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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Oct 07. 2020

바른 엄마가 되자!

엄마 역할

나는 내 아들이 '엄마'하고 부를 때가 참 좋다. '엄마'하고 부를 때마다 아들 목소리에 편안함과 사랑이 느껴진다. 그러며 나를 바라보는 아들 눈빛과 얼굴에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랑이 그대로 묻혀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아니지만 엄마를 떠올리거나, 엄마하고 속으로 가만히 불러보면 눈물이 나왔었다. 내 나이 때나 윗사람들에게, 우리들에게 엄마, 어머니라는 사람들은 고생과 희생의 아이콘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식으로는 엄마와 자식들의 관계가 좋게 형성된 것 같지 않다. 막내인 나에게 엄마는 항상 안쓰러움이었고 나에게 오는 억압이었다. 학교 외에서 친구를 만나러 혼자 외출을 하거나, 티브이나 만화책을 보거나 하는 놀이 문화는 전혀 허락을 하지 않으셨고 그저 오빠와 언니들이 학업이 떨어진다는 실망감은 고스란히 나에게는 강요로 돌아왔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불쌍하고 안쓰러워 아뭇것도 하지 못하고 엄마를 위해서 그저 학교와 집 그리고 공부만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산이 집이었던 나는 대학은 서울로 가려했던 것 같다. 엄마의 품에서 떠나 혼자 설 수 있는, 나의 발로 서서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나에게 엄마는 엄마의 모든 푸념을 들어줘야 하고 해결해 드려야 하는 막내로서 무거운 책임이 쌓여있다.


그래서 나는 '바른 엄마가 되어 보자'라고 말해 본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내가 클 때 엄마에게 받았던 그런 여러 가지 강요나 구속 같은 것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받은 엄마로부터의 스트레스를 나는 내 아들에게는 전혀 주지 않았다. 지금 성인이 지난 내 아들이 엄마인 나를 사랑하고, 잘 키워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즐거워도, 힘들어도, 아파도 제일 먼저 생각이 나는 사람이 바로 엄마인 '나'라고 한다.  나의 아들은 내가 자랑스럽고 내가 그의 영웅이라고 한다. 나도 잘 자라준 내 아들의 엄마임에 자랑스럽다.


학교에서 영어 캠프를 진행하다 보니 직업상 많은 한국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여러 형태의 아이들 뒤에 엄마나 부모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뭔가 이상한 점이 들어서 이런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내가 아이를 스스로 혼자 외국에서 키우며 느끼며 배운 점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는 사랑이다. 사랑은 아이를 출산하고 난 후 키우면서 조금씩 싹트는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사랑한다, 내 새끼 같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낳은 아이였지만 무척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생긴 아이가 내 아이인가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육아의 힘듦에 찌들며 수유를 하며 여러 가지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이가 눈을 맞추며 살갗을 비벼 올 때 이때부터는 저절로 하루하루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엄마의 가슴에 자라는 것 같다. 아이가 자라듯 아이에 대한 사랑도 커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우리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어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릴 때 아이의 버릇을 좋게 들여주는 것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나아가 사회의 한 일원으로써도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딱 몇 살 때부터다' 하고 정할 수는 없지만 태어나서부터 바로 아이에게 많은 말을 하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은 분명 어리면 어릴수록 더 좋다 일 것이다.


두 번째는 가정교육이다. 가정에서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기본적 인성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예쁜 표정, 예쁜 말씨, 좋은 짓, 나쁜 짓,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그리고 착함과 나쁨 등등 아주 기본적인 도덕적 이념을 가지게 해 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임에 분명하다. 어리고 귀엽다고 해서 그냥 대충 넘어가면 절대로 안된다는 말이다. 아이가 조금 울어도 아닌 건 아이다라고 확실한 엄마의 신념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엄마가 귀찮아서 안된다고 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셋째는 사회생활이다. 작은 가정만 보아도 기본적으로 엄마와 아이가 있고 그 외의 식구들이 있을 것이다. 집과 이웃에서 윗사람에게 보여주는 예의와 존경심이 있을 것이고 아랫사람에게 보여주는 양보와 배려심 등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냥 하루하루 생활에서 아이들은 저절로 보고 배우게 되고, 집 밖으로 나갔을 때는 그 사회성이 커지게 된다. 어디에 속하게 되면 거기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을 거고 쇼핑을 가면 판매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버스나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보고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아이는 많은 것을 보게 되지만 집중해서 보고 배우는 것은 바로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의 행동과 말투 등을 자연스럽게 듣고 보고 배운다. 그래서 엄마가 바르게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공공질서를 바르고 지키며 아름답게 사람들을 대하고 행동하는 매너 있는 엄마라면 따로 아이를 교육시킬 필요 없이 엄마의 집 안팎의 행동에서 아이들은 보고 들으며 배우며 스펀지처럼 저절로 몸속에 흡수하게 된다.  이렇게 유아기 시절에 기본적인 인성이 자라게 되면 이제 우리 아이들은 학생의 시작인 유치원생을 거쳐 초등학생이 될 것이다.  초등학생이 되면 집에서 따로 보여줄 교육은 없다. 그전에 해 왔던 것처럼 그렇게 지내면 된다.


하지만 중요한 네 번째가 있다. 그것은 대화의 습관화 및 기술이다. 우리 아이가 학교 생활을, 집단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면서의 문제들이 가끔 생길 것이다. 그것을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아이의 학교 생활은 아이가 먼저 꺼낼 수도 있지만 어릴 적엔 엄마의 관심이다. 학교 생활은 어땠어? 오늘은 재미있게 놀았어? 점심은 어땠어? 맛있었어? 뭐하고 놀았어? 오늘은 뭘 배웠어?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등등의 엄마의 질문에서 대화가 시작될 수도 있다. 이런 질문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시작이 되나 초등학교에 들어가 규칙적인 학생의 신분이 되면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가 있다.

나의 아들이 진지하게 질문해온 예를 들어 보겠다. 초등 2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지내면서 생긴 문제였다. ‘엄마, 전 아이들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너무 자주 마음이 바뀌어 변덕스러워요.  어느 날엔 내가 베스트 프렌드라고 말하며 하루 종일 같이 지내고 놀았는데 또 다른 날은 나와 친구 안 한다고 말하고, 엄마! 아이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한번 친구면 계속 친구여야 하지 않나요?  비록 그 친구가 오늘은 조금 맘에 안 들거나 다른 친구와 많이 놀며 미운 짓을 했어도 그래도 그 친구도 여전히 친군데… 아이들은 말을 너무 함부로 해요’  

초등학교 2학년 만 6살이 된 아이가 보는 같은 또래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분명 초등학교 일한 년 때부터 느꼈던 사실이었겠지만 한 학년 더 올라가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친구란 서로 같이 지내며 도와줄 수 있는 관계가 친구다. 독점하거나 무언가를 빼앗으려 하면 친구가 아니다. '친구는 같이 나눠가지며 행복해야 하는 사이어야 한다'라고 말해주었다. 거기에 선생님에 대한 말도 같이 해주었다. 나의 기억으로 선생님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쁜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나는 가지고 있고 나쁜 기억이지만 직접 체험도 했다. 지금도 끔찍한 기억 중에 하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들에게는 진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다 좋은 사람이다. 가르치는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선생님의 행동이 말이 나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선생님의 나쁜 성격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 네가 잘 판단해야 한다. 어떤 선생님의 행동과 말에 상처가 되고 아프다면 생각을 해 보라고 만약 나의 엄마가 그 상태에서 행동했었다면, 처리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비교해 보라고 했다. 아이에게 가장 쉬운 방법의 예는 바로 엄마일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충고는 아이가 자라면서 사람에 받는 상처를 줄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작은 그룹에 소속되기보다는 큰 그룹 관계를 보길 바랬다. 그래서 우선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사람으로 자립심을 길러주고 싶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아이로는 키우고 싶지 않았다. 특히 아직 어린아이 일 때는 더욱더, 그래서 친구라는 틀에 묶여 상처 받기보다는 친구라는 아이를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좋을 수도 나쁠 수는 그럴 때는 거리를 둘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시간의 묘미를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그냥 먼저 지켜보는 단계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말을 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부터는 아이의 이해력이나 말하는 능력을 높여주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당당한 인격체로, 한 사람으로 대하며 아이의 생각을, 말을 충분히 들어주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엄마가 먼저 살아본 인생 선배로써의 많은 조언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며 이해시켜야 하고 거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서로 상대의 일상을 들어주고 물어주는 습관부터 서로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전격적으로 필요하다.


다섯 번째 일주일 단위 생활 계획표를 만들게 하자.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들이 4/5학년 합반에 들어가서 4학년인데도 반장이 되어왔었다. 이제부터는 혼자보다 남들을 친구를 대표하는 자리를 차지한 아들에게 생활 계획표를 만들어 보라고 제안을 했다. 학교에서도 요일별, 일주일 커리큘럼이 나오니까 거기에 맞춰 아들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잘 계획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은 학교 시간표를 보며 집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시간을 짜기 시작했고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조금씩 아이디어를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부터 아침 식사 그리고 학교 가는 시간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부터 언제 저녁을 먹고 언제 숙제를 하고 언제 놀고 자야 하는지의 시간을 정했다.  아들이 처음 만든 생활 계획표는 두 장을 프린트를 해서 하나는 아들이 가지고 나머지 하나는 냉장고에도 부쳐놓고 처음에는 아이가 원하는 시간에 아침 식사 및 저녁을 준비해서 주었다. 처음 계획표가 시행되는 동안 아들과 나는 서로에게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 서로 이야기를 하며 바꿔야 하는 부분들을 적어 놓았다. 그렇게 진행된 처음 계획표는 2주 만에 다시 만들어졌다. 그렇게 진행되었던 생활 계획표는 아들은 자라면서 매달, 매년 들어서 제일 먼저 계획표를 만들며 아이는 자신의 시간 관리를 알아서 하게 되었다. 한 발짝 더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어 대견했다. 계획표 짜는 습관은 무척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지금도 내 아들은  무언가 시작될 때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계획표를 만드는 것이고 계획표에 수시로 새로 생기는 것은 보충을 하며 자신의 시간과 날짜를 잘 이끌어 나가고 있다.


여섯 번째 리더십이다. 초등 4학년 때 반장이 되어 왔다.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행보였다. 그 당시 4/5 학년 합반이었기에 저학년인 4학년생이 반장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인 나는 내년 5학년이 되면  반장이 되어 보는 건 어때? 하고 권유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내 생각과 계획보다는 일 년 앞서 스스로 반장이 되어왔다. 한 반에서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선생과 의견을 조율하며 돕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아이들을 리더 하며 선생님들과의 교류를 하고, 반을 대표하는 반장들과 그 윗 선배 간부들과의 미팅을 하면서 내 아들은 조금 더 넓게 듣고 보게 되었다. 원래 성품이 조용하고 착하지만 강단이 있는 아이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7학년 초등학교 마지막인 7학년에선 전교 학생 회장이 되었다. 호주 공립초등학교이었던 아들이 학교에서 아시아 아이로는 처음으로 학생회장이었다고 한다. 전교 학생회장이 되면 일주일 정도 주정부에서 주체하는 리더십 캠프에 참가하게 된다. 이때 캠프에서는 많은 걸 배우게 된다고 한다. 아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다. 환경이며 에너지 등등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다루는 것보다는 넓고 크게 전문가들을 초대해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듣게 되며 리더로서의 자질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캠프에 참가하고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 이때부터는 전교 학생회장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전교생 조례 및 학교 행사의 모든 진행을 맡아서 하게 된다. 많은 담당 선생님들과 상의 및 회의를 하고 학교 담당 실무자들과의 미팅으로 대화가 잦아지며 부쩍 성숙한 아이로 자라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을 하니 아들은 9학년 때 미들 페이스 (중3) 회장이 되었고 그리고 12학년 전교 학생 회장이 되었다. 이것 또한 그 공립학교에서 아시안으로는 처음으로 학생회장이 된다고 했었다.


기타로 나는 초등학교를 보내는 동안 아들에게 몇 가지 선택을 하게 준 적이 있었다.

처음에 내가 권해준 것은 악기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 시작은 나의 선택 바이올린이었다. 하지만 1학년에 시작해서 한 텀을 마치고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만두었다. 악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실책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데리고 가서 작은 방에 혼자만 두고 딴 일을 한 것이었다. 그런 후 아들은 작은방에 혼자였던 무서움을 떠 올리며 텀 1이 끝나자 텀 2 때는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바로 그만두었다. 한 학기도 채우지 못한 빠른 포기였다. 좋은 기회를 주고 싶었는데 아들에게는 무서운 기억만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이올린과는 영영 연을 갖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3학년이 되어서 학교에서 스트링부를 뽑는데 거기에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아들이 직접 말을 해 왔었다. 당연히 나는 바로 승낙을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네가 원하는 것이니 다시 신중하게 생각하기를 몇 번 권해 주었다. 아들이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 결정을 하게 되면 쉽게 그만두는 것은 안된다고 조건을 말하며 경고를 주었다. 아이는 10학년까지 계속 바이올린을 했고 결국에 나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접었다. 두 가지 악기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고 악기나 운동은 취미 생활이라고 항상 말했기에 10학년부터는 악기나 운동보다는 공부에 더욱 시간을 투자하기를 원했었다. 그리고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밴드가 생기면서 밴드부에 뽑히게 되었고 거기서 색소폰을 하게 되었다. 악기엔 무지했뎐 내가 알고 있던 유일한 악기가 색소폰이었고 다행히도 아들은 바이올린보다 색소폰을 훨씬 더 좋아하고 아무 개인적인 레슨을 넣지 않아도 혼자 책을 사서 익혀 나갔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과정으로만 바이올린 배우다 보니 좋은 소리 내는 것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소리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은 악보를 익히니 것이 중요하다고 권해 주었다. 그 결과 5학년 밴드부에 뽑혀서 시작한 색소폰은 훨씬 쉽게 배우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고등학교 때에는 서너 개의 학교 밴드부에 속해져 있었고 아들을 직접 가르치고 싶다는 선생님도 나타났고, 혼자서 딸 수 있는 최고의 등급인 8등급까지 성취했다. 하지만 지금도 아들은 가끔 색소폰을 불며 취미 생활을 하며 기분을 전환한다. 여기서 나는 아이들에게는 적당한 시기에 적당해 배우고 싶은 것들이 나타 나는 듯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욕망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해주어도 안된다는 것이다. 아이와 엄마는 서로의 상황을 잘 조율을 해서 정해야 하며 아이가 원하는 걸로 우선해서 잘 선택하게 하고 거기에는 포기하지 않고 배움을 이어가야 한다는 자긴과의 약속도 있어야 하고 실행도 책임도 지어 주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은 너무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되면 포기도 쉬워진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쉽게 가질 수 있으면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최종적으로는 모든 선택을 아이에게 맡겼지만 아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서 하나를 얻게 해 주었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축구도 5년 동안 했었지만 축구를 선택하기 전까지 수차례 거절 아닌 거절 및 나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그래서 한번 시작하고는 9학년까지 5년 동안 서퍼스 파라다이스 축구 클럽에 가입되어 미드필드로 뛰게 되었다. 몇 번 MVP도 받으며 잘하는 축구 선수로 여러 번 선수로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운동과 악기는 취미 생활이라는 나의 권유와 설득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주말마다 시합을 하러 산으로, 들로, 바다로, 축구 클럽을 찾아다니며 시합을 하는 것에 내가 지쳐 떨어졌다. 그러나 운동 좋아하는 아들에게 나는 다른 운동을 권해 주었다. 단체 운동을 했으니 개인 운동은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어릴 적부터 나와 장난으로 치던 테니스를 아들은 선택하고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는 개인 레슨을 넣어 주었다. 축구를 그만두게 한 나의 미안함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이것도 시합이 있었고 레슨비는 무척 비쌌다.  하지만 테니스도 3년을 했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에서 부모인 엄마만 아이에게 주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아이들은 모든 것을 받기만 하고 나눌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아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엄마에게도 100개의 사랑이 바구니에 담겨 있고 내 아들 찰리에게도 100개의 사랑이 바구니에 담겨 있어. 그런데 아들이 자꾸 달라고만 해서 엄마의 사랑만 가져가니 어느 날 엄마의 바구니가 텅 비어버리게 되면 엄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찰리야 우리 서로 사랑이 떨어지지 않게 주거니 받거니 해서 서로의 바구니에 항상 사랑 100개씩 있게 하자 '  


이렇게 적다 보니 내가 아들을 키운 큰 핵심을 이야기한 듯하다. 다시 한번 생각하면 모든 것은 대화인 것 같다.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어릴 적부터 했던 것 같다. 내가 어른이니까 어린 아들에게 들으라는 식이 아니었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집에서는 엄마와 아들이었고 그 외 학교 생활에서는 진정한 인생의 선배이고 후배로써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이제는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쉬고 있고 내 아들은 따뜻한 성품을 지닌 아들이자 의사가 되어 병원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다시 한번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바르게 살자. 엄마인 나의 표정과 말씨며, 행동과 마음을 바르게 갖고 아이들을 키우자. 그러면 아이들도 반드시 바르게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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