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Good to Great

스쿠터 액세서리를 팔던 청년이 뷰티 브랜드를 만든다면?

일레븐코퍼레이션의 성장 스토리

by 조인후

스무 살 무렵, 백창준 대표는 스쿠터 동호회라는 작은 커뮤니티에서 사업가로서의 첫 발을 뗐다. LED 액세서리를 공동 구매해 판매하며 얻은 실무 경험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몸소 익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소박한 성취감은 훗날 그가 더 큰 시장을 바라보게 한 기초 체력이 되었다.


결정적인 기회는 2014년에 찾아왔다. 중국을 필두로 K-뷰티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시기, 그는 화장품 유통업에 뛰어들어 시장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수많은 브랜드가 명멸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는 단순한 유통 수익을 넘어 하나의 확신에 도달했다. 시장의 흐름을 읽는 안목과 제품의 본질을 이해하는 감각이 있다면, 타인의 브랜드가 아닌 '자신만의 최고의 브랜드'를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2018년, 백 대표는 이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 일레븐코퍼레이션(Eleven Corporation)을 설립했다. 유통 현장에서 다져온 탄탄한 실전 감각은 큰 자산이었지만, 제조와 브랜딩의 영역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화려한 K-뷰티 시장의 외형과 달리, 외부 투자 없이 시작한 신생 기업 앞에는 자본력과 신뢰도라는 냉혹한 현실의 벽이 놓여 있었다. 유통 전문가에서 브랜드 빌더로 진화하기 위한 그의 도전은 그렇게 시장의 차가운 검증대 위에서 시작되었다.


image.png ⓒ일레븐코퍼레이션


창업가의 분투: 자본의 한계를 넘어서는 전략적 선택

외부 투자 유치 없이 독자 노선을 택한 일레븐코퍼레이션의 행보는 시작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과거 유통 사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체감했던 백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내수 시장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국내외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과감한 '투트랙(Two-track)'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이는 시장 선점을 향한 자신감의 발로였으나, 한정된 자본과 인력으로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위험한 도박이기도 했다.


백 대표의 첫 번째 승부수는 철저한 차별화에 있었다. 그는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스킨케어와 색조 시장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대신, 알코올을 배제하고 향의 본질을 극대화한 프래그런스 브랜드 '에이딕트(a•ddct)'를 론칭했다. 이는 단순히 강자를 피하려는 소극적 회피가 아니었다. 과열된 K-뷰티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타 브랜드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니치(Niche) 카테고리'에 자신만의 해자를 구축하려는 치밀한 계산의 결과였다. 친환경 패키징과 천연 원료를 향한 고집 역시 브랜드의 희소성을 높이는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하지만 야심 찬 포지셔닝에도 불구하고, 이름 없는 신생 브랜드가 소비자의 진입 장벽을 넘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혹했다. 백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신생 브랜드가 대중과 소통하고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고단했다"라고 술회한다. 독보적인 제품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시장의 신뢰로 치환하는 과정은 긴 호흡의 싸움이었다. 이 고전하던 흐름을 단숨에 반전시킨 결정적 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brand_thumb_addct.png ⓒ일레븐코퍼레이션


전환점: 플랫폼 데이터와의 결합과 전략적 집중

일레븐코퍼레이션의 성장 궤도에서 CJ올리브영과의 협업은 시장 안착을 위한 실질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판로 확대를 넘어, 자본력이 부족한 신생 브랜드가 대규모 유통망의 소비 데이터를 비즈니스 전략에 이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성장의 물꼬를 튼 것은 2021년 헤어케어 브랜드 ‘그로우어스’의 ‘노워시 트리트먼트’ 입점이었다. 초기 브랜딩 과정에서 일레븐코퍼레이션은 유통 채널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시장의 요구를 파악했다. 백 대표는 입점 이후의 과정을 "제품의 정체성을 시장에 실질적으로 각인시키는 구체적인 브랜딩의 시작"이었다고 평가한다.


전략의 유효성은 2023년 말, 신규 라인업 확장과 기존 제품 강화 사이의 선택에서 증명되었다. 당시 백 대표는 품목 다변화를 계획했으나, 유통 데이터는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성장 잠재력이 확인된 이른바 '히어로 상품(Hero Item)'에 자원을 집중해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백 대표는 신규 제품 출시를 미루는 대신 '노워시 트리트먼트'에 마케팅 역량을 결집하는 선택을 내렸다. 결과는 지표로 나타났다. 해당 단일 품목으로만 연간 매출 47억 원을 기록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고, 이는 곧 대외적인 성과 지표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국내 채널에서의 성과는 글로벌 진출을 위한 레버리지로 활용되었다. 해외 바이어들에게 국내 주요 플랫폼의 판매 랭킹과 수상 이력은 제품의 대중성을 입증하는 객관적 데이터가 되었다. 특정 플랫폼 입점 사실 자체가 브랜드의 신뢰도를 보증하는 일종의 보증 역할을 수행하며, 해외 유통망 확장의 문턱을 낮추는 실질적인 무기가 된 셈이다.


폭발적인 성장 뒤에 온 성장통

일레븐코퍼레이션은 외부 투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적인 매출로 성장을 견인하며 초기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2018년 법인 설립 당시 9억 원이었던 매출은 이듬해 60억 원으로 7배 가까이 폭등했고, 2020년에는 150억 원을 기록하며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특히 2021년 올리브영 입점은 회사의 체급을 한 단계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2배 성장한 300억 원대로 올라섰다.


2022년 매출 449억 원을 달성하며 정점에 도달한 시점에 회사는 4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며 외연 확장을 가속화했다. 그러나 2023년, 성장의 이면에는 혹독한 조정기가 찾아왔다. 매출은 330억 원으로 감소했고, 감사보고서에는 31.8억 원의 당기순손실이 기록되었다. 수치상으로는 위기처럼 보였으나, 내부적으로는 성장의 질을 바꾸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였다.


2023년,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던 일레븐코퍼레이션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매출은 330억 원으로 조정되었고 31.8억 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해외 법인 설립과 현지 마케팅 강화 등,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원을 집중 투입하며 발생한 비용으로 보다.


일시적인 적자를 감수하며 실행한 경영진의 과감한 베팅은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이러한 대담한 투자는 불과 1년 만에 실질적인 성과로 돌아왔다. 일레븐코퍼레이션은 2024년 기준 연 매출액 410억 원, 영업이익 49억 원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흑자 전환을 이뤄냈다. 51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수익성까지 확보한 이 지표는, 외연 확장과 내실 경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경영 전략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했다.


그로우어스 다이소 입점.jpg ⓒ일레븐코퍼레이션


5개의 개성, 하나의 세계관: 일레븐의 브랜드 포트폴리오

재무적 성장통을 거치며 내실을 다진 일레븐코퍼레이션은 '틈새 카테고리 공략'과 '지속가능성'을 두 축으로 삼아 5개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이는 기초 화장품과 색조에 치중된 기존 K-뷰티 시장의 전형성에서 탈피하여, 세분화된 소비자 니즈를 선점하기 위한 다각화 전략이다. 각 브랜드는 독립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레드오션을 우회하여 각기 다른 영역에서 브랜드 해자를 구축한다는 공통된 지향점을 가진다.


고효능 스킨케어 파넬과 탈라소테라피 컨셉의 그로우어스는 각각 성분과 기능성을 극대화하며 스킨 및 헤어케어 시장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확보했다. 프래그런스 전문 브랜드 에이딕트는 기존 향수의 문법을 비튼 제품 설계로 차별화된 팬덤을 형성했으며, 비건 색조 브랜드 루미르는 트렌디한 전문성을 앞세워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프리미엄 구강케어 브랜드 라덴스까지 가세하며 일상 전반을 아우르는 카테고리 라인업을 갖췄다.


이러한 멀티 브랜드 전략은 특정 카테고리의 유행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안전장치인 동시에, 일레븐코퍼레이션이 단순한 화장품 제조사를 넘어 종합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탄탄한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성공적인 안착을 바탕으로 일레븐코퍼레이션은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아시아, 미주, 유럽 등 전 세계 55개국에 진출하며 1,800여 개 이상의 오프라인 점포에 입점하는 등 유통망을 빠르게 확장 중이다. 이러한 성과는 2023년 500만불 수출의 탑 수상으로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9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누적 투자액 120억 원을 기록했다.


대외적인 기업 가치 평가 역시 견고해지고 있다. 2023년 아기유니콘 선정에 이어, 최근에는 기업가치 1,000억 원 이상의 예비유니콘으로 선정되며 차세대 K-뷰티를 리딩할 주자임을 입증했다. 이는 단순히 상징적인 명칭을 얻은 것을 넘어, 일레븐코퍼레이션이 보유한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 가능성과 재무적 건전성을 시장이 객관적으로 인정한 결과다.


에필로그: K-뷰티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스무 살 무렵 스쿠터 동호회에서 사업을 꿈꾸던 청년은 이제 기업 가치 1,000억 원 이상의 유망 기업을 이끄는 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일레븐코퍼레이션의 시선은 단순한 규모의 확장을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백창준 대표는 향후 3년 내 주요 브랜드들을 플랫폼 내 매출 1,000억 원 규모로 키워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전략 시장을 집중 공략하여 해외 매출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백 대표의 궁극적인 비전은 K-뷰티라는 수식어의 후광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자체의 힘으로 인정받는 데 있다. 개별 브랜드가 가진 탁월한 제품력과 고유한 정체성으로 글로벌 소비자들과 정면 승부하겠다는 담대한 포부다. 특정 국가 브랜드의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독립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승부하는 일레븐코퍼레이션의 행보는, 거품 섞인 기대를 넘어 K-뷰티가 나아가야 할 실질적인 생존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