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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Nov 09. 2021

입사 3개월 만에 회사가 세계 최대 투자은행에 팔렸다

JP Morgan 뉴욕 본사를 10년 다닌 마이클의 이야기

'뉴욕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미드 슈츠


미드 슈츠 최종 시즌을 보며 전에 없던 궁금증이 생겼다. 주위 지인들 중 뉴욕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에게 대뜸 연락을 했다.


"마이클, 그동안의 커리어에 대해 얘기를 써보고 싶은데 어때요?"


14시간의 시차를 뚫고 마이클이 답했다.


" 얘기를 누가 궁금해할까요?"


"우선 궁금합니다."


한참을 웃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원격근무와 육아를 병행하며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지만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Q&A는 시작되었다.






Q. 간단하게 100자 이내로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유년시절에 미국으로 건너온 한인 1.5세 마이클이라고 합니다. 업무 경력은 13년 차이고 asset management(자산관리)와 telecom(통신) 부문 쪽에서 finance(재무), accounting(회계), strategy(전략), treasury(자금) 쪽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Q.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당시 무엇이 가장 좋았고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A.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당시 정말 의지할 곳도 도움받을 곳도 없었어요. 당시 저희 가족이 금전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이민자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메리칸드림을 저 역시도 꿈꾸었죠. 미국으로 온 후 매년 이사를 다녔는데 새로운 학교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워낙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이었고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않다 보니 세상을 향한 반항심이 컸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제 옆을 가족들이 지켜주었고 부모님의 기도가 늘 함께 했기에 반항기를 비교적 원만하게 넘긴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춘기의 반항조차도 저에겐 사치로 느껴졌어요. 대신 미국에 와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인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당시 서로 의지가 많이 되었어요. 물론 이 친구들과는 아직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가장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낸 친구들이다 보니 서로 잘 이해하고 공유하는 추억도 많은 것 같아요.


Q. 유년시절 최대 관심사는 무엇이었나요?

A. 노래입니다. 주로 피시방 아니면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전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는 것이 가장 행복했어요. 노래방에 가면 사실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방 저방 들어가서 한곡씩 부르며 순회공연을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앞서 말한 친구들 중에는 래퍼도 있고 춤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가장 좋아했던 가수들은 H.O.T., 1TYM, Drunken Tiger입니다. ‘Here comes H.O.T.’~


출처=Pixabay


Q. 고등학교 때 절대음감으로 동네에서 유명했는데 왜 가수의 꿈을 버렸나요?  


A. 절대음감이라기보다는 악보를 볼지 몰라서 들리는 음을 최대한 기억하고 외워서 따라 불렀어요. 대신 박자는 잘 놓쳐서 친구들이 절대박치라고 불렀죠.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남들 앞에 서는걸 너무 무서워하고 떨어서 무대에 서는 가수까지 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곡도 만들고 무대에서 공연도 하면서 오디션도 봤는데 당시 부모님의 극구 반대하셨어요. 아들 공부시키겠다고 고향을 떠나 바다 건너 미국까지 왔는데 가수 하겠다고 하니 아마 억장이 무너지셨을 거예요. 당시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그래도 대학은 졸업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대학을 졸업 후 가수의 꿈을 펼쳐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대학교 입학 후 이래저래 학업에 치이다 보니 그 꿈도 서서히 잊힌 것 같아요.


Q. 고등학교 때 가장 고마웠거나 인상 깊었던 선생님이 있나요?

  

A. 고등학교 1학년 때 코러스(합창단) 선생님이 있었는데, 저를 엄청 많이 챙겨주셨어요. 제가 봤던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열정적이었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분이었죠. 덕분에 저희 고등학교가 비교적 작은 규모였지만 코러스는 미국 동부에서 알아줬거든요. 코러스에 합류 후 첫 카운티 오디션에서 4등을 하고나서부터 가까워졌던 거 같아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 첫인상이 화가 잔뜩 난 철부지 같아서 큰 기대는 없었다고 해요.  그 후로 꾸준히 좋은 성적이 나와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코러스에서 활동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교 뮤지컬 오디션을 봤는데 그 선생님이 10분 동안 웃음을 못 참더라고요. 나름 우여곡절이 많은 10대의 인생사를 가졌기에 연기에 자신 있었는데 그분의 웃음 덕분에 배우의 꿈은 접고 학업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자 선생님이 이제 졸업했으니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자고 해서 나이 차이는 나지만 편한 동네형과 동생 사이로 지냈어요. 한국에서도 이런 관계가 가능하나요?


악보 읽는 법을 가르쳐준 보리스 선생님과 코러스 후배들


Q.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 입학했는데 선택의 이유는?  


A.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많은 대학에 지원을 하였어요.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제 친구가 적극 추천해서 고려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어요. 당시 미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 발급을 앞둔 시기였는데 펜실베이니아주립대만 재정적 지원을 위한 관련 서류 접수 유예기간을 승인해주었어요. 차선책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모교 내 미식축구 경기장에 선 마이클; 출처=마이클


Q. 대학생활을 충분히 즐기지 않고 조기 졸업해야 했던 이유가 있나요?  


A.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보니 대학을 빨리 졸업하는 것만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기당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최대한 수강했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상황이 꼭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났거든요. 만약 여유로웠다면 학업을 병행하며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일하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을 거예요.


출처=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Q. 대학교 재학 당시 가장 흥미로웠던 수업은?

  

A. 이 역시도 당시 제 상황과 맞물려있어요. 학생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Finance(재무관리)가 가장 관심이 많이 갔어요. 그래서 원래 전공이었던 노사관계에서 Finance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어요. 이외 건축학과 점성학 수업들도 흥미로웠어요. 지금도 해외에 나가면 그 지역의 건축물을 유심히 살펴보거나 저녁에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을 찾아다녀요.


출처=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Q. 졸업 후 가장 가고 싶었던 기업은?  


A. Finance를 전공한 만큼 투자은행이면 다 가고 싶었어요. 졸업하기 바로 직전까지 무척 많은 투자은행 면접에 응했는데 결국 다 떨어졌어요.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면접을 본 곳이 Bear Stearns였어요.


출처=CNBC


세계적인 투자은행 중의 하나이고, 미국 제2위의 증권사이며, 세계적인 위탁 중개 업체로 금융업에서는 인지도가 높았어요. 그리고 회신을 받았는데 다른 기업들과 다르게 친절하게 탈락을 알리는 ‘thank you for your interest’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았어요. 대신 한 문장이 눈에 띄었죠.


“We are pleased to extend an offer to you.”


드디어 합격을 한 것이죠.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고 그동안 저를 억눌러왔던 불안감이 해소되고 긴 시간 묵묵히 저의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울음이 터졌던 것이 생각나네요. 그렇게 하늘을 걷는 기분을 만끽한 지 3개월 후 느닷없이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야, 너 들었어? 네가 다니는 회사 파산위기래.”


출처=newsbeezer.com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어요. TV를 켰는데 정말 회사가 곧 파산한다는 뉴스가 매스컴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순간 세상이 멈추는 줄 알았죠. 불행 중 다행히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중 하나이자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J.P. Morgan이 인수하면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직을 하게 되었죠.


J.P. Morgan


Q. J.P. Morgan은 금융업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데 반대로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곳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외부의 상반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어느 기업이든 대중의 상반된 평가는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J.P. Morgan처럼 영향력이 크고 거대한 금융기업은 외부의 시선에 더욱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자본주의에 근간을 두다 보니 불편한 시선보단 존경의 시선이 더 많았어요.


J.P. Morgan 동료들과 함께했던 저녁식사


실제로 그곳에서 근무한 제 경우엔 정말 뛰어난 엘리트들과 일할수 있어서 자부심이 컸고 만족도 역시 높았습니다. 종종 상대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극도 되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뉴욕으로 출퇴근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A. 제가 약 7년 동안 매일 맨해튼에 기차를 타고 출퇴근했어요. 기차에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보면 거의 금융업에 종사하는 고위직급 분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월스트리트저널을 읽고 CFA와 같은 금융자격증 공부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업무가 많아지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다 보니 꾸벅꾸벅 졸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Vlad Cheța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Q. J.P. Morgan 뉴욕 본사에서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적과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A. 가장 즐거웠던 때는 제가 원하는 Asset Management(자산관리) 투자 쪽으로의 부서이동이었어요. 그리고 한 1년 동안 런던으로 파견을 가서 근무했던 적이 있는데 뉴욕에서만 일하다가 유럽 쪽으로 가보니 일하는 문화도 훨씬 느긋하고 생각할 시간도 많아졌어요. 그때 아내와 여행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어요.


JP Morgan 런던 근무 시 방문한 이태리의 플로런스


가장 힘들었던 때는 반대로 워크 라이프 발란스를 경험한 런던에서 정신없이 업무가 몰아치는 뉴욕 본사로 복귀한 시절이었어요. 거대한 기업에서 어느 정도 승진하고 자리를 잡다 보니 승진의 대한 욕심보다 제가 하는 일이 커뮤니티에 혹은 더 큰 범위의 사회를 위해 조금 더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더 이상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어요.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죠.

 

Q. 10년 이상 다닌 직장을 퇴사하면서 아쉽지는 않았나요?


A. 보통 거대한 기업을 퇴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더 좋은 처우를 제시한 직장을 찾거나 창업 혹은 스타트업에 대한 비전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이유였어요. 그 당시 바쁘게 앞만 보며 일을 하면서 많이 지친 상태였고 아내도 임신을 했을 때라 가정에 더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안식기간을 1년 이상 갖기로 했어요. 그때 주위의 많이 지인들이 걱정을 했어요.


“마이크, 지금이 너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 거야? 제정신이야?”


하지만 더 이상 일에 치여서 저와 제 가족을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둘 수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안식년을 시작하니 유럽에서의 인식과 미국에서의 인식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체감했어요. 유럽에서는 이런 과정이 무척 당연하고 자연스러운데 제 주위의 미국인들은 제가 마치 회사에서 쫓겨난 것처럼 이해를 못하더군요. 쉬면서 제 커리어의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어요. 꼭 금융업이 아닌 스타트업 또는 다른 산업에서 근무하며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죠. 지금 되돌아보면 안식년을 통해 시장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KM L 님의 사진, 출처: Pexels


Q. 현재는 어떤 기업에서 무슨 업무를 담당하고 있나요?


A.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통신사인 버라이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첫 1년 반은 Corp FP&A(기업회계)에서 Cash Flow(현금흐름)와 Balance Sheet(재무제표)을 담당했어요. 지금은 Treasury(자금부)에서 Asset Backed Securitization(자산유동화증권)를 담당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여 제3자에게 매각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자세한 설명은 지루하실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출처=Business Insider


Q.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은 없나요?


A. 코로나19 사태로 저는 지금까지 remote work(원격근무) 하고 있습니다. 미국 회사들을 보면 현재 대세는 hybrid work(재택대면혼합근무)으로 기울고 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과 대면하고 일을 하다가 이메일과 줌 미팅으로 대체하니 어색하고 불편하였어요. 하지만 다들 서서히 적응하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익숙해요.


Elle Hughe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Q. 고국인 한국에서 근무하는 것은 고민해본 적 없나요?  


A. 제 경우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종종 서울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들의 CFO 역할을 제안을 받지만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어요. 아무래도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미국에 있어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직장문화가 엄연히 다른데 그곳에 적응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Q. 뉴욕 혹은 미국으로의 취업 또는 이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A. 제가 어렸을 때 알던 한국과 지금은 차원이 달라 확신을 갖고 조언을 드리기는 다소 어렵지만 기회가 된다면 미국에서 일하는 경험은 내적성장과 커리어적으로 의미가 클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자신 있는 분야로 꾸준히 달리셨으면 합니다. 겁먹지 말고 이메일 그리고 링크드인에서도 메시지도 막 보내세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여러분을 도와줄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계속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지 않을까요. 저 역시도 남들보다 특출 난 점도 없어요. 나이가 들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들과 비교하기보단 어제의 제 자신과 항상 비교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보다 제 강점을 더욱 살려 어필하고요. 저 같은 사람도 하는데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훨씬 더 잘하실 거라 믿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그동안 오랜 역사를 가진 거대기업에서 주로 근무하였지만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스타트업에서 10년 이상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로 기업의 성장에 일조하고 싶어요. 사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재무적으로 기반이 부실한 상태에서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데 초기에 재정적으로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면 조금 더 오래 생존할 수 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꿈꿨던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 역시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멀지 않은 미래에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스타트업에서 커리어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사진=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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