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준의 '팬덤파워'
"왜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우리 기업의 숨은 이야기를 기록해야 합니까?"
작가로서 수많은 기업가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서사를 기록해 오며 내가 가장 많이 마주했던 질문이다. 이 막연한 의문에 대해 가장 명쾌하고도 체계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최원준의 『팬덤파워』다. 이 책은 TV 광고의 영향력이 저물고 인플루언서의 한마디에 시장이 요동치는 '팬덤의 시대'를 관통하는 비즈니스 전략서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기술을 넘어, 왜 사람들이 특정 브랜드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고 기꺼이 '수호자'를 자처하게 되는지를 날카로운 통찰로 분석한다.
기업인들이 굳이 외부인인 내게 서사 기록을 요청하거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팬덤 형성의 절대적 시작점인 '오리지널 트루 스토리(Sincerity)'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책의 저자는 팬덤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치밀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유기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 설계의 첫 단추로 브랜드만의 진정성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꼽는다.
단순한 제품 사양서나 화려한 광고 카피만으로는 이미 눈이 높아진 소비자들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없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통해 정제된 기업의 역사, 창업자의 고뇌,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하나의 숨 쉬는 서사로 완성될 때 상황은 달라진다. 소비자들은 비로소 브랜드의 실체를 발견하고 정서적 유대를 맺는 이른바 '입덕(Touching)' 단계에 비로소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브랜드나 기업인들이 나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실패나 성공의 뒷이야기를 낱낱이 공개하려는 행위는 팬들과 깊은 '이해 & 공감(Behind Contents)'을 쌓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팬덤파워』는 팬들이 완벽하게 가공된 결과물보다 그 과정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에 더 큰 매력을 느끼며, 이를 통해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Identifying)'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팬들은 이제 브랜드를 '남'이 아닌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정보에 침잠하는 '몰입(Absorbing)' 단계를 지나 브랜드의 수호자로 진화할 준비를 마친다.
이러한 심리적 성숙은 단순한 선호를 넘어 대상을 삶의 지표로 삼는 '숭배(Worshiping)' 단계를 거쳐,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조건 없이 투여하는 최고 수준의 결속인 '헌신(Dedicating)' 단계에서 완성된다. 이 단계에 도달한 팬들은 브랜드의 위기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며, 자발적으로 평판을 방어하고 브랜드의 가치를 복구하는 '케어테이커(Caretaker)' 역할을 자처한다.
1980년대 파산 직전의 할리데이비슨을 구한 팬덤 '호그(H.O.G., Harley Owners Group)'의 사례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호그'는 전 세계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공식 모임으로, 단순히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를 넘어 브랜드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거대한 공동체다. 당시 이들은 단순히 오토바이를 구매한 고객에 머물지 않았다. 브랜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호그 멤버들은 할리데이비슨이라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직접 자금을 모으고 행사를 조직하며 브랜드의 생명력을 연장시킨 '헌신적인 파트너'들이었다. 그들에게 할리데이비슨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유로운 정체성을 상징하는 숭배의 대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밀도 높은 헌신은 현대의 '파타고니아(Patagonia)' 팬덤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파타고니아의 팬들은 제품의 기능성을 넘어 브랜드가 지향하는 '환경 보호'라는 대의에 깊이 몰입한다. 이들은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브랜드의 반소비주의 메시지에 오히려 열광하며, 낡은 옷을 수선해 입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파타고니아 팬덤의 헌신은 브랜드가 환경 위기에 처하거나 사회적 목소리를 낼 때 더욱 강력하게 결집한다. 그들은 스스로 환경 운동가가 되어 브랜드의 철학을 전파하며,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지지하는 '케어테이커'로 기능한다.
저자는 팬덤의 핵심 심리가 '누군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돕고자 하는 순수한 응원'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과거 미디어가 팬을 특이한 행동을 하는 소수로 묘사했다면, 이제는 보편적인 인간관계의 확장으로 다루고 있다.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실황 중계하며 과정의 투명성을 공유하는 것 역시, 국민의 응원을 얻어내 지지 기반을 굳건히 하려는 '팬덤 지향적 소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 크리에이터,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팬덤을 꿈꾸는 이유는 팬덤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브랜드의 가치를 수호하고 확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증폭기'이기 때문이다.
팬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이해하기 위해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 이론을 대입해 보면 그 역동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팬덤은 본능적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성장성을 지니며, 그 안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배경이 무의미해지는 평등성이 유지된다. 여기에 디지털 공간을 통한 고빈도의 소통으로 밀도를 높이고, 라이벌과의 경쟁이나 공동의 목표를 향한 선명한 방향성을 갖출 때 팬덤의 생명력은 비로소 완성된다. 결국 팬덤은 고여 있는 집단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재생산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시스템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팬덤파워』는 경쟁이 극심한 시장에서 '나만의 진짜 이야기'를 서사로 치환하여 팬들의 응원을 이끌어내는 힘이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유일한 열쇠임을 입증한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기록하는 그들의 서사는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입덕'의 도화선이자, 헌신적인 파트너를 모집하는 가장 강력한 설계도인 셈이다. 이 책은 브랜드가 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소비자의 마음속에 '응원받는 존재'로 남아야 하는지를 가장 체계적으로 증명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