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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궁인 Nov 19. 2024

단맛 눈물 젖은 내 업무 전성기

그래, 나도 대통령 모셔봤다

짠내 나는 눈물이 아닌 기쁠 때 흘리는 눈물에서 나는 단맛을 느꼈다.

시간을 거슬러 2018년 7월, 무더운 여름날의 일들을 머릿속에서 다시금 굴려본다.

대사관에 취직한 지 어느덧 일 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2017년 9월 입부)


사실 대사관이 무슨 존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른다면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할 소재는 어디서 왔고 

우리 재외공관인들에게 이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대사관의 정의 및 내 주요 업무부터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대사관 한 국가가 자국을 대표하여 해당 국가의 정치적 외교적 맥락에 따라 

외교활동 및 자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 업무를 분장하는 곳으로 외교부장관 소속하에 설치된 분관이다.

가끔 대사관을 너무 높여 부르고자 하는 재외국민들의 큰 염원이 담겨

대사관의 장(長), 대사(大史)를 대사관"님"으로 호칭하는 실수가 있기도 하다.   

우리가 대개는 해외 관광 및 여행 목적으로 출국하기 때문에 

대사관의 영사적 성격이 더 와닿는 경우가 많다. 

현지에서 안전 및 치안 관련 문제를 겪게 된다면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 수준으로 

재외국민보호에 앞장서는 업무를 한다. 

아울러, 영사 업무의 핵심은 비자(사증) 관련 서비스로 

비자 발급을 요하는 국가에 가게 경우 한국의 해당 국가 대사관을 찾게 되며, 

반대로 해외 현지에서 여권 분실 시, 여권 신청 및 발급, 기타 사증 문제 해결 또한 가능하다. 


이 중에서 내가 맡게 된 업무는 정무 및 경제과 특정 업무와 실무 전반이었다.

그렇다, 대사관 또한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조직 내 다양한 부서가 존재하고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채용 당시 주요 업무는 비공개였고 내부 필요 업무에 따라 

내 몫이 배정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면접 볼 때 무엇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지 나름 애먹었다)


<주요 업무분장> 

- 인도 내 한국 진출기업 지원 (국세 및 통관 위주)

- 인도 조세국 및 상공부 면담 주선

- 경제과 내 커뮤니케이션 담당 및 각종 문서/서류 관리

- 정무 동향 보고 및 통번역

- 고위급 대표단 및 VIP 의전, 기업 출장단 일정 지원

- 한국 문화 및 공공외교 행사 기획 및 현장 지원

이렇게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니 맡은 바 업무가 꽤 많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사관 행적직 응모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핵심 업무 키워드만 살펴봐도 도움 받으실 수 있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한 여름밤의 꿈같은 

스토리를 뭉근하게 펼쳐보려고 한다. 

델리 군공항 입국 및 재외동포 행사 모습

인도는 6월부터 갓 지은 무쇠솥밥 저리 가라 하는 푹푹 찌는 여름에 들어선다.

이로부터 한 달 후, 대한민국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순방이 시작됐다.

모든 대사관 직원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몇 달에 걸쳐 이 여정의 문을 연다.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 각국의 외교공관에서 일하고 있는

현지 재외공관 소속 인물들에게 꽃과 같은 업무는 의전의 정수 "대통령 순방"이다. 


환영 행사, 행사장 준비, 그리고 뜨거운 햇볕 아래 견학

그 당시 경제과 소속이었던 나는 경제 업무 외로도 

실무 전반에 걸친 여러 행정업무에 두루 투입됐다.

분에 넘치게 나를 믿고 맡겨주시는 직장 상사 분들 덕분에

일 복이 터지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필요 업무에 기반해 인도 주재국 각 부처 공무원들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고 

미리 동선을 맞추며 대통령 방인 일정에 따른 수많은 준비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아닌 굽이쳐 흘러가는 거친 물살 한가운데 있었던 

'나'를 떠올리면 아득하다. 

다시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도 모든 것은 적재적소에 쓰임을 안다. 하여 나도 잘 쓰였다. 

현재는 외교부 소속이 아니며 보안 관련 제한이 없지만 

그들의 리그에서 여전히 기밀사항인 부분이 많아서

... 뭐, 예를 들면 어떤 종류의 총기 및 무기류가 통관되고 

그를 위해 어떤 업무가 수반되며, 어떤 보안코드를 통해 일정이 잡히는지 말이다.

주요 일화로만 지금의 이야기를 꾸미고자 한다. 

호텔 로비 입구, 응접실 및 집무실

대통령 순방 중 향후 2년간의 대사관 재직 시절을 지낸

나만의 굳건하고 독보적인 캐릭터 또한 탄생했다.

바로 홍텔리어: 나의 성씨와 전문 호텔리어를 합친 별칭이다.

그만큼 난 숙박팀 업무를 자화자찬이지만 훌륭하게 소화했다고 밝히고 싶다.


다면적인 교류 속에서도 

가장 깊은 애착관계를 형성했던 오베로이 호텔 직원들. 

총지배인은 빅 보스라 자주 보지 못했으나 

맡은 바 나와 업무의 결이 비슷했던 프런트, 예약팀, 객실정비 그리고 보안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한국 간식으로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었다. 

얼마 안돼 바로 일감 얹어줄 수밖에 없었던 상호 간 정산의 시간!

이젠 정말 추억이 됐다 그 모두가. 기억한다 그대들의 이름 전부를.

오베로이 호텔 직원 선물 증정식 및 내 업무 흔적들 다수


대통령 순방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관계자 무리가 따라붙는다.  

청와대 조직 주요 직위자, 그 외 정부 조직 및 공공 기관, 자문 기구 그리고 위원회,

타 부처 분들까지 모두 출동한다. 

다시 말해서, 나의 숙박팀 업무는 대통령 순방 시작부터 끝까지

눈코 뜰 새 없이 계속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인도 뉴델리 북부에 위치한 인도 정통 브랜드 더 오베로이 그룹의 

호텔 부문 'The Oberoi New Delhi'가 VIP 숙소로 선정됐다. 

100개가 웃도는 객실 예약 및 배정, 내부 행사를 위한 호텔 콘퍼런스 룸 준비,

행사 관계자 모든 이들의 손 닿을 만한 곳은 호텔 전체를 돌며 세심하게 정비했다.

1박 객실가가 인도 현지화로 20만 원을 넘나드는 5성급 럭셔리 호텔을 

내 집처럼 한 달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드나들었다.

처음에 넋 놓고 감상했던 인도 마하라자(왕) 격에 맞는 근엄하면서 화려한 스타일,

클래식하지만 인도스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이 

후반으로 갈수록 늘 내 주변에 있던 광경인 듯 그 경이로움에 익숙해졌다.  

호텔 주요 시설 및 주변 반경 2KM 내로는 모든 것을 꾀고 있었던 나였다.

외교의 길로 이끌어주신 나의 우상, 강 전 장관님과 함께

내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는 총 4개였다.

나의 기분 좋은 바쁨을 방증하는 듯한 풍부한 목줄들.

1. 대사관 직원임을 알리는 신분증 by. 내 직장, 대사관

2. 외교부 본 행사 관계자임을 알리는 by. 내 최고 상사, 외교부

3. 호텔 내 의전 관련 제한 구역 출입증 by. 접근불가 청와대 

4. 호텔 내 전 주요 시설 출입증 by. 내 친구, Oberoi 호텔


평생 마주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청와대 경호실, 그들의 품위와 용모는 단정하지만 외모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기량은 호기롭고 용안은 준수한 경호원들의 연락처 즐겨찾기가 됐고 

나는 24시간이 모자라~ 항상 부름을 받고 출동하는 대기조였다. 

순방기간 꼭 사흘을 난 쪽잠으로 보냈다. 

어떤 이는 사소한 일이라 생각할지언정 

누군가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을 

힘들었다면 아마 내 기술과 능력이 부족한 탓이지 하며,

자질구레하다고 여기며 수행한 적은 없었다. 단언컨대.


한 순간은 폭주하는 문의, 쩌렁쩌렁 울리는 업무폰, 끝을 모르는 요청에 

만능해결맨처럼 나서다가 "정말 나한테 왜 이래!" 이런 마음이 들고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끝을 맺을지 몰라

감당하기엔 벅찬 정신에 길을 잃기도 했다. 


문의자에게 달려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항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귀인들이 존재한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반가운 선배 동료의 얼굴을 봄과 동시에

"괜찮아, 홍텔리어 잘하고 있어"하며 아무렇지 않게 건네받은

짧지만 강한 응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계속 되뇌었던 자기 암시 문구와 함께

고급스러운 방이라도 있어서 처량하지 않게 그날 밤 

난 다시 긍정의식을 한껏 고취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기쁨이 더 컸다.

즉, 내 눈물은 슬픔에서 오는 짠맛보다는 기쁨에 의한 단맛이 더 강했다는 소리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업무 폭풍우 속에서도

그 질서를 잃지 않은 많은 분들의 두터운 신의에 힘입고

인간 본연의 감성적인 면에 기대어 밀도 높은 스트레스를 이겨냈고  

'성공적인 대통령 순방'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둘러싼

한 마음, 한 뜻이었던 우리가 형성한 공감과 연대

그리고 이에 밀착한 채 서로를 향한 감정적 지지

내 마음은 줄곧 뜨거웠었다.


어찌 보면 짧은 공관 생활이라고도 하는 

2년의 근무 기간 중 

손가락에 꼽을 만한 굵직한 행사를 너끈히 해냈다. 

문 대통령 방인, 김정숙 여사 방인, 정세균 前 국회의장 방인, 방위사업청장 방인, 

국정감사, 강경화 前 외교부 장관 방인, 외교부 공공외교대사 방인, 산업부 차관보 방인 등

사회초년생으로서 꽤 묵직한 뿌듯함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때 맺은 모든 인연들과 난 여전히 연락하며 지낸다.

그때 받았던 무수한 도움들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었던 일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쌓은 

나만의 소프트 외교 노하우와 사람을 대하는 진실된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잃어버렸던 '치열함이라는 낭만'을 찾으며, 

내 업무 전성기 문을 열었다. Thanks to 대통령. 

행사 종료 사진 촬영

대통령 순방, 그 끝은 

고군분투했던 우리들의 성대한 축제였고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완성한 우리들만의 업적으로 남았다.


(이러쿵저러쿵) 

열심히 일한자여, 많이 먹거라~

오베로이 호텔은 참고로 일식을 참 잘한다. 

숨겨진 뉴델리 일식 맛집으로 감히 추천한다.

연어 스테이크는 덤!


*이미지 출처: 대통령 순방 관련 국내 매체 및 청와대 효자동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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