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참 뻣뻣해...그래도
태생에 애교라고는 1도 없는 나란 사람.
없어 보이는 것, 약해 보이는 것, 못나 보이는 것이 싫다.
이 말을 풀어보자면 난 가진 게 없고, 약해 빠졌으며 못났다는 말과 같다.
이 글을 읽을 나의 지인들이라면 그렇게 안 보인다는 말로 위로하며 부정하겠지만
사실 탁 까놓고 보면 그렇다.
그래서 난 남들에게 부탁하거나 투정 부리는 일이 서툴다. 애교는 더더욱 서툴다.
힘들어도 힘들다 말 못 하는, 아니 힘든 걸 애써 무시하는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참 뻣뻣하다. 이수정!'
지방 강연을 다녀온 탓에 몸이 녹초가 되었다.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내일 진행할 회의자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늘어난 마시멜로처럼 축 늘어져 욕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어 손을 적시자 네 번째 약지가 쓰렸다. 낮에 아이스커피를 마시다가 컵 뚜껑에 살짝 벤 부분이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상처여서 잊고 있었는데, 물이 닿으니 쓰라렸다.
아! 몸에 난 상처는 아무리 작아도 쓰리고 아픈데 그동안 내 마음속 상처는 나 몰라라 하고 밀어 놓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카톡이 왔다.
주문한 전기압력밥솥이 발송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친정집 전기밥솥이 망가져서 엄마와 아빠가 가전제품 샵에 밥솥을 사러 가신다기에, 인터넷으로 사면 더 싸다며 내가 대신 주문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하루 늦게 상품이 발송된 것이다. 매일 해 먹는 밥인데 혹시라도 기다릴까 싶어 엄마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밥솥이 어제 발송될 줄 알았는데, 오늘 발송됐다네, 밥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옛날 압력밥솥으로 하고 있어, 가스불에, 괜찮아 천천히 와도"
"아! 그렇구나, 아마도 내일이면 도착할 거야"
"응 그래 고마워, 일은 마쳤어?"
"응 이제 마치고 막 들어왔어, 오늘은 청주에서 강의가 있었고, 내일은 대전에서 있어"
"아휴, 너... 힘들어서 어떡해..."
"아니야~ 엄마! 힘들기는, 나 재미있어!!" 재미있어라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재미있다니 다행이네! 고마워!"
전화를 끊고 나니 눈물이 났다.
내가 힘들어하면 엄만 얼마나 속상할까? 그래서 힘든 내색 안 하려 재미있다고 말하고 나니 그런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고 애틋해서, 그리고 안됐어서...
<증인>이란 영화에 등장하는 지우는 자폐아다.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지우를 증인으로 세워야 하는 변호사 순호는 지우의 엄마에게 무심코 "자폐만 없었으면..."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지우의 엄마는 "그럼 그건 지우가 아니잖아요"라고 하는데, 그 장면에서 난 너무나 큰 위안을 받았다.
애교가 넘치고, 강인하고, 잘났으면 그건 내가 아니잖아!
지금 내 모습 그대로가 나니까.
이게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