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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06. 2019

인생을 예술작품으로 대한다면

<필사 노트>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중

<필사 노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중 

[장 폴 사르트르: 인생을 예술작품으로 대한다면/앙가주망] 편  



 사르트르는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다. 실존주의는 무엇인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철학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How의 물음'과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What의 물음', 이 두 가지 명제에 몰두해 왔다고 언급했다. 실존주의는 이 중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즉 'How의 물음'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이 물음에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라는 답을 제시했다. 앙가주망이라 하면 뭔가 고상한 철학 용어로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은 주체적으로 관계한 일에 참여(Commit)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참여하는 것일까> 사르트르는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의 행동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행동과 선택은 자유이며, 따라서 '무엇을 할까?'라든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사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앞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의 도피를 다룰 때 자유의 괴로움에 관해 고찰했는데, 사르트르 또한 자유를 매우 무거운 것으로 인지해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사르트르는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앙가주망에 따라 참여하는 두 번째 대상인 '세계'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시간, 즉 인생 자체를 사용해 어떤 계획을 실현하는데, 이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 계획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르트르는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그 예로 들었던 것이 전쟁이다. 


   사르트르는 전쟁을 인생의 외부에서 닥쳐온 사건으로 여기는 것을 잘못이라 보았다. 전쟁은 '나의' 전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반전 운동에 몸을 던지거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 도 있었고, 아니면 자살함으로써 전쟁에 항의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이목을 생각하거나 단지 겁이 많아서, 혹은 가족과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주체적인 의지로 이 전쟁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상,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실로 냉정한 지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강조한 '자유의 형벌'에 처해 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 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필요하다. 


   그런데 실제상황은 어떤가? 사르트르의 직언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엄격한 지적으로 들린다. 사르트르는 우리의 목표가 자신의 존재와 자유(선택 가능한 범위 내)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인데도 많은 사람이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회와 조직이 지시한 대로 행동하는 고지식한 사고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직업 같은 건 자유롭게 선택하면 될 텐데도 그 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취직 인기 순위의 상위에 올라 있는 회사만 원하는 것은 전형적인 '융통성 없는' 사고다.


   소위 성공은 사회나 조직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하고 기대받은 성과를 올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사르트르는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자유롭다는 것은 사회나 조직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손에 넣는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르트르의 이러한 주장은 내가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에서 소개한 현대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세계라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ㄱㅇ동으로 관여하는 아티스트며, 그렇기에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요제프 보이스의 메시지다. 사르트르 도한 조직과 사회가 들이대는 척도를 보며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고 완전한 자유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창조해 내야만 자신의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7000 떡갈나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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