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시도(2)_이직 방식
당시의 나는 국내 1위 채용 플랫폼이었던 잡코리아를 통해 이직 활로를 모색했다. 그때의 이직 희망자들은 잡코리아나 사람인과 같은 채용 플랫폼을 통해 직접 지원하거나, 헤드헌터 및 아는 재직자를 통해 추천 채용을 진행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리멤버, 링크드인, 블라인드 등의 플랫폼을 통한 다이렉트 인재 소싱이 일반화된 시대이다. 즉 과거의 이직은 적극적으로 이직 의사를 표현하고 서칭 하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졌던 반면에, 요즘은 이직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게도 온갖 제안이 쏟아지는 시대이다.
최근 MZ세대의 이직률・퇴사율 증가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이직 접근성이 매우 쉬워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퇴직률 상승에 대응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경영진은 이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직을 결심하고, 잡코리아를 뒤적이기 시작하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퇴사를 마음먹은 게 처음이었기에 이직 서핑이 선사하는 해방감과 힐링의 감정을 처음 느꼈던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마치 회사가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운이 좋게 풍족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에서의 인정욕에 목매게 되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나의 경우, 경제적 여건도 그리 유복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뿐인 세상에서 크게 혼나서 자존감이 하락하거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보다 더 비참한 또 있을까.
하지만 잠시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금방 깨닫게 된다. 이 회사는 결코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 피상적이고 같잖은 평판은 이 조직을 벗어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기회는 얼마든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은 낮아진 내 자존감을 고양시켜 주고 좁은 사무실 내의 인간관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마침 모 대학에서 경력직 교직원을 뽑고 있었기에, 퇴근 후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교 행정직원과 내 경험을 어떻게 결부시켜야 하나 막막했다. 우선은 누구나처럼 실무를 통해 터득한 유관부서, 협력사 설득 경험과 엑셀 등 OA역량을 강조했다. 또한 대학교 현장 면접지원 경험 등을 통해 기업 실무자가 선호하는 대학교 입학처 직원은 어떤 특징이 있었고, 내 주변의 대기업 인맥이 이 대학의 취업지원처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결과는 합격이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면접일에 맞춰 하루 연차를 냈다. 내 마음만큼 설레던 봄날이었다. 그 학교는 서울 외곽지역에 위치한, 비교적 규모가 작은 대학이었다. 회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대한 남자들은 예비군 훈련장에 들어가는 순간 출처 모를 한기와 화약냄새, 쇠 냄새를 맡고 몸서리치곤 한다. 졸업 후 방문한 캠퍼스는 그와는 반대로 낯선 생기로 가득했다. 비록 내 모교는 아니었지만. 잘 단장된 조경식물과 꽃가루 내음,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은 대학 캠퍼스를 보며 만든 노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시간쯤 먼저 도착한 나는 주변 카페에 들어갔다. 3~4학년쯤 돼 보이는 남녀 무리가 카페에 모여 왁자지껄했다. 팀 과제 때문에 모인 모양이었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이곳 직원이 된다면 이 아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측정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그 아이들에게 있고, 나는 그것을 가능한 한 오래 지켜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 나이는 고작 스물여덟이었다.
잠시 후 연락을 받고 면접실로 들어갔다. 면접관 좌장은 그 대학 총장이었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봤던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면접의 마지막 순번이라고 했다.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갔고, 나는 최대한 그들의 니즈를 반영해 답변하려고 했다. 그렇게 짧은 면접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산지직송 합격 통보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계획에 없던 추가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으니 양해를 바란다고 한다.
아마 확신을 얻지 못한 결정권자의 즉흥적인 제안이었을 것이다. 추측컨대 만약 총장이 직접 면접에 참여하지 않고 보고만 받았다면, 무조건 정해진 절차대로 2명을 추려내라는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다. 막상 본인이 면접에 참여하니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들은 면접자들의 생사여부를 단칼에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경영자가 때로는 현장에서 괴리될 필요가 있는 이유라 생각한다.
며칠 뒤 약속했던 추가 면접일이 왔고, 난 퇴근 후 어딘가에 위치한 고깃집으로 향했다. 최종 면접자는 나 포함 총 5명이었고, 10여 명의 교직원과 함께한 이른바 술자리 면접이었다. 지난 2~3년간 각종 회식자리로 단련된 내게는 쉬운 일이었다. 내 입은 닫고, 윗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공감해 주고 술잔을 기울여주면 그만이다. 직원들은 내게 ‘지금 회사보다 연봉이 천만 원 넘게 떨어지는데 괜찮냐?’라는 질문만 반복했다.
괜찮을 리 없었다. 연봉은 실망스러웠지만 행정직이 MD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래도 괜찮다고 답했다. 시간이 지나고 제법 얼큰히 취한 그들은 ‘지금은 괜찮다고 하지만, 막상 지내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들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다음날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10년 전 신입사원 때 명함관리를 위해 ‘리멤버’라는 앱을 추천받았다. 리멤버는 몇 년간 편의성이 훌륭한 명함관리 도구에 불과한 앱이었다. 사진으로 명함을 찍으면 사람이 일일이 받아 적는, 그래서 한 때는 테헤란로 노가다의 전설이라고 불렸던 앱이다. 그런 리멤버가 ‘23년 7월, 창업 10년 만에 월간 손익분기점을 넘겨 흑자를 달성했다. 축적한 명함 D/B를 바탕으로 채용 솔루션으로서의 수익화에 성공한 것이다. 슈퍼루키나 자소설닷컴이 20대 신입채용 지원자들의 1순위 채용 플랫폼이라면, 리멤버는 경력채용 시장의 절대강자가 되었다. 마지막에 한번 더 리멤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앱이 한국 이직 준비생의 수줍은 니즈를 정확히 캐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링크드인을 하지 않는다. 나의 커리어를 불특정 다수에게 자세히 내보이는 게 어색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플랫폼의 주목적은 어쨌든 ‘이직’이지 않은가.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이직을 위한 몸값 부풀리기’처럼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모든 행위가 현실의 나와 다른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져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그 특유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자유로운 스타트업에 다니지 않는 이상, 팀 내 동료들에게 ‘이직’에 대한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심지어 일부 관리자의 경우 이직을 통보하고 퇴사를 상담하려는 직원을 배신자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아직도 이직을 준비하는 행위가 조심스러운 것이다. 리멤버가 성공한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링크드인과 달리 매우 폐쇄적인 생태계이므로, 내 명함과 커리어를 입력해도 극히 제한적인 일부에게만 노출된다. 딱히 이직 의사가 없더라도, 내 기본 커리어 사항을 입력만 해두면 구인 중인 기업이나 헤드헌터에게서 알아서 연락이 온다. 내 의도와 무관하게 이직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배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비난과 죄책감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