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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y 23. 2024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

"컨설팅의 1년은 일반 제조업의 3년과 같다고?"

몇 년 전, 한 기업의 임원과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된,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커리어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자신만만한 어조로 컨설팅 업계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듣는 내내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컨설팅의 1년은 일반 제조업의 3년과 같아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제조업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내게 그의 발언은 선뜻 도발처럼 느껴졌다. 제조업 종사자들의 노고와 전문성을 폄하하는 듯한 그 태도에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더욱이 내 이력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내뱉다니, 그분에 대한 존중이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뇌리를 스치는 기억의 파편들이 있었다. 신제품 런칭을 앞두고 부품 공급이 막혀 밤새 진땀 흘렸던 일, 예기치 못한 생산 차질로 클레임을 받아 협력사를 설득하러 동분서주했던 경험들. 그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값비싼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물론 컨설팅 업무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복잡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은 높은 수준의 역량을 요구하며, 야근과 스트레스는 컨설턴트들에게 일상인 셈이다. 하지만 제조업 현장 역시 예기치 못한 불량이나 클레임 등 다양한 도전에 맞닥뜨리곤 한다. 거래처의 부도나 계약 불이행 시 법적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 단순 업무 그 이상의 전문성과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그 임원의 발언에는 자신의 경험과 인식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타인의 가치를 쉽게 재단하려 드는 태도가 엿보였다. 컨설턴트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제조업 종사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노력 또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이다. '남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말처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공감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각자가 알지 못하는 서로의 사정과 애환이 있는 법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는 성공적인 컨설턴트가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 중 하나로 '공감 능력'을 강조한 바 있다. 클라이언트와 진정성 있는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그들의 니즈를 심도 있게 파악하여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이야말로 컨설팅의 본질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통찰은 컨설팅 업계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개별적인 도전과 역경에 직면하며 인생의 여정을 개척해 나아간다. 피상적인 기준으로 누군가의 가치를 폄훼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진정 필요한 건 겉모습 너머 숨은 노력과 맥락을 알아보려 애쓰는 혜안, 이면의 고뇌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다. 상호 간의 경험과 전문성을 존중하고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조화롭게 융합할 때, 비로소 더 큰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 사회의 구성인으로서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려 노력하는 공감의 자세,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얼마 전 오랜 기간 제조업을 운영한 지인이 내게 물었다. 헤드헌터로부터 추천받은 인물이 있어서 영입을 고려하고 있는데, 같이 일해본 적이 있으니 어떤 분인지 묻더라. 놀랍게도 그분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폄하하던 제조업에서 자리를 찾는 듯 했다. 문득 그때 그 식사 자리가 떠올랐다.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글쎄요.."



한 사람의 역량과 잠재력을 평가할 때는 과거의 인상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그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의 태도와 가치관이 조직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분은 자신의 경험과 역량이 제조업에는 과분하다는 듯한 인상을 남겼어요. 물론 사람은 변할 수 있죠. 하지만 그런 인식의 전환이 단기간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특히 리더십 포지션이라면 더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어요."

내 조언에 지인은 잠시 침묵했다. 

"하긴, 제조업을 하찮게 여기던 사람이 갑자기 제조업에서 기회를 찾는다는 게 어딘가 아이러니하네요."

결국 그가 무심코 뱉은 말은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의 이직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실력이나 경력만으로는 리더의 자격을 갖추기에 부족하다. 진정한 리더란 구성원들의 다양한 배경과 역량을 존중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타인을 대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남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태도는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와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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