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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Dec 20. 2017

On the ginger cloud

눈 오는 날, 창가에 앉아 마시는 카푸치노의 맛


올 겨울엔 눈이 많을 것 같네요.

우유를 사러 간 가게에서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그런가 했었다. 이렇게 나오는 길에 눈송이들이 머리 위로 바로 떨어지는 그림은 예상 밖이었으니까. 모자를 뒤집어쓰고, 품에 우유를 넣고 뛰었다. 아침부터 그렇게 카푸치노가 마시고 싶었던 데 다 이유가 있었다며. 언제나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주제에, 오늘은 굳이 안에서 거품기까지 꺼내 카푸치노를 마시겠다고 설쳐댔다. 가끔 시각이 제일 느린가 싶을 때가 있다. 눈으로 보기 전에 이미 온 몸으로 알고 있었을까. 여전히 설레이는 오늘의 날씨를. 빨리 우유를 데워야 겠다. 안타깝게도 에스프레소 샷이 없지만, 진한 콜드브루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카푸치노에는 특히 쫀쫀한 우유거품의 힘이 세다. 따끈하게 데워진 우유를 거품기에 넣고 사정없이 거품을 낸다. 충분히 떠 먹고 싶은 만큼. 마음이 분주할수록 더뎌지는 손길이 아슬아슬하다. 살짝 뜨거운 물에 컵을 데우고, 폼이 가득한 우유를 가득 올려준다. 충분히 폭신한 구름이 까만 컵을 가득 채우면 진저시럽을 약간, 그리고 콜드브루 커피를 샷처럼 더하고. 아 이제 진짜 다 됐어. 티스푼으로 마음껏 저어 우유거품부터 한 입 떠 넣었다. 바로 이거지. 눈 오는 날 창가에 앉아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며 마시는 진저 샷 카푸치노의 맛. 







눈 사진을 찍으러 나갔던 현정이 찬 바람을 일으키며 막 사무실로 들어왔다. 너무 예쁘게 내리는데, 이 카메라 렌즈로는 도통 잡히질 않네. 사진에 담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참 언제나 어렵다. 서늘한 바깥바람 기운에 너도 한잔 줄까하니 한 입만 달라는 말에 잔을 내밀었다. 순식간에 둘 다 입술에 거품이 잔뜩 묻어난다.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것만도 5년이 넘고, 매번 꾸준히 먹어 온 생강과 우유의 조합이지만, 오늘 처럼 커피샷을 넣으니 처음 보는 맛이 감돈다. 진저 시럽 안에 가득 담긴 시나몬 향기는 매운 가루가 입 속에 붙지 않아도 충분히 풍부하게 맛 볼 수 있고, 설탕처럼 달지 않아서 편안하다. 부드러운 진저밀크를 커피샷이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주니, 발란스가 좋아서일까 입 속에 계속 그 맛이 뱅글뱅글 감돈다. 진짜 이게 무슨 맛이지. 먹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맛이냐고. 계속 질문이 나온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추운 날 저녁 뜨끈하게 데워진 바닥에 깔려있던 푹신한 이불 속에 발을 뻗어 넣을 때 처럼. 카푸치노 한 잔에 매서운 바람에 붉게 얼어버린 두 손과 코 끝이 포근하게 녹아내린다. 구름 위를 걷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무리 상식을 배워도 비행기만 타면 늘 궁금해지는 그 질문처럼. 포근하고 향긋한 우유거품에 윗 입술을 온통 내어주고 있자면, 마냥 아이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나가서 눈사람이라도 하나 만들어 볼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하루에 딱 십 분. 이렇게 포근한 시간이 필요해. 잠시 눈감아도 좋으니까, 따뜻하게 마음 놓을 수 있는 여백이 절실해지면 카푸치노를 두 잔 만들면 된다. 내 앞의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우유 거품 가득 올려서.    


사진 : hyun-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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