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자본주의 시대, 윌리엄 진서가 말한 '명료성'을 회복하는 길
"글을 올리면 조회수가 얼마 정도 나오세요?"
자주 받는 이 질문은 오늘날 글쓰기를 규정하는 새로운 척도인 '트래픽'의 압도적 영향력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콘텐츠 생산의 방향성과 글쓰기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일찍이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글이 그 자체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보다, 내용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마치 세상의 풍경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깨끗한 유리창처럼, 잘 쓰인 글은 독자가 글의 구조나 표현을 의식하지 않고도 아이디어와 감정이라는 '바깥 풍경'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명성'은 결코 쉽게 달성되지 않는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명료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다듬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것은 고도의 장인 정신을 요구한다.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였던 윌리엄 진서(William Zinsser)는 그의 저서에서 명료성(Clarity) 없이는 좋은 글은 불가하다며, "당신의 글이 복잡할수록, 독자는 당신의 생각을 따라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최소화하고 오직 내용의 선명함만을 남겨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딜레마: 감시 자본주의와 글의 변질
문제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트래픽(traffic)'이 콘텐츠의 절대적 가치 척도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의 인기를 측정하는 것을 넘어, 하버드 대학교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 교수가 지적한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의 메커니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주보프에 따르면, 플랫폼은 사용자(독자)의 관심과 행동을 포착하여 행동 데이터를 추출하고 이를 광고주에게 판매한다. 이 관점에서, '조회수'는 글쓰기의 질적 가치가 아니라, 플랫폼이 사용자를 자극하여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양적 지표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치 중심주의는 글쓰기의 본질을 왜곡한다. 작가가 투명성을 추구하기보다 트래픽을 유발하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표현, 즉 '클릭베이트(clickbait)'에 집중하게 될 때, 글은 더 이상 내용을 투과시키는 유리창이 아닌 독자의 시선을 강탈하는 화려한 간판으로 변질된다. 미디어 연구자들은 정량적 지표에 의해 평가받는 '메트릭 저널리즘(Metric Journalism)'이 정보적 가치 대신 정서적 자극을 우선시하는 콘텐츠를 양산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독자의 신뢰도를 훼손하고 미디어 생태계 자체를 병들게 한다고 비판한다. 깊이 있는 성찰이나 복잡한 논리를 담은 글이 조회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평가 절하되는 것은 이러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역설이다.
글쓰기 가치 회복을 위한 삼위일체의 역할
따라서 글쓰기의 가치 회복은 단순한 작가의 윤리를 넘어,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다.
작가는 트래픽이라는 단기적 보상에 현혹되지 말고, 글의 투명성과 명료성이라는 근본 가치에 헌신해야 한다. 매체 역시 단순한 조회수나 광고 수익 수치(Metric)보다는, 글이 사회에 미치는 실질적인 질적 영향력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영향력은 단발적인 클릭이 아닌, 명료한 메시지를 통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다.
독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독자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간판이 아닌, 투명하고 명료하여 그 너머의 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글을 능동적으로 찾고 이해하려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성숙한 독자의 수요가 있어야 질 높은 글이 시장에서 정당하게 보상받고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문화적 토대가 마련된다.
결국, 좋은 글쓰기는 깨끗한 유리창과 같다는 오웰의 비유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본질적인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우리는 트래픽의 유혹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의미 있는 지식과 통찰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하고 명료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작가, 매체, 그리고 독자들이 함께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방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