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리뷰
여전히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 현실은 탁하고 어둡다. 영화는 현실의 그 탁하고 어두운 풍경을 꾸준히 따라간다. 중소사업장으로 가득한 공단을 따라 걷는 이제 고3인 아이들. 현장실습을 나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은 길 수 없다. 현실의 녹록치않음이 창우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그렇게 노동을 선택한 창우. 영화의 마지막 실습 기간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채용이 된 창우, 하지만 기타를 치는 그의 손은 흉터투성이다. 다행히 그의 연주 실력은 늘어서 이제 제법 들어줄 만하다.
이제 막 실습이 끝난 창우의 손은 어쩌다 흉터투성이가 되었는가? 흉터로 가득한 창우의 손을 보며, 우리의 법과 제도는 과연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과로사한 성민의 선배 장례식장, 부의 봉투 어디에 이름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창우는 울지 않는다. 작업장의 아주 간단한 안전을 가져오기 위해 병역특례를 포기하고 노무사에게 공장의 현실을 알려주는 성민. 영화는 이렇게 사회초년생으로 실습 현장에 나간 아이들이 부딪혀야 하는 무수한 부조리들을 그저 담담하게 그려낸다.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등한시되기만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중대재해 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2022년부터 2023년 까지 조사대상 중대재해 510건 가운데 재판까지 간 건 겨우 13건에 불과하다. 1년에 산재로 인정되는 과로사망만 500명. 이게 우리 노동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달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은 너무나 정당하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무언가를 강하게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있는 한 편의 성장드라마처럼 곧, 성인이 되는 창우가 처한,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창우가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며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느끼게 될까? 그래, 힘들지, 하지만 원래 인생은 힘든 거야라고 위로하게 될까? 아니면, 그래 너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니 네 삶은 네가 힘껏 꾸려나가렴. 얘기를 해줄까? 아니면 위태로운 작업 현장에 안전바가 필요하겠다며 작업장을 함께 둘러보게 될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지만, 그 간단한 답에 대한 해결은 왜 이루어지지 않을까? 고민을 해본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나서서 갖춰줄 리 만무하다. 그래서 노동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바로 올해 6월에도 19살의 어린 노동자가 홀로 배관 점검에 나섰다가 죽은 채 발견됐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을 마주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