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니 밥이 맛이 없다.

아웃풋이 없는 인풋의 공허함.(1/?)

by Insider Outsider

또 시간이 흘러 흘러 한국에 온 지 17일이 지났다.

한국에 오는 것으로 우울증을 막았더니, 이젠 만성 현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석사를 졸업해 학생신분에 기댈 수 없게 된 지는 열 달 정도가 지났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고 있다는 감각에 시달린 지 열 달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사실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언제나 존재한 고통이긴 하나, 어쨌든 지속적으로 근래 들어 느낀 기간을 굳이 따져보면 그 정도가 된다.


모아놓은 돈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뿐만이 아닌 공기, 물, 음식, 옷.. 그 모든 소비에 이러한 감각이 적용되다 보니, 입맛도 떨어지고, 물건을 살 때도 기쁨보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물가가 비싸고 쇼핑 선택지가 많지 않은 나라에 사는 사람은 한국에 들어오면 소비를 통해 한을 풀기 마련인데, 이번 방문에는 그런 즐거움이 전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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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타고나기를 먹보에 식탐이 많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근 몇 년간은 소화력이 떨어져 음식을 먹어도 잘 소화가 되지 않아 양을 차츰 줄여 10년 전과 비교하면 먹는 양이 반절로 줄었고, 최근 들어서는 그마저도 크게 즐겁지는 않다. 한국에서 사 먹는 음식이 - 해 먹는 경우에도 대다수의 레시피가 - 몇 년간 엄마의 건강한 가정식에 길들여진 내 입에는 너무나 달고 짜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음식들이 단 거야. 이런 걸 먹고 사니까 영국 음식이 충격적일 만큼 맛없다고 느끼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지금도 삽화가 들어간 물건을 고를 때 음식 그림이 그려진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 이유와 비슷한 느낌의 대리만족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이 '배가 고파서' 고향에 돌아왔노라고 말하지 않나. 이 전에도 그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우월하다 칭송하는 한국의 음식이 이렇게 맛이 없는 것을 경험하니 한층 더 의미가 깊이 다가온다. 오히려 음식이 기름지면 기름질수록, 더욱더 허무한 기분이 든다.


혜원도 구직 문제로 오랫동안 시달리다 시골로 도피했었지. 다만, 그의 경우 도피한 곳에서 먹는 음식에 기운을 차리고 다시 세상에 나갈 힘을 얻은 해피엔딩이었지만 내 경우는.... 어째 도피해 온 곳의 음식이 더 맛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어쩌면 본 스토리 이전에 어린 혜원이 시골(과 엄마와의 괴로운 추억)을 떠나 도시로 새 삶을 찾아 이동했던 그 시점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분명히 지독하게 달고 기름지다고 느끼는 음식을 먹으며 혀는 거북해하고 있는데, 런던에서보다 소화는 잘 되는 감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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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는 런던에 비하면 소비활동을 하기 참 쉬운 곳이다.


-하루 시내에 나갔다 오는 비용이 2만 원 선인 런던에 비해 교통비가 아주, 아주아주 싸며

-따듯한 식사 한 끼의 비용이 부담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학생이나 나처럼 저소득층인 사람에게는 아예 고려대상이 되지 못할 만큼 비싼 런던에 비하면 먹거리와 간식거리가 가히 주지육림처럼 사방에 넘쳐나고

-'소확행'이라는 단어만 생각해 봐도 서울에서는 동네만 한 바퀴 돌아도 편의점 간식이나 자잘한 문구류가 손에 쉽게 하나씩 들려있기 마련이다. (애초에 영국인들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그들에게 행복의 그림은 소비활동과 직접적 연관이 적으며, 그보다는 일요일 아침식사를 침대에서 한다던지 정원을 가꾸는 것 같은 것이라.. 여러모로 호빗 같은 민족이다. 이제는 슬프게도 미국화되어가고 있지만.)


내 경우는 이제 여기에 한국행의 기회비용이 주는 부담감까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뭘 먹고 뭘 해도 현타가 든다고는 해도 어쨌든 조금 더 나가고 돌아다니고 있고, 따라서 신진대사가 더 활성화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래서 아직까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가중된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 비해 놀랍게도 특별히 체하거나 불쾌한 포만감에 시달리는 일이 없었다.



런던과 서울의 차이점을 이야기할 때 '변화'의 차이를 자주 예시로 드는데:


런던은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의 문화가 정착된 지속되어 온 세월이 아주 길고, 때문에 변화가 더디거나 아예 없는 도시이다. 바뀌고자 하는 욕망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며, 어느 수준 이상으로 무리해 노력하지도 않는다. '열심'을 보기가 드물다.

필요한 변화가 있을 때는 긴 시간을 들여 폭넓은 의견을 수집하고 매우 신중하고 느리게 진행한다.

설령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기더라도 묵묵히 하던 일을 이어서 한다. 그리고 내 식대로 한다.

그야말로 keep calm and carry on의 정수.

물론 그렇다고 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담이지만 브렉시트가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많은 이들이 당시 정치적 선동을 주도한 보수당 정치인들에게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무나 중요한 결정을 너무나 적은 정보를 가지고 너무나 빨리 결정했기 때문.)


개개인의 선호나 삶의 방식이 단기적 유행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이 아마 한국 사회와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그에 비해 서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엎치락뒤치락하며 바뀌는, 끊임없이 자신을 개선시키고 바꾸러 노력하는 그야말로 변화의 도시다. 단순히 하루가 멀다 하고 포장지가 바뀌고, 재개발이 되고, 입점된 가게들이 갈리고, 분기별로 유행하는 음식이 생기고.. 그런 표면적인 변화뿐 아니라/또는 그런 변화들로 인해 도시가 풍기는 에너지 자체가 명확하게 역동적이다. (물론 이쪽도 그 노력이라는 것의 결과가 때로는 좋은 개선의 방향으로 가지만, 때로는 '뻘짓' 또는 소수에게만 적용되는 편의를 향해 간다는 인상이 최근 들어 강해지긴 했지만..)


얼마 전에 만난 사회초년생의 피곤을 잔뜩 이고 진 동생에게, 이곳이 - 갓 들어온 외부인의 직관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 얼마나 사람 수가 많고, 필연적으로 그들이 내는 소리가 많고 큰지, 가게 수가 얼마나 많은지, 그 간격이 좁아 건축적으로도 소음이 많을 수밖에 없어 보이는지에 대해 말했다. 서울은 공기 자체에 더 빨리 걷고 많이 일하고 사고 먹고 놀고 뭐라도해!!! 너의 존재를 증명해! 너의 가치를 증명해!!!!하는 의식이 떠돌며 모두의 등을 떠밀고 채찍질한다. 관광 중인 외국인 나부랭이인 나에게도 피부로 느껴질 만큼.

그러니까 매사에 신중하고 진지한 네가 피곤한 건 당연한 거야.


어느 도시든 그렇게 그곳만의 페이스가 있다.

사람들이 걷는 속도와 보폭에는 그곳 고유의 리듬감이 있으며 (사실 서울인의 걸음걸이가 런더너보다 느리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느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말소리의 데시벨이 있고,

냄새와, 가로등의 색깔과, 다른 묘목의 가로수, 그리고 그것이 계절에 따라 물드는 색상... 봐라, 벌써 나는 '속도'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빠지기 시작하지 않나.


아무튼 각각의 페이스가 맞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느린 사람은 런던 쪽! 빠른 사람은 빨리빨리 서울 줄에 서시고! 이렇게 이분법적이지도 않다.

걸음이 느리지만 행보가 부지런한 사람에겐 서울이 맞기도 하고, 안목이 날카롭지만 뭐든 소화가 더딘 사람에겐 좀 버겁기도 한 것 같다.


내가 요즘 어떠냐면, 글쎄... 지금은 아무것도 아웃풋을 내지 않고 소비만 배로 하고 있는 서울 생활이 공허하고 맛이 없다.

하지만 아직은 뭐라 말하기 너무 이른 것 같다. 겨우 17일이 지나지 않았나.

서울의 맛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해서

삶의 맛을 되찾을 수 있기를. 그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