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탄생> : 결핍과 고단함의 반대쪽에는

30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리뷰

by 이노
생또다른탄.jpg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 뚝 떨어진 기분이다. 평균고도 해발 5,000미터가 넘는 파미르 고원을 가진 나라 타지키스탄. 그 거대한 산맥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 척박한 환경의 나라라는 설명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지만 그 안에서 사는 이들의 모습을 따라가는 영화 <또 다른 탄생>의 카메라는 잔잔하고 평화롭다. 그 잔잔한 평화가 위태로울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거대한 산맥은 아이들이 살기엔 너무 위태롭기만 하다. 절벽과 깊은 계곡의 강. 하지만 소녀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아내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한다. 아이의 맑은 눈에 담긴 우수는 도저히 표현하려야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마치 타지키스탄이 어디에 있는 신비로운 나라일까를 상상하는 것처럼.


아빠를 찾기 위해 마을의 현인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 그 앞에는 커다란 산맥이 자리잡고 있다. 자연 앞에 선 아이들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 보이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두 명의 소녀들 밖에 없다. 아빠를 데려간 요정을 찾기 위해 양의 젖을 가져다 놓고 요정이 오기를 기다리는 소녀들. 하지만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그걸 먹어버리고 만다. 영화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처럼 인공적인 것들을 덜어내고 대상들을 자연스럽게 그려 낸다. 때로는 영화의 배경이 된 계곡처럼 신비로운 듯하면서도 두렵기도 하고, 한 없이 따듯하다가 황량함이 짙게 배어 있기도 하다.




영화가 다른 예술과 비교되는 독특한 기능에 대해 알랭 버디우는 ‘심리적 상태를 시간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다’고 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토굴 같은 공간에서 시를 낭송하는 엄마. 잠 들기 전 아이에게 시를 읽어달라는 엄마. 감독(이저벨 칼란다)이 직접 엄마 역할을 했다는 건 영화의 크레딧을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다독이는 듯하면서도 격정적이고,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어들 사이에서의 미묘한 감정변화는 관객을 긴장하게 한다. 더불어 아빠의 부재는 ‘중요한 정보를 차단하라’는 격언에 맞게 타지키스탄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굳이 알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스토리에 커다란 굴곡을 가지고 온다.


남편의 부재에 고통스러워하는 엄마,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시를 읽어달라고 한다. 시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예술은 결코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 굶주림과 같은 삶의 결핍과 고단함을 예술은 극복해 낼 수 없다. 단지 결핍이나 고단함과 동일한 생동성을 가진 예술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죽고 싶은 마음에 대비되는 우리를 살게 만드는 그런 것. 그러니 아이가 읽어주는 시는 극복의 힘이 아닌 그와 대응하는 생의 힘이다. 낯선 곳이라서가 아니라,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을 통해 신비로운 힘을 가지게 된 <또 다른 탄생>. 이 영화의 다른 정보가 앞으로 나올 ‘망명 3부작’의 연작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앞으로 나올 영화에 대한 기대도 듬뿍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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