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보드에 조금 관심이 있는 편이다.
'관심이 있다'라고 하면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부끄럽지 않으니까, '조금 관심이 있는 편'이다.
키보드가 처음 배송이 오면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에 병원에서부터 설레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신나서 언박싱을 하고 보면, 역시 인터넷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디자인도 예쁘고, 타건감도 경쾌하네... 이러면서 옛날 키보드를 새 키보드로 바꾼다.
그 이후 며칠은 집에서 일을 하는 게 너무 좋을 정도로 키보드가 좋다.
일부러 누워있지 않고 앉아서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그 키보드와 1주, 2주가 지나고 보면
경쾌하다고 느꼈던 타건감이 너무 가볍다고 느껴지고
화려하다고 좋아했던 디자인이 촌스러워 보일 때가 온다.
그러면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박스에 넣어뒀을 다른 키보드를 다시 꺼내 끼우고
쓰던 키보드를 다시 박스에 넣는다. 아니 내가 다시 찾지 않을 것 같다면, 아예 팔아버린다.
그리고 몇 번 타이핑을 해보고서야 느낀다 - 내가 이 키보드를 왜 박스에 넣어뒀었는지.
아, 얘는 역시 숫자키가 없어서 그런지 불편하네.
여러 종류의 키보드를 써보면 안다, 내가 어떤 타입을 좋아하는지.
타건감은 무거운 게 좋아, 가벼운 게 좋아.
Knob가 꼭 있어야 해, 써 보니까 좋더라. 안 써보면 아예 모를 때도 있다.
오늘도 카카오톡이 온다. '신제품입니다! 손목이 불편하지 않은 키보드에요'
오? 이건 또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