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_사약(賜藥)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베풂의 약’

by 인사이트뱅크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사극에서만 볼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어명이요. 죄인은 어서 나와 사약을 받으라!

관리의 외침에 이어, 지체 높은 왕족이나 양반은 버선발로 나와 임금이 있는 서울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잔을 받아 듭니다. 이러한 ‘죽음의 통보’는 정의가 실현되는 결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또 다른 갈등과 비극의 시작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약은 ‘죽을 사(死)’ 자가 들어간, 죽음의 약[死藥]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약(賜藥)은 말 그대로 ‘임금이 내린 약’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이 “사약을 내려라.”라고 명하고, 이를 받든 관리가 “사약을 받으라.”고 외치는 장면이 실제로 존재했을까요?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 온 이 문장들은 독자와 관객의 고정관념에 기대어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하나의 클리셰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역사 속 기록은 어떨까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를 살펴보면, ‘賜藥’이라는 표현은 모두 230회나 등장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사약을 내려라’, ‘사약을 받으라’와 같이 명사형으로 쓰인 사례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약을 하사하다’, ‘약을 내려보냈다’와 같은 목적어+서술어 형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내용입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극형의 독약이 아니라, 병을 치료하거나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약재를 하사한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적어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서 ‘賜藥’은 죽음의 상징이라기보다, 오히려 돌봄과 배려의 표시였습니다.

예컨대 세종실록에는 ‘사약’이 무려 쉰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달리 세종은 잔혹한 폭군이었을까요? 세종은 양녕대군과 같은 왕족과 맹사성 등 중앙 관리, 지방의 수령들, 심지어는 명나라 사신과 왜나라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약재를 내리며 알뜰하게 살핀 흔적이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임금이 실제로 죽음을 내릴 때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요. 실록에는 죽음을 내린다는 의미에서 ‘사사(賜死)’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약’을 죽음의 약으로 이해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근대 이후 문학과 대중 서사가 만들어 낸 이미지의 힘이 컸던 듯합니다.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에 등장하는 ‘이하전이 역모를 하던 것이 발각되었사와 사약을 하였다 하옵니다.’라는 문장이나, 박종화의 《금삼의 피》에 나오는 ‘연산은 죄인들이 사약을 받고 무엇이라 말하더냐’와 같이 ‘사약’이 명사형으로 등장하였고, 이후에도 드라마와 영화가 이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며 일종의 공식처럼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학의 표현은 사실을 따르기보다 때로는 의미를 압축하거나 상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賜藥’은 이렇게 편협한 의미로 굳어지며 ‘죽음의 약’으로 상징화되었습니다.

줄 사(賜)는 베풂의 글자입니다. 지식과 물질과 은혜를 베풀고, 상을 내리고, 때로는 약을 내려 사람을 돌보는 것이 본래의 뜻입니다.

“죄인은 어서 나와 죽음을 맞으라!”

앞으로 사극에서 이런 대사를 듣게 되더라도, 결코 억지스럽거나 어색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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