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대화를 방해하는 머릿속 말과 감정
‘이건 아니지.’ ‘왜 나한테 그래.’ ‘아, 또 시작이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수많은 말들을 머릿속에서 되뇌고 있습니다. 상대는 말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반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혼잣말’과 ‘방어’로 가득한 내면의 장면입니다.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서로 배우는 대화는 상대의 말이 들릴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공간이 바로‘알아차림’입니다.
대화는 말을 주고받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말보다 먼저 반응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기 전에 이미 느끼고, 생각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반응은 놀라울 만큼 빠르고 자동적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그건 좀 부족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이 어떤 맥락인지 듣기도 전에 우리는 ‘내가 부족하단 말이야?’,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당신이 뭘 안다고?’와 같은 생각과 감정에 휩싸이곤 합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 안에서 만들어진 해석과 반응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자동 반응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따라서 알아차림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고받는 거의 모든 대화 속에서 훈련할 수 있는 실천입니다. 이때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머릿속 말’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한 것처럼, 에고는 끊임없이 혼잣말을 만들어냅니다. 그 말들은 과거의 상처, 고정관념, 해석 습관에서 비롯되며, 종종 상대의 말보다 훨씬 크게 들립니다.
예컨대, ‘내가 잘못됐다는 건가?’, ‘이 사람한테 밀리면 안 돼.’와 같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 목소리는 판단과 평가의 언어로 말하며, 배움을 거부하고 대화를 승부로 전환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이 목소리를 그저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대화에 다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감정의 반응’입니다.
때로는 말보다 먼저 감정이 올라옵니다. 분노, 억울함, 수치심, 서운함, 불안함, 혹은 그 감정에 이름조차 붙이기 어려운 상태에서 가슴이 갑갑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방어 반응일 수 있습니다.
이 머릿속 말과 감정이 작동하는 동안, 대화는 멈춰 있습니다. 상대의 말은 더 이상 나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서로 배우는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내 안의 이 방해자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감정은 반응이고, 머릿속 말은 그 감정을 설명하는 해석일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합니다. 문제는 감정과 생각이 서로를 강화하며 ‘내면의 루프’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머릿속 말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은 다시 그 말을 강화합니다.
머릿속 말: ‘나를 무시하는 거야.’
감정: 불쾌감 → 해석 강화: ‘이 사람은 항상 날 낮게 봐.’
반응: 방어, 반격, 침묵, 혹은 대화 중단
이러한 루프를 끊고 다시 대화로 돌아오는 길은 '지금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잠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구독' '라이킷'은 힘이 됩니다. 미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