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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Jan 08. 2021

아들에게 만들어 준 졸업장

이제 너는 하산해도 좋다.

빈 둥지가 될 거라는 불안감


품 안에서 아들을 키우다가, 어느덧 아들은 대학교 졸업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벌써부터 나는 나의 아들, 아기새가 떠날 준비가 충분히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빈 둥지가 되면 어떡하지, 나는 어떡하지?' 하는 나의 이기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훌륭하게 성장한 아들에 대한 기쁨도 무척 컸다.

그래서 이성과 감성이 뒤섞이며 잡음을 자주 일으켰다.


엄마라면 누구나 이런 시기를 겪는다는 것을 진즉에 주변 친구들에게 듣고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나에게 다가오자 이렇게 쉽게 내가 무너져 내릴 줄은 몰랐었다.

처음으로 혼자가 된다는 불안함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를 점점 더 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들에 대한 믿음에는 불안하지 않았다.

아들 키우면서도 딸 있는 집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나의 아들은 어떨 땐 딸 같았고 어떨 땐 아들같이 항상 자상하고 듬직한 친절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아들이 보여준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다.


그런 아들인데 혼자 약해 빠져 나 자신을 괴롭히는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숨겼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아들은 나의 불안을 금방 알아차렸고 나에게서 불안의 심적 이유를 듣고 싶어 했었다.

그 후부터 어느 순간 찾아드는 조그만 불안에도 나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야만 했었다.


'엄마와 나 사이 서로 절대 숨기는 것 없기'라고 아들이 부탁해서 또 하나 우리들의 약속이 생겨났다.

그 후 철저히 숨길 수 없는 것은 바로바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들은 나의 불안을 들으며 함께 풀어가길 원했고 거기에 따른 자신의 입장 및 생각을 말해 주었다.

아들은 대학교 졸업을 하게 되면 독립적인 삶을 살 거라는 것을 말해왔다.

나에게는 더 이상 누군가를, 자신을 보살피며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도 이제부터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은 나에게 방세와 생활비를 낼 것이라 했다.

자신이 쓰는 공간에 대한 청소도, 빨래와 다림질도, 요리도 하며 자립을 키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아들에게 투자했던 시간들을 모두 나를 위해서 쓰라고 했다.

나 자신만을 먼저 위하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엄마로서 졸업식


아들 말이 옳았다.

나도 이제는 엄마 역할에서 졸업을 해야 했다.

어린 아들을 키우던 엄마의 입장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했다.


아들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부터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니 나도 엄마 역할 졸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 나의 졸업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집안 일과 요리를 담당하며 아들을 지원하던 엄마의 역할에서 졸업을 해도 된다니 나쁘진 않았다.

솔직히 좋은 조건이었고 나름 아들의 말에 나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설레기도 했었다.


엄마 역할 졸업을 위해 나는 아들과 함께한 19년이라는 모든 시간들을 꺼내어 살펴보았다.

출산부터의 어느 정도의 시간들은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은 얼마 전에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달 후면 대학교도 졸업한다니 시간의 빠름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남들보다 대학교 졸업기간을 1,2년 단축해서 더욱 빠르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아들에 관해 내가 모아둔 모든 자료들을 꺼냈다.

19년 동안 모아둔 아들 사진, 학교 기록, 성적표, 아들이 그려준 그림과 써준 편지와 카드들을 보았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혼자 웃고 울고 감정에 많은 변화를 맛보았다.


그러며 아이를 한 명 키운다는 것은 축복이고 감사함이며 행복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크게 깨닫게 되었다.


하산을 허락하는 졸업장


이렇게 19년을 천천히 들여다보다 문득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의 엄마 역할 졸업을 다른 방법으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하산을 허락하는 졸업장을 주면서 엄마 역할 졸업을 선언할 생각이었다.

쿵후 판다에서 보면 제자가 모든 기술을 다 습득하면 스승이 "이제 너는 하산해도 좋다"라고 한다.

나도 아들에게 19년 동안 같이 보낸 기록들을 책으로 정리해서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부터 너는 언제든지 너의 날갯짓으로 둥지를 떠나가도 좋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하려 한 졸업장 만드는 일은 시작하자마자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년 동안 모아둔 아들의 자료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보관되어 있었고 컴퓨터에도 많이 저장되어 있었다.

거기서 특별한 것들만 추려내고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기초 작업만으로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시작하려고 보니 나의 생각과 의욕만 넘쳐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반성과 때늦은 후회가 들었다.

미리미리 아들이 독립할 때쯤을 대비해 내가 간직할 것과 아들 몫을 따로 준비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턱대고 사진만 잔뜩 찍어놓고 기록들만 모아두었으니 자료는 넘쳐나도 바르게 정리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들이 그래도 널려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도별까지는 잘 나뉘어 보관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마저 되어 있지 않았다면 들여다보기만 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과 나의 19년을 이런 기회에 정리해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박차를 가했다.

나이별 중요한 해프닝 사진들을 뽑아내고 거기에 맞는 설명과 나의 느낌 글을 쓰고 그림을 보충하며 스토리를 만들어 스크랩 북 졸업장을 한 장씩 만들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줄 졸업장은

 

내가 모은 기록들은 내가 평생 보관할 아들에 대한 기록이고 나의 추억이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주어지는 졸업장은 아들이 평생 보관하게 될 자신의 성장 기록이며 추억이 될 것들이었다.


작업을 하면서 스크랩 북에 들어갈 그 상황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몇 번씩 울먹이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감정의 기복을 다시 느끼며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하는 작업에 몸이 힘들었지만 지나친 감정 변화에 마음도 힘들었다.

나의 작업을 지켜보던 강아지도 그런 나의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을 바라보며 옆을 항상 지켜주었다.


졸업장 작업은 타임머신을 여러 차례 타고 지난날 그때, 그 당시로 돌아가 여행을 하고 현실로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두어 달만에 아들의 졸업장이 스크랩북 2권으로 완성되었다.



졸업파티 및 졸업장 전달


아들의 대학교 졸업식 일주일 전인 주말에 나는 그동안 준비한 아들의 졸업장을 수료하는 파티를 마련했다.

파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아들에게 졸업장을 만들게 된 계기와 졸업장의 의미를 설명해 주며 건네주었다.


아들은 뜻밖의 파티와 졸업장을 받아 들고 큰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무척 기뻐하며 고마워했다.

아들에게 천천히 보라는 말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다.



다 큰 아들이 눈물을 보았다.


한참 후 다 읽었는지 나의 방을 찾아온 아들의 얼굴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부어있었고 엄마라고 제대로 크게 소리 내어 부르지도 못하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다 큰 아들 눈물을 보는 게 썩 나쁘진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을 안아주었다.

그동안 너무 커버린 아들과의 키 차이에 내가 안아준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이번엔 내가, 엄마가 아들을 안아 줘야 할 것 같았다.

졸업장을 읽고 나서는 다 큰 아들이 잠시 나의 어린 아들로 변해 있는 듯했다.


아들은 고맙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을 울음으로 여러 번 막히면서도 울먹이며 말을 꺼냈다.

어정쩡 안겨 있던 아들이 자세를 고쳐 나를 안아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을 했다.


"엄마가 주신 사랑 절대 잊지 않을게요. 엄마 너무너무 고마워요. 이제부터는 제가 엄마의 힘이 되어 엄마를 지켜줄게요. 이제부터는 나의 차례예요. 엄마 차례 때는 너무 훌륭히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제 제 차례예요. 지켜봐 주세요."


나의 눈에서도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들도 다시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울며, 눈물을 닦아주고, 다시 울기를 반복하며 바라보다 크게 웃었다.


그런 우리의 행동이 이상했던지 우리 집 강아지가 발밑에서 점프를 하며 우리를 애타게 찾았다.

나는 강아지를 안아 들었고 우리를 다시 한번 패밀리 허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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