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의 임계점을 넘은 활동, 그것이 브랜딩이다.[1]
※ 이 글은 '인사이드 아웃도어' (리리 퍼블리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세련된 이론을 제시하거나 뛰어난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지난 10년간 제로그램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마저도 사람의 기억은 조작되기도 하려니와 내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도 있을 수 있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마케팅과 브랜딩은 병렬적으로 함께 집행되기도 하고, 하나의 프로세스에 마케팅과 브랜딩이 모두 섞여 있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접점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게 모호할 때도 있다. 이 둘의 관계를 가장 구분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브랜딩은 전략으로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것이고, 마케팅은 전술로서 인지도 상승을 통해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집행되는 업무 프로세스로 구분하자면 마케팅은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온라인, 옥외 광고, 매체 광고 등의 오프라인 홍보 방법과 도구가 포함된다. 이에 비해 브랜딩은 비즈니스의 모든 프로세스에 스며 들어있는 일관된 철학과 그것을 전달하는 메시지다. 전략이 없는 전술만으로는 브랜드가 될 수 없다. 브랜드는 그 출발이 아주 중요하다. 브랜드의 형성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Initiate - 최초의 단계
브랜드의 가치와 비전을 수립하는 단계다. 아직은 외부적으로 브랜드를 알리기 전 단계다. 브랜드 비즈니스의 성패는 이 첫 번째 단계에서 대부분 갈라진다. 출발이 잘못된 열차는 영원히 엉뚱한 궤도를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Create - 생성 단계
아이덴티티와 전략이 수립되는 단계다. 초기 단계에서 제시된 철학이 구체적인 전략으로 정교해진다. 이 과정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보다 분명해지며, 다양한 환경에서도 전개할 수 있는 전술이 만들어진다.
Educate & Tell - 전일화 단계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을 교육하고 성장시켜서 스스로 브랜드 담지자가 되도록 하는 과정이며, 외부적으로는 일관된 메시지와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브랜드는 가장 많은 노력과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Extension - 확장 단계
브랜드만의 조직 문화가 정착되었으며, 고객들에게도 신뢰받는 단계다. 이제 가벼운 트렌드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제시하는 컬러가 올해의 컬러가 되며, 그들의 만드는 스타일이 올해에 유행할 스타일이 된다. 마침내 브랜드는 해당 카테고리 상품 전체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된다. 브랜드는 이와 같은 과정으로 스스로 복제하며 자가발전하는 단계로 진화한다. 더불어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브랜드 스토리를 풍부하게 창조한다.
브랜드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브랜드 생성 단계, 또는 전일화 단계를 충분하게 거치지 않고 확장 단계로 넘어가려는 욕심 때문이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브랜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생성 단계, 전일화 단계에
대한 투자를 가치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 아웃도어 산업 규모는 한때 연매출 7조 규모를 넘나들었다.[2]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형적이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 어느 분야보다 진정성 있는 브랜드 스토리와 아웃도어 액티비티 경험이 중요한 아웃도어 비즈니스에서도 소위 ‘돈이 된다’는 소문으로 ‘옷장사꾼’들과 ‘자본 거간꾼’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광고 시장에서 최고가를 호가하던 연예인들은 줄줄이 아웃도어 브랜드의 모델로 나섰다. 등반용 하네스(안전벨트)를 어색하게 착용한 연예인이 말끔한 옷차림과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신문 전면을 장식했고, 아웃도어 월간지들도 찌라시 수준의 그런 광고들과 광고주 입맛에 맞는 수준 이하의 기사로 도배하므로서 독자들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거대한 블랙홀처럼 욕망의 도가니 속으로 다들 빨려 들어가고 있었으니 한국 아웃도어에는 문화는 없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의 전략만이 횡행했다. 그러기를 10년, 사람들은 ‘왜 우리에게는 파타고니아와 같은 브랜드가 없느냐?’라고 한탄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희극적인 장면은 N 브랜드다. 브랜드 런칭 초기부터 패선, 섬유 강국 이탈리아를 영민하게 써먹은 N 브랜드는 억대의 비용으로 당대의 톱스타들을 전속 모델로 계약했고, 이 전략은 완벽하게 성공해 거의 1조 원에 이르는 역대 최고가로 사모펀드에 매각하기에 이르러 투자 시장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아웃도어 비즈니스 관련자들에게 하나의 롤 모델이 된 셈이었다. 문제는 자본은 문화나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개개인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아웃도어의 본질에 대한 관심보다는 당장 매출 결과로 이어지는 광고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지속가능한 아웃도어를 위한 환경보호 활동과 모험가들을 지원하기보다는 연예인들을 앞장세우기 바빴다. 엄청난 광고 모델 비용과 TV를 포함한 매스미디어 광고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감당해야 했고, 지갑에서 현찰이 빠져나가는 대신 저급한 품질로 소비자들에게 되돌아갔다. 일종의 저강도 전략이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지불식간에 물 좋은 ‘고객’이 되었을 뿐이다. 그 후 코미디는 계속되어 외국 TV 채널의 이름을 빌린 업자들이 그 비슷한 전략으로 수천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이름을 빌려준 TV 채널은 뜻밖의 라이센스 계약으로 벌어들인 현금에 흡족해하는 동안 한국의 아웃도어는 ‘철학의 빈곤’ 시대를 맞게 된다.
(다음 글에 계속됨)
[1]《브랜딩 임계지식 명언》(모라비안 유니타스, 2011)에서 인용.
[2] 삼성패션연구소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4년 7조 1,600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8년 2조 5,000억 원대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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