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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Dec 10. 2023

나의 후쿠오카 성인식 2일 차

드디어 생맥주를 먹다


아침은 편의점에서 사 왔던 명란 파스타와, (나름) 블랙커피로 해결했다.


숙소... 진짜 진짜 넓다...

부엌도 있고 세탁기도 있다.

이때부터 이 신발의 엄지발가락이 뚫릴 조짐이 보였었구나

그리고 이날 꽤나 귀여운척하고 나갔었구나....


둘째 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god blessed me with this weather이라고 했는데, 진심이었다. 덥지도 않았고, 정말 딱 좋은 온도와 넉넉한 채광이었다.

그래서 막 찍어도 화보 같은 사진들이 나왔다.


너무 예쁜 자연스러운 풍경들.


사실 혼자 가는 여행이기도 하고, 애초에 명소를 찍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내가 평소에 제일 좋아하는: 날씨 좋은 날 산책하기, 카페 가서 글쓰기를 하기 위해 공원으로 향했다.

여기는 스타벅스가 빵이 진짜로 맛있었다. 가을이다 보니 몽블랑을 먹었는데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한국 스타벅스에서 다져진 스타벅스 빵에 대한 낮은 기대치를 뚫어버리는 맛이었다.

여기서는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는데 옆에 앉은 책을 읽던 일본 아저씨가 힐끔힐끔 쳐다봤다. 예, 신기하시겠죠. 그래도 제 글씨체가 예쁜 편이라, 맘껏 보셔요.


그리고 공원을 걷다가 미술관이 공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미술관을 가보기로 했다.

입장료는 특별 전시 외에 상설 전시는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상설 전시에 우리나라에서는 특별전으로 보기 힘든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했다... 정말 놀랍고, 또 부러웠다. 선진국 사람들은 이런 유명 작품들을 이렇게 접근성 좋고 저렴하게 볼 수 있구나...

개인적으로 귀여웠다고 생각했던 작품

당시 특별전은 건담이었다.

사실 건담에는 큰 관심은 없지만, 온 김에 보자~ 하고 들어가 봤는데 한자도 잘 못 읽고, 애니메이션 관련 히스토리도 잘 모르다 보니 '아는 만큼 보이는'게 없어서 사실 감흥이 크지는 않았다.



미술관 내부. 햇볕이 참 예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쇼핑을 잔뜩 했다.

디젤에선 옷과 가방을 샀는데, 점원이 너무 스타일도 좋으시고, 친절하셔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항상 일본 디젤은 갈 때마다 친절한 미녀가 있는 느낌이다.) 내 서툰 일본어와 그녀의 서툰 한국어를 섞어가며 대화했는데, 예쁜 것을 너무 알맞게 잘 추천해 주셔서 덕분에 많이 구입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정말 잘 입고 있다!).


그리고 오마카세를 가고 싶었어서 전날에 예약해 뒀었다. 사실 오마카세는 한국에서도 몇 번 안 가봤는데, 왠지 일본 현지에서 가고 싶었던... 유명한 집은 이미 예약이 다 찼고, 타베로그로 예약이 가능한 집 중 평점이 가장 좋은 곳을 예약했다. 나는 사케를 좋아하니까- 사케도 시켰다.

저 꽃이 정말 향이 좋았다. 셰프님에게 물어보니 깻잎 꽃이어서 깻잎이랑 비슷한 향이 나는 거라고 하셨다.

오마카세에서 내가 빨리 먹으면 주인장도 빨리 내어주는 줄 모르고 나오는 대로 먹었다. 천천히 먹어도 된다고, 오히려 남기면 민폐라고 친구가 알려줘서 그때부터 속도 조절... 생각보다 배불렀다.

제일 맛있었던 건 바로 요놈! 장어!

난 원래 장어를 싫어해서 먹지 않는다. 가시가 너무 많고. 육질과 손질의 노력을 저울질해 보았을 때 이득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잘 안 먹는데,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장어의 반전이어서 더 충격적이었다.


초밥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 아저씨가 말을 거셨다. 외국인이냐, 어디서 왔냐. 그래서 한국인이라고 말씀드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초밥을 좋아해서 혼자 드시러 오셨고, 원래는 삿포로 출신인데 도쿄로 출장을 오셨다고. 그리고 그분 옆에 혼자 오신 여성분이 계셨는데, 그분도 초밥을 좋아해서 혼자 먹으러 오셨다고 했다. 초밥을 좋아해서 혼자 오마카세에 가는 사람이라니! 온전한 직장인 어른다운 행동이라 생각해서 너무 멋있었다. 본인의 취향을 확실히 알고, 그 취향을 즐기기 위해서 돈을 아끼지 않는 행동. 세 명이서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지역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내가 책으로만 배운 일본어를 이렇게 입 밖으로 내는 것도 좋았다. 가끔 내 일본어를 못 알아들으셔서 다들 '?' 하며 날 쳐다볼 때는 영어로 얘기하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대화를 끝마치고 나는 숙소 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작별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규슈 맥주 축제를 하고 있었어서 너무 가고 싶었는데... 현금을 숙소에 두고 나와서 못 마셨다... 속상해...

웃긴 경험은... 길거리 걷고 있었는데 헌팅당했다...; 한국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는데(거짓말이지만)도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해서 참 일본 남자들은 적극적이군... 싶었다.


숙소 쪽 역에서 내려서 맥주를 마실 곳이 없나~ 하고 찾아보고 있었는데, 오며 가며 눈에 띄었던 분위기 좋은 술집이 생각났다.

혼자 들어가기는 무섭지만 용기 내어 들어가 봤는데, 여행 중 가장 잘했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엄청 긴장하고 입장했지만, 곧바로 단골손님과 사장님들의 친근한 분위기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단골손님분이 외국인이라고 하니 메뉴 설명도 해주시고, 술 설명도 해주셨다. 사장님을 "마스타!"라고 부른 것이 뭔가 나의 일본 감성을 자극했던 것 같다.

사실 무진장 배불렀는데 안주는 시켜야 할 것 같아서 타다키를 시켰다.

내 서툰 일본어로 단골손님분들과 대화하며 2~3시까지 마셨다. 일본인처럼 생겼다고 너 일본인이지!! 한국인 아니지!! 이러면 여권을 보여드렸었다. '마스타'가 일본어 이름도 지어줬다. 아이카? 아야카? 뭐 그렇게 생겼다고 했다. 여기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은 정말 오랫동안 간직할 것 같다.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었는데 산책을 나간 녀석도 있다고 했다.

이 귀여운 꼬질이가 있어서 맥주를 잔뜩 마시고 얘랑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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