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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an 07. 2021

프랑스 와인공장에서 가죽의 미래와 조우하다.

[해외기업] VEGEA(비제아)


가죽 아닌 가죽이 더 대접받는 시대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비건'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한다. 롯데의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나뚜루가 국내 최초 비건 인증 순식물성 아이스크림을 선보이고 비건 인증받은 김치시즈닝이 '유퀴즈'에서 소개되며 완판된 것처럼 카테고리의 구분 없이 다양한 산업에서 '비건(vegan)'이 핫이슈다. '비건'은 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하는데 채식주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를 이르'비거노믹스(veganomics)'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비거노믹스; 출처: hu:corp


패션업 또한 이러한 시대의 요구를 직면하고 있는데 동물 원피를 활용하지 않는 '비건 가죽'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 소가죽, 양가죽 동물 가죽임을 적극 내세웠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결코 친환경이지 않은 인조가죽

매년 10억 마리가 넘는 동물이 가죽 채취를 위해 도살된다. 동물의 사체를 사용하지 않고 합성 성분을 가공해 만든 '레자'라고 불리는 인조가죽은 최근 윤리적이라고 평가받으며 대안책으로 언급되고 있다. 동물에 대한 잔혹한 행위도 없고 관련 기술력도 높아져 광택이나 질감, 내구성 등에서 진짜 동물 가죽과 크게 차이가 없어졌다. 실제 동물 가죽 표면의 오돌토돌한 요철, 미세한 상처 그리고 모공까지 세밀한 디테일이 돋보이고 기능적인 면에서는 동물 가죽에 준하는 내구성과 보온력까지도 구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인조가죽이 동물학대 이슈는 해결하였지만 친환경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인조 가죽에 사용되는 폴리우레탄과 폴리염화비닐의 원료는 플라스틱인데 완전분해까지 수백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출처: 픽사베이


이러한 플라스틱 폐기물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2025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은 올해보다 20% 낮추고, 분리 배출된 폐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은 70% 높이겠다고 발표하였다.



와인 제조하고 남은 포도 껍질과 줄기로 만드는 가죽

이태리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는 지안피에로는 환경친화적인 소재를 활용한 가죽을 원했다. 3년의 연구조사 끝에 포도가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단서를 발견했다. 매년 전 세계에서 270억 리터의 와인이 생산되는데 와인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포도 찌꺼기가 무려 70억 리터에 육박한다.


포도 껍질과 줄기; 출처: Vegea


이전에는 유기농 비료나 사료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식물성 원료로 만든 가죽으로 부상하였다. 지안피에로는 해당 기술로 여러 혁신상을 수상했고 2018년 Vegea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지속가능한 원단소재를 사업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포도 찌꺼기 가죽은 무엇이 특별한가?

첫 번째가 바로 물이다. 물은 지구 상에 있는 가장 흔한 천연자원으로 언뜻 풍부해 보이지만 우리가 쓰는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음식과 물건에는 그 생산과정에서 쓰이는 물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이처럼 소비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의 총량을 가상수라 한다.


가상수; 출처: 환경부


인구가 증가하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가상수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쌀 1kg은 1300L, 우유 1kg을 얻기까지는 1000L의 물이 필요하다. 티셔츠 한 장을 생산하는 데 4000L의 가상수가 사용되고 심지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A4 종이 한 장을 얻는 데도 10L의 물이 쓰인다. 특히, 기존의 가죽 제작공정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데 가죽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데 8000L의 물이 사용된다. 흥미롭게도 포도 찌꺼기로 만든 Vegea 가죽은 제작공정에서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8천 리터의 물이 필요한 가죽구두; 출처: coroflot


두 번째는 무두질이다. 기존 가죽 공정에는 무두질이라고 하는 동물 가죽에 화학적 및 기계적 처리를 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가죽에 보존성, 유연성, 다공성, 내수성, 내열성 등을 부여한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가죽 제품 생산에 8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자재가 크롬 무두질로 생산된 가죽이다. 크롬 무두질은 각종 화학 화합물과 크롬 황산염을 포함하여, 각종 산염 용액을 사용하는데 효과가 좋아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크롬 무두질에 사용되는 크롬염은 인체에도, 자연에도 해롭다. 크롬은 발암물질로 규정되어 있으며, 쉽게 희석되거나, 용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Vegea 가죽은 이러한 무두질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죽 무두질; 출처: Britannica


마지막으로 가죽 채취를 위한 동물의 도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식탁에 올라가기 위한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의 부산물로써 동물의 가죽이 활용된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되려, 가죽이 공장식 축산을 부추긴다는 의견이 있다. 공장식 축산은 최소 비용으로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동물이 생명체로써 갖는 기본적인 욕구와 습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동물을 한정된 공간에서 대규모 밀집 사육하는 축산의 형태를 말한다. 심지어 뱀과 악어의 경우 오로지 가죽 채취만을 위해서 길러지고 도살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짐바브웨에 위치한 악어 공장: 출처: PETA


최근 에르메스가 대규모 악어 농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여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 'PETA'가 미국의 한 에르메스 매장 앞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참고로, 악어가죽 가방을 제작하는데 악어 3마리의 가죽이 들어간다고 한다. 악어가죽은 원체 수량도 적지만 가죽 패턴이 중요해서 실제 상품에 쓰이는 양은 더 적다. 반면 포도 찌꺼기로 만든 Vegea가죽은 이러한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 환경문제와 동물학대에 대한 우려가 깊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포도 찌꺼기로 만든 Vegea 가죽의 확장

Vegea 가죽은 최근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를 통해 운동화로 출시되었다.


포도 찌꺼기 가죽으로 만든 운동화; 출처: Vegea


 물론 패션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파와 같은 가구에도 활용 가능하고 카시트에도 적용 가능하다. 이미 벤틀리와 협업하여 벤틀리 실내 인테리어 소재로 Vegea가 활용되기도 하였다.


벤틀리 카시트에 적용된 Vegea; 출처: Vegea


이처럼 Vegea가죽이 전통적인 가죽의 자리를 조금씩 대체해간다면 언젠가 포도로 만든 가죽을 보며 한 때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이러한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소재들이 계속 등장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소비의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고 환경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우선순위를 높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상 기후로 인한 생활 속의 변화가 더 이상 낯선 현상이 아닌 만큼 기업과 정부가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일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되새기길 기대한다.


Vegea 가죽; 출처: Veg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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