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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Aug 22. 2021

지속가능한 아웃도어와 패션산업의 그린워싱

한겨레신문 인터뷰

한겨레신문과의 2021년 6월 5일자 인터뷰입니다.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98118.html


"코로나19로 등산 인구 늘었지만 친환경 개념은 옛날에 머물러"
"쓰레기 줍는 건 좁은 의미 행동.
자원 제일 많이 쓰는 제조사가 적정량 만들어 수거도 책임져야”



이현상 그레이웨일디자인 대표는 한때 ‘등산객 계급이라고까지 불리던 아웃도어 의류·장비 고급화에 대해 “코로나19 우리 사회 전반을 뒤흔든 것처럼 등산과 캠핑 분야에도 상당한 변화의 바람을 불렀다 짚었다. 집합금지 강화로 특히 실내에서   있는 운동이 극히 적어지다 보니 대표적인 아웃도어 스포츠인 등산·캠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산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활동성이 높은 20~30 젊은층이 자주 산을 찾으면서 의류나 장비도 경량화·간소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35년간 캠핑, 백패킹, 암벽등반 애호가로 살았다. 2011년엔 친환경 백패킹 용품 브랜드 ‘제로그램’을 설립해 기존에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고급화해온 등산·캠핑 용품 업계에 ‘친환경·경량 백패킹’을 화두로 던졌다. 간편하면서도 꼭 필요한 장비로 자연을 즐기고,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 환경과 함께 지속가능한 아웃도어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10년간 헌신한 제로그램에서 독립해 새 아웃도어 용품 브랜드 ‘그레이웨일디자인’을 만들어 키우는 중이다.

이런 경험을 묶어 지난 5월 낸 책 <인사이드 아웃도어>(리리)에 비박, 차박, 퇴근박까지 점점 진화하는 아웃도어 문화의 흐름을 담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너무 무겁게 메고 다녔고, 너무 많이 먹었으며, 너무 많이 마셨다. 길을 걷거나 야영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배낭 무게를 줄이는 습관을 기르는 일, 출발하기 전 미니멀하게 배낭을 꾸리는 일도 그에 못지않은 즐거운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이 대표 사무실에서 코로나19 이후 아웃도어 문화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달라고 했다.


이젠 가치지향적 소비의 시대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산을 마음에 품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지리산을 만나고 나서였다. 무작정 찾아가 가까이서 본 지리산은 웅장하고 거대했다. 두번째 지리산과의 만남 때 종주를 했다. 2박3일 동안 40~50㎞를 걸었다.

“동네 작은 산들만 보다가 지리산 종주를 하고는 자연에 대한 대단한 경외감을 느꼈죠. 이후 산을 계속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를 계기로 외국의 세계적인 명산을 찾아다녔다. 자연스럽게 외국 브랜드가 만든 여러 등산 장비를 찾아 사용했다. 산을 오르면서 장비에 대한 관심도 커져 일종의 ‘얼리 어답터’(일찍 받아들이는 사람)가 됐고 유명 업체들의 새 장비들은 어김없이 그의 손을 거쳤다. 20대부터 40대 중반까지 꾸준히 외국 브랜드의 등산 장비를 쓰면서 뛰어난 내구성과 성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았다.

“외국 브랜드를 많이 써봤죠. 좋은 장비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나한테 딱 맞지가 않는 거예요. ‘아, 이건 이렇게 만드는 것도 좋을 텐데.’ 이런 생각들이 점점 쌓이다 직접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계속 외국 제품만 써야 하지? 우리나라에도 가치지향적이고 철학이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는 20대 때 자동차공장 용접일을 하고, 30대에는 아이티(IT)업계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10여년 일했다. 젊은 시절부터 수십년 취미로 푹 빠져 있던 아웃도어 스포츠 일을 직업으로 삼은 건 46살 때였다. 한 아이티회사의 사내벤처로 아웃도어 용품 브랜드 ‘제로그램’을 만든 게 시작이었다. 여러 동료들과 친환경을 추구하는 국내 첫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재래시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재료를 구했다. 한때 숙련 용접공이었던 그의 손을 거쳐 더 가볍고 우수한 기능의 텐트를 비롯해 각종 아웃도어 장비가 개발됐다. 그렇게 브랜드 창업자이자 장비 개발자로 10년을 일했다.

“당시 외국에는 이미 철학과 스토리를 가진 가치지향적 브랜드들이 있었어요. 제품의 품질도 좋지만, 브랜드가 얘기하는 메시지에 감명받은 소비자들이 꾸준히 같은 브랜드 제품을 사는 것을 많이 봤죠. 한국에도 이런 소비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 봤던 거죠.”

그는 국내 소비자들도 예전처럼 가성비만으로 제품을 고르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브랜드에 호응하고 공감해 충성 고객이 되는 방식으로 물건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면서 개인의 취향이 강해지고, 작더라도 신뢰할 만한 브랜드와 소수 취향의 독립 브랜드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런 경향은 점점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옛날엔 등산 가면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빨간색 노란색 등산복으로 모두 똑같은 옷을 입었잖아요. 지금 2030세대들은 누구나 똑같이 입는 걸 싫어해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강조하고요. 결국 이 흐름은 산업적으로 보면 대규모 생산이 답이 아니란 걸 말하죠. 다양한 브랜드가 공존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입니다.”

영화계에 천만 관객의 상업영화만 있지 않듯, 의류와 스포츠 용품 제조업체도 작지만 단단한 브랜드를 추구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의류제조사가 똑같은 방식의 대량생산을 유일한 모델로 가져갈 일도 아니다.


쓰레기 줍는 게 친환경 전부 아냐

그에게 또다른 화두는 친환경이다. 10년 전만 해도 산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봉투를 가져가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스웨덴에서 시작된 사회운동)이 상식이 됐다. 하지만 이 대표는 산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정도로 환경을 위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2010년 초반, 아직 국내에 생소하던 ‘친환경 아웃도어 용품’이란 개념을 들여왔다. 환경에 나쁜 영향을 덜 주는 제품과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과 소비자가 적정 생산과 적정 소비를 하는 게 가장 친환경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일할 때 마음에도 없는 물건을 삽니다. 10만원에 팔던 걸 5만원에 파니까 덜컥 사고는 옷장에 넣고 안 입어요. 제품으로서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니 쓰레기와 다르지 않죠.”

적당한 양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기업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는 아웃도어 업계의 ‘친환경’에 대한 개념도 달려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자원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가정이 아니라 공장입니다. 기업이 공정과 유통 방식을 개선하지 않고 친환경을 말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단지 재생 종이를 써서 포장지를 만들었다고 친환경 브랜드가 아니죠.”

특히 그동안 아웃도어 의류와 잡화를 생산하는 브랜드들은 시장의 수요보다 많은 물량을 대량생산한 뒤, 팔리지 않은 나머지 물건을 파격 할인과 땡처리를 통해 해결해왔다. 이 대표는 이런 판매 방식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거된 옷의 극히 일부만 재활용된다.

“과도하게 만들어서 일단 비싸게 팔다가, 나머지는 땡처리하는 유통 구조야말로 우리 환경을 가장 해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수요가 100개라고 칩시다. 여유분까지 생각해도 120개 정도 만드는 게 적정 생산량이죠. 그런데 단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기업이 200개, 300개를 만들어요. 결국 팔리지 않는 것들이 생기니 나중에 가격을 대폭 할인해 땡처리를 합니다. 지구의 자원을 필요 이상 쓰는 행위죠. 그렇게 만든 물건이 결국 쓰레기가 되고 있는데, ‘친환경 원단’을 썼다고 친환경 제품일까요?”

제품을 적당량 만들어 적절하게 유통시키고 있는지, 소비자들에게 잘 쓰이고 있는지, 효용이 떨어진 제품을 나중에 어떻게 수거할지 등 모든 제품 제작 공정에서 기업이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 대표는 기업의 이런 반환경적인 행위를 소비자들이 꼼꼼히 지켜봐야 한다고 꼬집는다.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제조·판매 공정을 유지하면서 재료의 일부분만 친환경 소재로 쓴 뒤 ‘친환경’이라고 홍보하는 기업을 소비자들이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친환경’을 그저 마케팅 기법으로만 활용하는 위장 환경주의(그린워싱·친환경적 활동을 하는 것처럼 거짓 홍보하기)는 아닌지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 착한 기업은 없죠. 소비자가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소비자의 힘이니까요.”


아웃도어란 일상 탈출

등산을 포함해 완만한 산을 걷는 트레킹까지 합하면 인구의 상당수가 산을 벗하며 살고 있다. 지난해 7월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생활체육조사(2019)를 보면 최근 1년간 참여 경험이 있는 체육활동 1위는 걷기(56.7%), 2위는 등산(32.4%)이다. 가볍게 산에 오르거나 걷는 것이 가장 많은 이들이 즐기는 체육활동인 셈이다.

이 대표는 대단한 채비와 각오를 하고 수십명씩 단체여행처럼 가는 등산의 시대는 가고, 편안한 복장으로 일상에서 소규모로 가는 등산으로 시대 흐름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험한 산이 아니고서야) 반바지, 레깅스, 뭐 아무거나 입고 산에 가도 된다는 걸 사람들이 이제 알았고요. 코로나19가 끝났다고 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수십만원짜리 등산복을 다시 차려입고 산에 가진 않을 겁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어요.” 아웃도어 문화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제 ‘생활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예전 같은 관광버스식 등산은 다시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아웃도어 문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며 도심에 있는 캠핑장이라도 일상을 벗어날 수 있다면 즐거운 경험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보통 사각형 안에 살잖아요. 아웃도어는 콘크리트 안 사각형에서 보내는 하루를 벗어나는 시간입니다. 일주일간 뺑뺑 돌았던 쳇바퀴를 벗어난다면 도심에서 30분~1시간만 가도 현대인들한테는 특별한 시간이 된다고 생각해요. 하루라도 텐트에서 아침을 맞을 수 있다면 훨씬 큰 즐거움이 되겠죠.”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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