트를 거르고 유사한 꼼수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공식 문서를 보낼 필요가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된 컨설팅사와 협상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불쾌함을 느꼈을 경우

프로젝트 산출물에 문제가 많아 PM에게 충분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

컨설팅사의 영업 담당이 제시한 솔루션이 결과적으로 부적합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때 책임을 지게 될 컨설턴트가 자체 필터링 Filtering을 할 우려가 있으므로 해당 컨설팅사의 대표 메일로 문서를 보내는 것이 좋다. 다만 공식 문서이므로 특정 컨설턴트에 대한 감정을 실어 적기보다는 사실에 근거해 적절한 개선책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꼼수 대신 고수


필자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짧은 글을 일기 쓰듯이 쓴 적이 있다. 그 글들 가운데 2008년 11월 30일에 'Consult'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글을 참으로 부끄럽지만 원문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제가 제대로 조언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이 일을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께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대표께서는 내가 당돌하다고 여기셨는지 그냥 피식 웃고 마셨지만 고객들에게 제대로 자문(諮問)해줄 수 있냐고 자문(自問)했던 그 마음은 나에게 아직도 유효하다. 테헤란로의 매연 가득한 공기를 밤낮으로 마셔 가며 제대로 조언을 하겠다고 한참을 아등바등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물음표 상태이다.

'내가 만드는 것들이 기업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건가?'
'내가 조직과 구성원들의 성장과 변화에 기여하기는 하는 건가?'
'내가 조언을 잘못해서 누를 끼친 건 아닌가?'

누군가에게 이것이 답이라고 조언을 하는 것은, 세상에 답이 없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2009년에는 과연 내가 적절한 조언을 하고 있나?라는 물음표를 느낌표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침표 수준까지는 올려 봐야겠다. 그리고 기업에만 열심히 나름의 답을 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나름의 답을 찾아 줘야겠다.

2009년, 첫 고객은 나 자신이다!


3년 후, 2011년의 필자는 여전히 물음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3년 전 물음표에서 마침표를 거쳐 느낌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지금은 오히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항상 물음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음표가 마침표 혹은 느낌표가 되는 순간, 자만심이 깃들고 꼼수를 쓰는 데 별 죄책감을 못 느끼게 될 것 같다. 물음표를 가슴에 품고 끝없이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야 고객에게 답에 가까운 조언을 할 수 있고, 스스로도 발전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컨설팅이라는 업과 관련해 필자가 들었던 비유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백조의 헤엄'이다. 수면 위로는 전문가라는 고상한 모습으로 유유히 떠다니지만, 사실은 수면 밑으로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죽으라고 물갈퀴질을 해야 한다는 비유이다.


장차 컨설턴트로 일하고자 하는 분들과 주니어 컨설턴트들에게 필자가 '꼼수 대신 고수'가 되는 '답'은 줄 수 없지만 '답에 가까운 조언'을 한다면 <물음표를 품은 백조가 되고자 노력하라>는 것이다.
 

우연히도 백조의 목은 물음표처럼 구부러져 있다.


 


      



[1] http://en.wikipedia.org/wiki/Arthur_Dehon_Little

[2] Consulting Firm Rankings 2012: Vault Consulting 50
http://www.vault.com/wps/portal/usa/rankings/individual?rankingId1=248&rankingId2=-1&rankings=1®ionId=0&rankingYear=2012

[3] Consulting Firm Rankings 2012: The Best Firms in Each Practice Area: Human Resources Consulting
http://www.vault.com/wps/portal/usa/rankings/individual?rankingId1=248&rankingId2=-1&rankings=1®ionId=0&rankingYear=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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