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도로 만들었나요?

by 인사보이

포켓볼 게임에서 마지막 검은 공은 아무 데나 넣는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선수는 어느 포켓에 넣을지 미리 말해야 하고, 선언한 포켓에 넣었을 때만 승리가 인정됩니다. 같은 결과처럼 보여도, 의도가 다르면 결과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비슷한 장면은 흑백요리사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는 결과만 보지 않고 참가자에게 묻습니다.


“어떤 의도로 이 요리를 만들었나요?”


의도가 포함되지 않은 결과는 실력이라기보다 ‘우연’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겁니다. 의도는 결과를 재현 가능한 실력으로 만드는 기준이 됩니다.


이 관점은 AI 시대에 더 중요해집니다. AI가 실행을 대부분 담당할수록, 사람에게 남는 역할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무엇을 풀 것인지 정의하는 것(문제 정의), 그리고 AI가 만든 결과를 기준에 맞게 완성하는 것(편집)입니다.


의도는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why를 포함한 문제 정의입니다. 사람의 의도가 없는 지시는 AI가 만들어내기 쉬운 평균적인 결과물로 이어집니다. 의도가 없으면 결과가 나와도 “무엇이 더 좋은지” 판단할 수 없어, 결국 80점 짜리 결과물에서 멈추게 됩니다.


문제는 이 ‘의도’가 공짜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의도에는 어느 정도 축적된 경험과 전문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니어의 역할이 줄어드는 방향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시니어라고 자동으로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전문성이 없는 시니어는 AI가 만든 평균치를 넘어서는 판단과 편집을 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앞으로의 격차는 연차가 아니라, 전문 분야의 지식과 경험으로 만든 의도(문제 정의)가 AI 활용 능력과 결합될 때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의도가 방향과 기준을 만들고, AI는 그 방향을 속도와 스케일로 증폭합니다. AI 시대의 실력은 결과가 한 번 잘 나온 것이 아니라, 좋은 의도로 더 나은 결과를 반복 생산하는 능력에 가까워질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만드는 시대에서 파는 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