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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코집사 Jul 06. 2024

나의 직장생활 이야기(4)

신입사원 교육과 부서배치

스물여섯 살 여름, 6년 전 갓 대학에 입학했던 신입생의 심정으로 다시 서울 땅을 밟았다. 스무 살은 부모와 의무교육의 안전한 그늘을 벗어나 진정한 인생을 처음 맞이하는 해라고 생각한다. 난 스무 살에 아무것도 없이, 정말 내일 갈아입을 옷도 없이 무작정 상경해 타향살이와 대학생활을 시작했었다. 부모님의 기본적인 도움은 받았지만 등록금과 생활비는 대부분 내가 부담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한시도 놓지 않았고 뭘 하든 통장 잔고를 먼저 떠올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 다르다. 28개월의 고정적인 수입으로 학자금 대출도 다 갚았다. 입사가 결정되었으니 당분간 돈 걱정은 없을 것이고, 이제 어른으로서 제 몫을 해야 했다. 


회사가 위치한 곳은 5,8호선이 경유하는, 그전까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동네였다. 입사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었지만, 거주할 곳도 마련해야 하고 출퇴근에 필요한 것들을 사야 했다. 6년 전에는 근처 아무 PC방에 들어가 정보를 검색해야 했지만 세상은 6년 만에 많이 바뀌었다. 나는 아이폰5로 회사 인근의 고시원 방을 검색했다. 


고시원보다는 원룸이나 투룸 오피스텔에 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내 수중에는 천만 원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보증금을 낼 여윳자금이 없었다. 월세 35만 원 방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그곳은 샤워실이 공용이라서 포기했다. 이제 막 제대했는데 군대처럼 샤워실을 같이 쓰기는 싫었다. 창문이 있는 방은 45만 원이라서 포기했다. 결국 세 평이 안돼 보이는 방에 아주 작은 화장실/샤워실이 딸린, 창문 없는 방을 월세 40만 원에 계약했다. 나는 어렸고 모든 것이 견딜만했으나 딱 하나, 중앙냉방이라 더위를 심하게 타는 내게 너무 더웠다. 하지만 최고의 장점은 흰쌀밥과 김치가 상시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고시원 아래 마트에서 천 원을 주고 참치캔만 사 오면 한 끼 식사를 훌륭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홀로 조용히 입사일을 기다렸다. 




입사 교육은 총 한 달 여가량 진행된다. 먼저 그룹 교육이 3~4주가량 진행된 후 마지막 주차에 각 계열사로 흩어져 회사별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룹 교육은 별게 없다. 우리 그룹의 창립 역사·경영이념 및 철학·비전 이념 등을 교육한 후, 현업 선배를 몇 명 초청해 현업의 생리와 고성과자의 업무 방식 등을 교육한다. 중간중간 외부 리조트를 대관하여 워터파크/스키장 등 레저 시간도 마련해 준다. 그리고 그룹 최고경영자(총괄 부회장/사장, 기획조정본부장 등 회사별 다양한 직함을 사용한다)의 축하 및 훈화메시지를 듣는 식이다. 


특히 창업주의 이념·경영 철학·비전에 대한 교육은 그 형태가 군대에서의 정신교육과 매우 비슷하다. 그 과정에서 창업주의 이기적 의도는 ‘전후 대한민국을 살려낸 산업 역군의 사명감으로 포장된다. 업황이 좋은 계열사의 실적은 자랑스레 PT자료 앞장에 내걸리고, 실적이 안 좋거나 이미 매각된 계열사들은 흐지부지 넘어가기도 한다.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세뇌식 교육은 확실한 장점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그룹 교육은 신입사원의 조직문화 적응을 지원하는 기능을 한다. 그룹의 경영철학을 이해하고 소속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로열티를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짜 효과는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구성원에게 확실한 추억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그룹 교육은 단순히 앉아서 듣는 정신교육이 아닌, 여러 종류의 활동적 과제를 수반한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깔끔하고 좋은 리조트에 모여, 비전과 인재상을 바탕으로 체육대회를 진행하거나 보물찾기, 피케팅 등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갖가지 콘텐츠를 진행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비록 그 방식이 약간 유치할지라도 20대의 젊음, 취업 성공에 대한 기쁨 등으로 인해 모든 행사는 매우 열정적으로 진행된다. 면접으로 검증된 전국의 20대 중·후반 남녀가 모였으니 그 설렘 또한 얼마나 크겠는가. 그 여운과 추억이 현업에 복귀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꽤 진하게 남는다. 


어이없게도 이런 기억이 구성원의 이탈을 막는 리텐션(retention)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퇴사 면담을 해보면 많은 경우 이직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구성원&회사와 쌓은 좋은 추억이다. 기업에서도 이런 추상적 순기능을 알기에 매번 큰돈을 들여 신입사원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CJ그룹의 신입사원 OT 모습

 



그룹 교육이 종료되면, 다시 만날 일 없는 계열사 동기들과 작별한 후 각 계열사별 교육을 진행한다. 회사 교육은 총 1주간 진행되었다. 절반은 먼저 직무면담을 한 후 영업, 재경, 기획 등 각 현업 부서 선배들을 초청해 여러 교육을 듣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특별히 기억나는 교육은 하나도 없다회사의 업무방식과 조직구조에 대해 전혀 감이 없는 신입을 앉혀놓고, 현직자가 아무리 그들의 이야기를 해봐야 들리는 게 없다. 대학생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을 앉혀놓고 협력사 / 유관 부서와의 갈등을 이야기한들 전혀 와닿는 게 없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CS교육을 진행했다. 말이 CS교육이지 상담원 체험이었다. 상담원 시스템을 교육받고 실제 블랙컨슈머를 대상으로 품절 안내를 진행하는 것이 과제였다. CS교육을 도입한 것은 당시 사장이었다. 방송MD들의 업무역량 부족이 CS마인드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하여 신입사원에게 CS교육을 지시했다고 한다. 지금은 퇴임한 그분은 백화점에 고졸 재경직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의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백화점 출신들이 그러하듯 TV방송 및 e커머스 업태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다. 그래서 백화점과 동일한 방식으로 홈쇼핑 신입사원을 교육시키려 한 것이다. 


이는 완전히 시간 낭비였다고 생각한다. 백화점과 달리 홈쇼핑이나 e커머스 MD들은 고객을 접점에서 만날 일이 전혀 없다. 고작 한두 명의 블랙컨슈머를 경험해 본다고 해서 깨달을 만한 교훈이 없는 것이다. 교육을 진행하는 분들도, 교육을 받는 우리들도 목적과 의미를 모른 채 그렇게 2박 3일이 흘렀다. 




그룹 교육을 시작하기 전 HR부서 과장과 부서배치 면담을 진행했었다. 내 1지망은 방송MD 직무였다. 직무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홈쇼핑의 메인 직무였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다른 대부분의 기업과 같이 지원 직무가 영업, 마케팅, 지원(HR/총무), 재경 4개로 구분되어 있었다. 1차 직무만 선택하면 어느 부서에 배치받을지는 전적으로 회사 권한이었다. 만약 1지망 직무에 TO가 없을 경우, 2지망으로 합격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의 경우는 계열사까지 변경되지 않았는가. 


요즘에는 주로 직무별 상시·수시 채용을 진행하므로 지원자들에게 직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는 가장 중요한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기업이 상·하반 기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뽑았다. 공채 신입사원들은 입사지원 시 희망 직군을 결정할 뿐 세부 직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자격증, 전공 등 전문성도 일부 고려되지만, 대부분은 100% 랜덤하게 배정되기 일쑤다. 그리고 일단 팀이 배정되면 거기서 최소 3~4년 정도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업무를 해내야만 한다. 회사는 공채 신입들을 하얀 종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마분지인지 도화지인지 얇은 한지인지만 구분되면, 거기에 무슨 그림을 그릴지는 입사 후에 정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회사들이 ‘순환배치’ 시스템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최소 3년간은 그 부서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거꾸로 얘기하면 3년 정도 지난 후에는 보직 변경 기회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직업 군인인 장교들이 1~2년에 한 번씩 근무지나 직무를 변경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시스템을 채택하는 기업의 인재상은, 특정 분야에 정통한 ‘스페셜리스트’ 육성보다는 어느 조직에서든 능숙히 조직관리를 해내는 제너럴리스트’ 육성에 그 목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첫 발을 떼었다. 내가 배치받은 팀은 방송MD 부서의 패션/명품 MD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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