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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r 07. 2024

"출판사 사정으로 출간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37개가 넘는 출판사에 제안을 보냈고 그중 몇 출판사가 회신을 하였다

어느 날, 출간 계약을 맺은 출판사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가님, 죄송하지만 출간이 어려울 것 같아요.”


몇 개월 전 원고를 넘겼는데 별다른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있나요?”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그가 대답했다.


“저희가 경영상의 문제로 출판 사업을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아니면 출간을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실망스러웠다. 계약서를 내밀고 계약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었지만, 알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렇지 않아도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시대이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형 출판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출판사의 동의 하, 새로운 출판사를 찾기로 했다. 물론 그때는 새로운 출판사를 찾는 과정이 이렇게 험난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37개가 넘는 출판사에 제안을 보냈고 그중 몇 출판사가 회신을 하였다.


"저희가 올해 계획한 책들과 기획 방향이 다르고 발행 계획을 마친 후라서 출간이 어려울 듯합니다."


"원고를 검토했지만 저희가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는 거리가 다소 멀어 출간이 어려울 듯합니다."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현재 기획하는 출간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저희가 출간이 어려울 듯합니다."


"이 책은 시의성이 중요한데 저희는 출간 일정이 차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 거절을 당하니 아무리 맷집이 좋은 나지만 점차 의욕이 꺾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출간은 내 삶에 예정이 없는 일인데 괜한 고집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넘는 기간 동안 출간을 준비한다며 그 어떤 일보다 원고에 집중해 왔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많은 출판사들이 출간을 거절하자 어쩌면 내가 고집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출판사입니다. 저희는 일인 출판사로, 책 출간을 원하는 분들에게 자기비용 출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참 설명을 듣던 중 내가 물었다.


"아, 그러니깐 출간에 필요한 비용을 저자가 부담해야 된다는 거죠?"


"네, 저희는 이제까지 그러한 방식으로 출간을 해왔어요. 그런데 보내주신 원고를 보니깐 필력이 좋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번만 예외적으로 저희와 반반 투자하고 대신 인세는 평소보다 2배 이상을 가져가시는 것은 어떠세요?"


그의 제안은 꽤 매력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적인 수필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업계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책으로도 나올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출판사를 설득하지 못해 자기비용으로 출간하는 것은 옹졸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출간은 또다시 희미해져 갔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난번 출판사와 계약하고 기쁜 마음에 계약서를 캡처하여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던 나 자신을 말리고 싶었다. 더 앞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터뷰 자체를 시작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경고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탓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포기하려고 하면 다시 희망의 빛줄기를 내려주는 운명이 괜스레 원망스러웠다. 어쨌든 관심을 보여준 출판사와 미팅을 잡고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가족에게는 출판사 미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 자신도 기대를 낮추고 길을 나섰다.


명함을 건네는 출판사 담당자의 인상은 매우 선했다. 하지만 예상한 대로 그는 지금 이대로 출간은 난항이 예상된다며 대대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그중 하나는 원고가 인터뷰 형식이 아닌 일인칭으로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실장님, 제안하신 방식이 책으로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통해 저를 알리는 것보다, 제가 인터뷰한 분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현장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배경에 묻혀도 괜찮습니다.”


“인터뷰 콘텐츠의 매력이 무엇인지 아세요? 인터뷰 내용이 좋으면 인터뷰 대상자가 주목을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터뷰한 분들이 글이 발행된 후에 이직하거나 승진하거나 외부 강연을 받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그런데 콘텐츠가 부실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그 모든 책임이 저에게 돌아와요. 득 보다 실이 크죠. 그럼에도 저는 이 방식을 고수해요. 더 쉽게 읽히는 글, 더 몰입할 수 있는 글, 더 오래 기억될 글을 쓰기 위해서요."



출판사 담당자가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입이 방정이구나. 그냥 수정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할걸.'


그런데 그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작가님, 저희와 계약하시죠."


"그리고 책의 형식도 작가님의 의견대로 하시고요."


"네, 정말요?"


"그럼요, 오히려 작가님을 더 일찍 만나지 못해 아쉽네요."


그렇게 우린 장시간 대화를 나눈 후 웃으면서 악수하고 헤어졌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 한 켠에는 의심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계약까지 했다가 출판사가 출간을 포기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팅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도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사무실로 출근한 뒤에도 출판사로부터 구두계약을 파기하자는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며, 들뜨는 마음을 억제했다.



그런데 며칠 후, 등기가 내 앞으로 왔다. 열어보니 계약서였다. 그 순간 한 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엄마, 나 이제 정말 출간하게 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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