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수플랫의『백악관 말하기 수업』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와 단어가 쏟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는 문장을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수많은 리더가 화려한 수사학으로 무장함에도 그 정교한 말들이 청중의 삶에 가닿아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세련된 단어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그 말이 화자의 삶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테리 수플랫은 저서 『백악관 말하기 수업(Say It Well)』을 통해 이러한 소통의 본질을 파고든다. 그는 말하기를 매끄러운 처세술이나 단순한 기술의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자기 안의 진실을 꺼내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로 정의한다. 이 책은 탁월한 웅변가가 되기 위한 지침서라기보다, 자신의 목소리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다정하고도 치밀한 가이드북에 가깝다.
저자가 책 전체를 관통하며 던지는 철학적 화두는 '개인이 가진 고유한 영향력'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즐겨 인용했던 문장, "It just goes to show you how one voice can change a room(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방 안의 분위기를 바꾸는지 보라)"은 이 책의 중심 철학을 대변한다.
소통의 진정한 동력은 화자의 권위가 아니라 목소리의 '전염성'에서 나온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발화가 방 안의 냉기를 온기로 바꿀 때, 그 열기는 도시와 국가를 거쳐 세계라는 거대한 바다로 뻗어 나가는 동심원을 그린다. 저자는 무대 공포증에 짓눌린 이들에게 실질적인 탈출구를 제시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강박을 내려놓고, 지금 내 목소리가 닿는 거리의 '이 방(Room)'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악기인 '자신의 목소리'를 이미 품고 태어난다.
오바마의 연설 능력은 타고난 천재성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시카고의 어두운 교회 지하 강당에서 단련된 노력의 산물이다. 공동체 활동가 시절, 그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법부터 익혔다. 훌륭한 연설가는 청중을 향해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지 않는다. 대신 청중과 함께 대화한다. 말하기는 일방적인 투사가 아니라 양방향의 교감이기 때문이다.
청중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사람들의 깊은 속사정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개인의 서사는 타인의 삶과 공명하는 보편적인 서사로 진화한다. 오바마는 누구나 공유할 가치가 있는 독특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을 믿었으며, 그것이 타인과 깊은 수준에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임을 실전에서 확인했다.
하버드 시절, 인권 운동가 존 루이스를 기리는 연설에서 오바마는 처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연결'의 전율을 느꼈다. 팩트와 논리가 아닌 가슴속의 열정을 끄집어냈을 때 청중은 움직였다. 이것이 바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를 뒤흔들었던 그 '리듬'의 시작이었다.
효과적인 소통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내면의 자아 인식이 외부로 향하는 말의 질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하라(Say what only you can say)."
그가 도입한 '성스러운 이야기(Sacred Story)' 개념은 이 철학의 핵심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본질적인 자아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으며, 이는 삶에서 얻은 고통과 기쁨, 깨달음의 총체다. 연설문을 쓰기 전, 스스로에게 깊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을 믿는지, 목표는 무엇인지, 나를 나로 만드는 유일한 조각은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지식이나 논리는 누구나 복제할 수 있지만, 개인의 경험과 그 안에서 벼려진 신념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나 가치, 공동체에 대해 말할 때 비로소 최고의 역량이 발휘된다고 강조한다. 면접에서 뻔한 대답을 늘어놓는 대신 자신의 역량이 빛났던 구체적인 순간을 공유해야 한다. 누군가를 추모하거나 기념하는 자리라면 그 인물의 본질을 포착한 짧고 강렬한 에피소드를 꺼내야 한다. 통계 수치는 잊히지만, '오직 당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청중의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
위대한 말하기는 단순히 원고를 읽는 행위가 아니다. 연설자는 연설이라는 극의 작가이자 감독이며, 동시에 주연 배우여야 한다. 효과적인 연설의 구조는 시작(Beginning), 중간(Middle), 끝(End)의 세 단계로 명확하게 설계된다.
시작에서는 청중을 즉각적으로 사로잡되, 단순히 시선을 끄는 것을 넘어 청중을 하나의 '공동 목적(Shared purpose)'이나 가치 아래 결집시켜야 한다. 우리가 왜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지 그 이유를 상기시키는 단계다. 중간에서는 논리만큼이나 감성이 중요하다. 청중을 어떤 감정의 굴곡으로 안내할지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저자는 명확함은 기본이고 울림이 있는 '노래하는 듯한 언어(Language that sings)'를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연설자 자신'과 연결되길 원한다. 슬라이드는 말을 돕는 배경일뿐, 결코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훌륭한 말하기는 결코 고독한 단독 공연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을 빛내지 않는다. 청중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을 대화에 참여시켜야 한다. 때로는 타인의 기여나 서사를 조명함으로써 메시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내세울 때, 개인의 목소리는 비로소 집단의 목소리가 되어 거대한 파도를 만든다.
무엇보다 연설의 끝은 단순한 종결이 아니다. 그것은 청중의 가슴에 '씨앗'을 심는 행위다. 저자는 항상 희망으로 끝맺으라고(Always end your message with hope) 단호하게 말한다.
두려움은 사람을 멈추게 하지만, 희망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 분노와 공포는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사람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그 행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은 오직 희망에서 나온다. 백악관의 연설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낮은 곳의 진실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곳의 희망으로 끝맺었기 때문이다.
『백악관 말하기 수업』은 우리에게 무작정 말을 잘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는 이미 소중한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을 사람의 언어로 정성을 다해 전하라고 격려한다. 비즈니스 미팅이나 가족 모임, 혹은 거대한 강연대 앞에 서는 모든 이가 밑줄을 치며 읽어야 할 지침서다.
내 목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 나만의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용기, 그리고 언제나 희망을 향하겠다는 약속. 이 세 가지만 있다면 우리의 말은 반드시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씨앗이 된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서 있는지 명확히 아는 순간, 우리의 목소리는 비로소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