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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Aug 31. 2021

복숭아

how to eat a peach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던 스무 살의 여름날, 이탈리아에 허름한 아파트를 빌려 친구들과 같이 해 먹던 저자의 요리에 대한 추억이 반짝반짝하게 들어 있는 요리책>을 만났다.


얼마나 기가 막힌 복숭아 레시피가 숨어있을까를 기대하면서, 사진과 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해 긴자의 서점에서 나왔다. 이제 다시 도쿄의 서점에 방문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책장을 넘기다 보니, 그날 빗속에서 책 여러 권을 무겁게 들고 숙소로 향했던 당시의 소소한 기억들마저도 제법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외국의 요리 책을 닥치는 대로 손을 뻗어 죄다 쓸어온 밤. 그게 벌써 삼 년 전 여름의 끝, <가을장마가 시작>되는 이맘때쯤의 일이었다.



책 속에서 말하는 복숭아 레시피란 기대했던 것처럼 /기가 막힌 레시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 근처의 젊은이들끼리 대충 저녁을 해 먹고 난 시간에 옆집에서 와인과 함께 잘 익은 복숭아를 한 바구니 들고 왔단다. 자신들이 먹는 방식의 '디저트'를 선물하겠다며 와인 잔에 대강 복숭아를 잘라 넣고, 차게 식힌 모스카토 와인을 부어 넣었다. 와인에 복숭아 과즙과 향이 밸 정도로 시간을 기다렸다가, 와인을 머금은 복숭아와 복숭아가 물든 시원한 모스카토를 함께 마시는 것. 그 순간의 기억 때문에 저자는 그때부터 어떤 과일이든 와인에 잘라 넣어먹는 버릇이 생겼다고도 했다.



어떻게 복숭아를 먹으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레시피에 대한 고찰을 넘어 제철과일을 친구들과 함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나누어 먹고 마시는 심플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술도   마시면서 그렇게 이탈리아산 모스카토  병을 사고 싶은 순간이었다.


언제나 여름은 복숭아 철이다. 특히 계절의 끝이 다가올수록 복숭아는 종류를 막론하고 부드러워진다. 한 입 크게 벌려 깨물면 입속 가득한 향기와 부드러움에 정신이 없을 즈음, 입가로 주르륵 단물이 흐르고야 만다. 곱게 껍질을 벗겨 정갈히 접시에 잘라 우아하게 먹는 방법도 있겠지만, 손가락 대기가 무섭게 끌려 내려오는 껍질을 당기자면 이미 정신이 없다. 코 끝에 도는 달콤한 향기에 절로 고개가 끌려 내려갈 때쯤 뽀얀 속살이 눈앞에 들어 차면, 때론 반사적으로 손보다 입이 먼저 나가기도 한다.


뚝뚝 떨어지는 과실의 단물에 이토록 목말랐을까. 한여름 물러지기 시작한 복숭아 앞에선 딱히 다른 방도가 없다. 온 손과 입가에 단 복숭아 향이 가득 물들도록 속 시원하게 먹어주는 수밖에.



다디단 복숭아는 한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부드러운 과육일수록 쉽게 무르기 때문에 남는 아까운 복숭아들은 가공이 필요해진다. 과일을 가공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유독 복숭아는 과육을 그대로 병조림하여 저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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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병원에 문병이라도 가면 깡통 속에 달달한 국물과 함께 주시던 백도와 황도의 맛은 지금껏 기억 속에 달콤하게 남아 있다. 복숭아를 생과 그대로 먹을 때는 그 자체로 맛의 완성도가 높지만, 끓여서 병조림으로 가공을 시작하면 문제는 조금 달라진다. 가열 과정을 통해 과일의 향기가 약해지고, 단순히 달콤한 맛만을 더하다 보면 자칫 달콤한 무에 가까운 복숭아 병조림을 완성시킬 수도 있다.


이럴 때, 목숭아 본연의 맛과 향기를 돋워 줄 수 있는 향신료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제일 맛있는 복숭아만큼이나 향기로운 복숭아 병조림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향신료가 더해진 병조림의 특별함은 국물에서 더욱 두각을 드러낸다. 차가운 복숭아 병조림 국물에 얼음만 타도, 복숭아 아이스티 저리 가라다.


해외에서는 빵에 부드럽게 발리는 잼류를 버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복숭아 과육을 갈아서 끓여내면 제대로 버터 같은 질감의 페이스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원래도 부드러운 질감의 복숭아는 과육의 짜임이 독특해서 가열을 한다고 마냥 쉽게 물처럼 풀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과육을 살짝 갈아주면 향기를 가득 머금은 보드레한 점성의 복숭아 잼(버터)이 완성되는 셈이다. 특히 부드럽고 달콤한 황도로 끓이는 '복숭아 버터'에도 취향에 따라 향신료를 더해주면 달콤한 복숭아 맛에 포인트를 살려주는 역할을 하며 맛의 풍미를 올려준다.



한 박스를 받으면 쉬이 물러지는 몇 개의 복숭아는 언제나 나오기 마련! 가을철까지 요거트에 올려 먹도록 오늘은 시나몬가루 좀 넣어서 복숭아 버터를 끓여봐야겠다. 이제 끝나가는 올여름의 향기를 병 속에 조금이나마 남겨둘 수 있도록.




복숭아 버터

Peach butter(cream)


Ingredients

복숭아 2개, 설탕 1/2컵, 물 1/4컵, 레몬즙 1 tsp, 시나몬가루 약간


Method

1) 잘 익은 복숭아 2개를 껍질을 벗긴 뒤, 작게 큐브로 썰어 준다.

2) 냄비에 분량의 설탕과 물, 1)의 복숭아를 넣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저어주면서 한 소금 끓여 준다.

3) 한 번 끓어오르고, 과육이 물러지면, 불을 끄고 냄비의 내용물을 성근 체에 한 번 걸러 준다.

4) 걸러 내린 내용물을 다시 중 약불에 올려놓고 레몬즙과 시나몬가루를 넣어준 뒤 잼 같은 제형이 될 때까지 끓이며 졸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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