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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Jul 10. 2018

Rainy season.

떠도는 공기 속에도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빗줄기가 숨어있는 시간


지난 밤엔 쉬이 잠들기 어려웠다. 슬슬 올라오는 공기 속의 습한 기운과 묘하게 달아오른 공기가 독특한 짜증스러움을 불러 일으키던 밤. 여기가 서울이 맞는가를 고민하면서 누웠던 새벽, 어딘가에 스치듯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며 바다 속을 헤엄치는 꿈을 꾼 것도 같다. 잠수함 속에 누워있는 기분으로 일어나보니, 온통 세상이 젖어들었다. 



빗줄기가 하늘에서 내리 꽃이는 것이 보이는 오후. 내린다는 표현으로 다 담기에는 넘치는 빗물. 그래, 이럴땐 비가 퍼붓는다고 이야기 했었다. 조용히 내리는 비보다 퍼붓는 비를 좋아하는 나는 한 잔의 믹스커피를 들고 창가에서 넋을 잃었다. 그간 답답했던 머릿 속이 단번에 씻겨내려간다. 오랜만에 속이 다 시원했다.



다만, 이 빗 속을 걷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퍼붓는 비바람 앞에서는 딱히 큰 우산도 소용 없다. 무릎 아래의 바지를 내어주고 적실테면 적셔라는 기분으로 나가야 할 일이다. 그나마 미끄러지지 않는 슬리퍼라도 신었다면 감사한 편. 그래서 어지간한 볼 일은 쉬이 단념할 수 있다. 평소엔 그렇게 죽을 것 같던 식후의 커피 한 잔도 내리 꽃이는 빗속 행군을 이기기는 어렵다.



예전 학창시절엔 우산이 있어도 부러 이 비를 다 맞으며 집에 돌아가기도 했는데. 너무 시원해서 좋았다. 눈도 뜨기 어렵게 퍼붓는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면, 누구를 향해 질러야 하는 지도 몰랐던 마음속 비명들이 빗줄기 사이로 새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장마에 두들겨 맞으며 뜨거운 사춘기를 식혔더랬다. 지나치게 인상적인 빗줄기는 금방 옛 기억을 불러 올리곤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장마 속에 빠져있는 두주 가량은 생각보다 길고 지리한 시간이다. 하루 하루가 지날 수록 생활 공간 속의 천들은 조금씩 습기를 머금고, 빨래는 잘 마르지 않는다. 하루 종일 우산이라는 짐을 들고 다녀야 하는 팔은 고단하기 짝이 없고, 매일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는 발목 언저리 역시 썩 유쾌한 시간이라 보기 어렵다. 언제 끝나나 싶은 마음에 매일 일기예보를 찾게 되는 것도 유난히 장마철에만 하게 되는 일 중에 하나인 셈. 그래도 남은 이 시기에 마지막 서늘함을 즐겨두는 것이 좋겠지. 이 장마가 지나면 본격적인 폭염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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