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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Mar 02. 2021

아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들과 전화통화


아들과의 전화 통화


나는 전화통화를 오래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어릴 적부터 '전화 통화는 간단히'가 몸에 배어 있었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아들하고는 의외로 자연스럽게 통화를 오래 할 수 있게 되었다. 호주와 한국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아들은 병원으로 출근하면서, 어떨 땐 퇴근하며 영상통화를 걸어와서 우리는 거의 매일 30분 정도 통화를 하고 있다.


일 년 동안 인턴 생활을 마치고


작년 의사로 인턴을 시작하면서 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2년 동안 병원 모든 분야 전문의들에게 일 잘하는 의사로 각인시켜 놓은 다음 아들은 일 년이나 육 개월 정도 휴지기를 가질 계획을 세웠다. 휴지기를 가진 다음 병원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때부터 전문의까지 쉬지 않고 달려갈 계획을 세웠다. 그런 각오로 시작한 아들의 의사 생활을 나는 거의 매일 걸려오는 전화통화로 전해 들으며 아들이 그 일을 얼마나 열심히 즐기며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일 년이 지난 올해 1월 초에 인턴 평가 시상식에서 아들은 의학 지식, 의학 기술, 환자 및 동료 관계 모든 분야에서 예외적인, 이례적일 정도로 우수하고 특출한, 높은 성적으로 인턴 중에 일등상을 받았고 그 외 두 가지 다른 상에도 이름이 올라갔지만 아쉽게 아주 적은 차이로 두 번째였다는 메일도 받았다.


시상식은 꼭 참가해야 할 필요는 없었기에 아들은 일 년 만에 처음 갖는 6주 휴가 중이라 암벽등반을 예약해 두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상식 전날 병원 측에서 휴가 중인 아들이 참석하지 않을 사태를 대비해 연락을 미리 해와서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시상식에 가면서 연락을 해 왔다. 그 당시 나는 아들이 휴가 중이라 매일 연락하지 말고 마음껏 쉬고 운동하며 재충전에 힘쓰라고 했기에 아들은 시상식에 가는 도중 연락을 해 왔다. 그때 아들과 나는 뭔가 상 하나쯤  받을 모양이라고 서로 웃으며 추측했었다. 이런 큰 상을 받을지는, 아들의 2년 계획이 일 년 안에 단축되어 병원에서, 각 분야 전문의들에게서 인정받고 이름을 각인시킨 결과를 가져올 줄은 아들도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아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들의 첫 휴가기간 동안에는 내가 있는 곳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전 세계적 펜데믹인 Covid 19으로 아들은 호주에서 지냈지만 아들이 지내는 지역은 코비드로부터 자유로워 일상생활을 편하게 다 누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들은 휴가를 마치고 병원으로 출근하면서 우리의 대화는 다시 정기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미리 정했다는 말을 해왔다. 아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가 엄마인 나의 행복이고 자신의 파트너와 미래의 자녀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일 년 동안 직접 의사로 일을 하다 보니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을 쉽게 뒤로 미뤄야 하는 여건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 더 많이 바쁠 것이고 더 많은 공부와 시험을 치르며 평생 가야 하기 때문에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쉽게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일 년 동안 여러 의사들을 직접 만나 보고 느꼈기에 아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정해놓고 제일 먼저 우선순위를 준 다음 자신이 공부해 나갈 의사의 길을 꾸준히 찾아가겠다고 했다. 아들은 자신의 직업 성취 목적을 이유삼아 가족을 희생시키고, 뒤로 미루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 했다.


그리고 아들은 의사로서의 목표를 세계 최고의 의사, 유명한 의사에 두지 않을 거라 했다. 좋은 의사, 의사로서 일을 좋아하며 잘하고 환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 줄 수 있는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물론 좋은 의사가 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 하지만 그 일 자체가 만족스럽고 즐겁기 때문에 좋은 의사 되는 것에는 문제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미 목표인 좋은 의사 되는 것을 자신은 실천하고 있어 목표에 대한 큰 욕심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 스페셜리스트(전문의)까지, 특히 아들은 중환자실 의료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며 거기에 마취나 호흡계 분야 중 한 가지를 더 선택해서 두 가지 이상의 전문의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 중환자실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좋은 의사 되기 위해 필요한 공부라 생각하고 남들보다 몇 배로 힘들고 길어지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이니 알아서 계획대로 진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은 가족을 사랑하고, 함께하고, 돌보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최우선이니 나에게도 무슨 일이 있으면 아무 걱정,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지 바로 연락해 달라고 했다. 아들이 커서부터는 엄마 일이면 무슨 일이든 그만두고 즉시 달려가겠다고 항상 말해왔었는데 이제는 아들의 마음이 더욱 확고해진 것 같았다. 아들은 큰 원칙이 정해졌으니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다른 것들도 생각하며 순서를 적어 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물론 엄마도 가족, 아들의 행복이 최우선이겠지만 엄마는 아주 많이 이기적으로 엄마에게만 집중해서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아들이 숙제를 내주었다.


아들이 준 숙제


그렇게 아들에게 떠밀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숙제를 받아 들고 지금까지 대답하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다. 아들이 말한 것처럼 가족과 아들을 제외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 자신만을 위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으려 하니 머릿속이, 심장이 텅 비어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나에게, 나 자신에게 욕심을 부리며 살아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를 위해 살았던 기억만 가득하지 날 위해 뭔가를 해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사 본적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날 잃어버린 것을 알았고 그래서 찾으려 노력했지만 지금까지 나는 나를 찾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는 중이었다. 나를 찾고자 떠난 여행은 사라지고 노모를 위해 살고 있듯이 나는 이미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잘 알기에 아들은 내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한국에는 절대 오래 머물지 말라고 당부했었고 여러 나라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했었지만 온 세상이 코로나로 닫혔기에 어쩔 도리가 없이 노모 곁을 지키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 또한 내가 만들어내는 핑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주로 들어가든지, 한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혼자 마음껏 다녀도 되고, 혼자 집을 얻어 살아도 되지 않나 생각해 보지만 이런 생각들이 노모의 반대에 부딪혔고 일찌감치 포기한 부분이었다. 오래 떨어져 살아온 딸로서 노모의 반대와 외로움을 모른척하고 차마 강행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아들로부터 받은 숙제에 눌러 한동안 심적으로 꽤 힘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아들이 나의 상태를 눈치채고 우리는 긴 대화를 다시 나누었다. 엄마는 이제 시작이니 천천히 시간을 가지며 자신을 먼저 더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내라고 아들이 말했지만 숙제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제출 일자를 늦춰 시간은 벌었고 아들과의 대화로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이 세상에서 너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너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면 그것은 절대 사랑이 아니야. 그러니 모든 결정에서 너를 지우지 마"


문득 30년 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버릴 결심을 하려는 그 순간에 서있는 나를 본다면 그때, 그 어리석은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마음속에 일렁였다. 이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었는데 요즘 가끔 나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떠오른 생각이었다.


지나가 버린 일에 후회하지 말고 아들의 말처럼 천천히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보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욕심내고 싶은 것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지금 상태로는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계속 생각하다 보면 나 자신을 하나씩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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