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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eok Jul 30. 2024

파혼할 뻔했습니다(14) 갑작스런 상견례

3장: 상한선이 없는, 신부를 위한 게임

대학생 시절 작은누나 상견례를 따라간 적이 있다. 양가 어른들이 얘기를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머지 인원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술을 좋아하시는 우리 아빠는 예비 매형, 그의 아버지와 술잔을 부딪쳤고 엄마는 이런 자리에서 많이 마시지 말라며 핀잔을 줬지만 분위기는 제법 괜찮았다. 예비 매형의 조카가 이따금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상견례가 끝날 무렵 예비 매형이 밥값을 계산하는 모습을 보며 ‘신랑 측이 상견례 비용을 계산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여자친구와 예물·예단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차례 오갔으나 시원하게 결론 나지 않았다. 엄마도 결국 “최소한으로 하자고 해”라는 말로 매듭지었다. 본디 파워게임에서 밀리는 쪽은 의견을 많이 낼 수 없다. 상대에게서 어떠한 움직임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약자는 눈치 보기 바쁜 게 자연의 생리다.


자녀들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았던 양가 부모님들. 여자친구 아버님은 의견 교환이 원활하지 않다고 느꼈는지 상견례 일정을 잡자고 하셨다. 올 것이 왔다. 무엇 하나 스스로 결정할 처지가 되지 않았던 터라 상견례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부모님끼리 만나서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대. 거봐 내가 말했지? 결혼은 두 집안의 만남이라고. 당사자만 좋으면 결혼한다는 게 어렵다니까."


여자친구의 말에 침묵을 지켰다. 둘만 좋으면 결혼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는 나의 지론은 조금씩 갉아 먹혔다. 결혼은 생각보다 많은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여러 명이 웃으며 식장까지 들어가야 하는 고도의 정치력이 수반되는 행위였다. 양가 부모님이 강하게 의견 내지 않아 조율할 의견 역시 많지 않았으나, 적어도 두 사람이 좋다는 명제만으로 쉬이 웨딩마치를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했다.


“언제쯤이 좋겠어? 자기 부모님은 언제 시간 괜찮으시대? 우리 부모님 어지간하면 다 될 거 같은데 주말이 나으려나? 부모님께 서울로 오라고 말씀드릴게.”


지역이 다른 두 집안이 만날 때 상견례 장소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여자 측 부모님이 남자 측으로 오는 게 예의다’, ‘두 집안의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편이 합리적이다’, ‘나이가 더 어린 부모님들이 이동하는 게 맞다’ 등 별별 주장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과거 약소국이 왜 강대국을 찾아가는지 조금은 이해되기도 했다. 다행히 부모님은 큰 반대 없이 “아들이 와달라고 하면 가야지”라고 밝게 말씀해 주셨다. 


주말로 상견례 날짜를 잡고 장소를 물색하는 일도 까다로웠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나와 성대한 이벤트를 좋아하는 여자친구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었다. 예식장부터 예물·예단, 그리고 상견례 장소까지. 달라질 것 없는 통장을 하루에도 몇 번을 확인하며 ‘효율적인 장소’를 물색했다. 요즘 사회 분위기를 미루어보면 나는 가성비만 추구하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남자친구였다. 여자친구 역시 내가 제시한 선택지 대신 여의도의 한 장소를 낙점했다.


“자기가 말한 곳도 좋은데 여의도 여기서 하면 좋을 거 같아. 여의도가 중간에 있으니까 이동하기도 다들 편하고 여기 음식이 맛있대. 여기로 하자. 전에 우리가 말했던 호텔은 예약이 안 꽉 찼대. 아쉽다…. 참 예뻤는데. 거기서 밥 먹고 자기네 부모님 주무시면 딱인데.”


여자친구가 결정한 상견례 장소는 호텔보다는 저렴했지만 가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남자가 상견례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신 계산기를 두드렸다. 부담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용 못 할 가격도 아니었다. 부모님께도 시간과 장소를 알리고 전날 내가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로 오라고 했다. 엄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라며 몇 달 뒤에 하자고 했으나 날은 이미 결정됐다.


친구에게 상견례를 한다고 말하자 자신의 지인 A의 상견례 일화를 들려줬다. 


“A 집안이 지방에서 좀 여유가 있고 여자친구가 지원을 못 받아서 여자친구 엄마가 양가에서 지원해 주지 말자고 했대. A의 엄마는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는 게 어른들이 할 도리 아니냐’고 했다는데 분위기 되게 싸했다더라. A도 1억 정도 지원받는 건데 여자친구 집은 그마저도 지원 못해 주니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 상견례 끝나고 별말 다 나왔다는데 결국 결혼은 했다니까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전혀 위로되지 않는 말에 걱정만 늘었다. 나의 자존감은 굽힐 수 있으나 부모님이 혹여나 기분 나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라면 루비콘강을 건널 때처럼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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