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함은 칭찬일까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음식과 맛집에 일가견이 있는 유명 만화가와 젊은 여자 배우가 지방의 노포에 마주 앉아 있습니다. 간판은 빛이 바랬고, 식당 안 풍경도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역 특산품으로 정성껏 차린 상이 나오자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어집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수차례 오가고 난 뒤에야 젊은 배우가 환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정말 호불호가 없는 맛이네요. 너무 맛있어요.
순간 귀에 조금 거슬리는 느낌이 듭니다. 호불호가 없다면서 너무 맛있다고 하니까요. 과연 이 말들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요?
‘호불호(好不好)’는 말 그대로 좋음과 좋지 않음, 혹은 좋아함과 좋아하지 않음을 동시에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호불호가 없다’는 말은 그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긍정과 부정의 진폭이 거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대화의 맥락과 배우의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여기서 ‘호불호가 없다’고 표현한 의도는 ‘누가 먹어도 부담 없이 맛있게 느낄 수 있는 맛’ 혹은 ‘자극적이거나 과하지 않은 안정적인 맛’, 그래서 긍정적으로 다가온다는 의미인 듯합니다. 어쩌면 “이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네요!”하는 극찬의 의도로 내뱉은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살펴볼 때 ‘호불호가 없는 맛’이란 대중적이고 무난할 뿐 사실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맛’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호불호가 없는 맛’ 뒤에 ‘너무 맛있다’라는 표현은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그 배우가 평소에도 그저 무난한 맛을 선호하는 편이라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호와 불호의 갈림이 없다는 건 평균에 가깝다는 뜻이지, 최고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호불호가 없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처럼 느껴지는 착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음식의 세계로 돌아가 보면 한결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고수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국물이나 쿰쿰한 냄새가 진동하는 청국장의 강렬한 풍미, 매운맛이 치고 올라오는 찌개는 분명 호불호가 갈립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강렬함 덕분에 쉽게 잊히지 않는 맛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억은 그 음식을 다시 찾게 만드는 강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담백하고 순한 맛은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는 있겠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맛이 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호불호가 없어.”라는 평가는 대체로 무난하고 거부감이 적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강렬한 개성이나 뚜렷한 색채가 옅다는 의미가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무난하다고 평가받는 사람은 어쩌면 누구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하게 각인 될 만한 개성이나 특징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때로는 이런 사람들이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워낙 개성이 강조되고 뭐든 튀어야만 살아남는 시대이기에 비록 존재감은 없지만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가치에 새삼 눈길이 가는 이유겠지요.
이 지점에서 다시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연 갈림이 없는 것이 최선일까요. 모든 이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가장 높은 경지일까요. 분명한 건 ‘호불호가 없다’는 말은 절대적 평가가 아니라, 그저 논쟁이 적다는 차원의 사회적 평가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정답은 없습니다. 그래서 ‘호불호가 없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배우의 말을 트집 잡는 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말속에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믿고 찾을 수 있는 맛,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 온 노포에 대한 신뢰와 경의가 담겨 있었을 테니까요. 누구와 함께 와도 안심하고 권할 수 있는 맛이라는 뜻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찬사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익숙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한자어를 덧붙이며 자신의 말을 더 품위 있어 보이게 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의미를 충분히 헤아리지 않고 한자어를 잘못 얹어 놓으면, 말은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오히려 자신의 허술함과 텅 빈 속이 먼저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필요 이상의 수식과 과장된 표현은 취향의 차원을 넘어 분명히 ‘불호’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