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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Dec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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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해가 흘러.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버튼은 아마도 되감기가 아니었나 싶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자면 지직대는 테이프의 빠른 되감기를 기다려야 했다. 물론 좋은 워크맨은 자동으로 한 곡 되감기 기능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스스로의 감을 믿어야 했다. 어떤 테이프든 물리적으로 너무 많이 들으면 얇은 플라스틱 테이프는 늘어지거나, 기계속으로 찝혀 들어가는 참사도 종종 벌어지던 일이고. 연필에 테이프를 끼워 돌려 감던 기억 역시 이 세대에는 익숙한 버릇같은 일이었다. 오직 그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서. 여러번 테이프를 다시 감았다, 돌렸다 하면서 그렇게 귀기울였다. 

 




영화를 선택하기 전에 몇몇 신뢰할만한(개인적 기준으로) 기자들의 프리뷰를 보는 것은 뭔가 작은 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 선택한 영화로 실패하지 않을 보험. 그렇게 제3자의 눈으로 거리를 두고 보는 시각이란 생각보다 가차없는 법이다. 만든 사람의 눈에는 유달리 공들인 신도 힘들었던 장면들도 함께 펼쳐지겠지만, 보는 사람은 그 과정을 다 알 길이 없는 법. 그저 주인공과 스토리 그리고 영화의  완결성만으로 메세지를 전달받을 뿐이다. 가끔은 그렇게 감독의 입장을 지나, 기자들처럼 우리의 지난 한 해를 돌아 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아무래도 내 팔인데, 안으로 굽겠지.  



런던 식품 박람회 참여


메뉴 개발 프로젝트


인시즌 책을 위한 촬영작업 / 연희동 인시즌


연희동 카페



올 해 우리는 이전의 5년동안 한번도 한 적 없는 많은 새로운 일들을 경험했다. 처음 영국까지 가서 식품박람회에 참가하기도 했고, 헬싱키와 베를린을 처음 구경했다. 한 어묵회사의 메뉴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온 여름을 바쳤고, 연희동에 처음 열었던 카페공간과 이별도 겪어야 했다. 인시즌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만들기 위해 원고 및 촬영작업 역시 처음 해보는 과정들이었고, 우리의 소중한 스탭이 아파서 휴직하는 사건도 겪어야 했다. 언제나 몇날 밤을 지새온 추석을 밤샘없이 무사히 지났고, 처음으로 포상휴가로 한 명씩 홍콩으로 보내주기도 했구나. 창업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수많은 처음으로 우리의 매일을 채워왔지만, 올 해의 처음들은 이전보다 더 다른 스케일과 신선함을 자랑했다. 






지난 토요일 저녁, 인시즌의 연남동 키친에서는 작은 파티가 있었다. 올 한 해 우리와 함께 해 주신 고마운 분들을(이라고 쓰고 친구라 읽는다) 순서없이 초대했다. 언제나 그랬듯 격식있는 자리가 아니다.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은 뱅쇼 한 잔에 맛있는 것을 잔뜩 해 놓고 다같이 즐겁게 어울려 먹는다. 오븐요리부터 라면까지 그 안주 스펙트럼은 꽤 다양한 편. 친구들이 들고 온 음료 혹은 와인을 나누고. 그 보다 더 진한 지난 한 해의 사는 이야기들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 자리가 어색할까 했던 걱정이 무색할만큼, 다들 자신의 삶을 쪼개 스스럼 없이 내어주었고. 그렇게 따뜻한 자리는 저녁 6시에 시작해서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함께 뒷자리 정리를 하면서, 우리에게 올 한 해 무엇이 남아있는가를 어렴풋이 생각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수많은 드라마에서 말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매일의 삶 역시 그러한 타이밍의 연속이다. 한 해의 가장 드라마틱한 몇 순간의 타이밍 아래 수많은 보통날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오늘은 딱히 특별한 것을 하지 못한 것만 같아 불안해하며 멍때리던 그 시간들조차 보이지 않게 조금씩 방향성을 가지고 쌓여 왔다. 문득 파트너인 현정이가 질문을 던진다. 언니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이미 다 자랐다고 대답하면서도 그 질문은 가슴 속 저 밑으로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혹은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답게 사는 걸까. 지금이 우리의 계절이라고, 언제나 오늘이 전성기라고 말하는 우리의 이름 인시즌답게 걸어가자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한 해가 잦아드는 요즘 매일밤 머릿속에 대답없는 질문들만 가득하다.





사진 : hyun-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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