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제대로 즐기기 1
잠시 프랑스 파리(Paris)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해보자! 가운데 빨간 표시가 나의 위치다. 나는 지도상에서 10시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다. 나의 왼편으로 센 강이 흐르고 있다면 미션 클리어!!
루브르 박물관은 상상보다 더 방대하기에 짧은 일정을 활용하여 알차게 관람하기 위해서는 박물관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해하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만약 루브를 갈 계획이라면(적어도 50년 안에) 읽어보시길!
루브르 박물관은 크게 3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섰을 때 나의 왼팔 부분에 해당하는 전시관이 '드농관', 오른팔에 해당하는 곳이 '리슐리외관', 그리고 나의 몸통에 해당하는 곳이 쉴리관이다. 그리고 세 개의 전시관의 중앙 부분에 유리 피라미드 입구가 있다.
맨 처음 루브르에 갔을 때 각각의 전시관 이름으로 붙여진 드농, 리슐리외, 쉴리는 어떤 의미인지 참 궁금했다.
우리가 규모가 큰 한식집이나 고깃집을 가면 각각의 룸마다 이름을 붙여놓는데, 그 이름은 그 식당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던가?
루브르 박물관을 구성하는 세 개의 전시실의 이름은 (예상했겠지만) 모두 사람 이름이다. '드농'은 나폴레옹 시절 초대 루브르 박물관 관장이었던 인물이고 '쉴리'는 앙리 4세 때 재무장관으로, 궁핍했던 프랑스 재정을 부흥시킨 인물이다. 쉴리는 평민들에겐 환영받았지만 귀족들에겐 반감을 사 그로 인해 앙리 4세가 암살당했다고 한다. '리설리외'는 루이 13세 당시의 재무장관을 지낸 추기경으로 '로열 아카데미 창시자'이자 엄청난 예술 애호가였다.
루브르는 12세기 후반 필립 2세의 명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만 해도 궁이 아닌 요새였다. 지금도 요새의 잔재들이 남아있다. 요새가 루브르 궁전이 되기까지 많은 건물 확장 공사가 있었다. 1672년에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며 루브르 궁은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바뀌었다.
1692년 루브르 건물에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서고 1699년에는 첫 번째 살롱전이 개최된 후 100년간 이어졌다.
( 왕립 아카데미 살롱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34)
루브르는 1793년이 되어서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며 박물관으로 첫 전시를 시작했는데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한 수집품 들이었다.
프랑스혁명을 거쳐 나폴레옹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루브르는 뮈제 나폴레옹 (Musée napoleon)으로 이름이 잠시 바뀌기도 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대패하자 나폴레옹 군대가 약탈해왔던 많은 작품들이 자국으로 돌려보내 졌다. 그러나 박물관장이었던 드농이 빼돌려 돌아가지 못한 작품이 여럿이다. 본국으로 돌아 간 작품만도 5만 점이었다니 나폴레옹과 그의 수하 드농의 미술품에 대한 애정은 단순 애호를 넘어 탐욕의 수준이었던것 같다.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재위 기간에 다시 한번, 더 큰 규모로 소장품이 늘었고, 제2제국(나폴레옹 3세 통치 기간) 중에 20,000여 점의 수집품이 들어왔다. 소장품은 제3공화국 때부터도 기증과 선물로 계속해서 규모가 커졌다.
루브르는 현재 무려 38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그중 회화작품은 6000여 점 정도다. 걸어도 모두를 관람하려면 동선만 무려 60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루브르의 0층은 우리의 1층에 해당하니 총 3층 짜리 루브르의 경우 안내 지도에는 0층부터 2층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 가지 더! 근 현대사를 거치면서도 프랑스의 미술품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늘어나는 소장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848년 이후에 그려진 작품들은 1986년에 개관한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놓았다. 그러니 만약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그림이 인상주의와 그 이후의 것이라면 루브르가 아닌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2012년엔 프랑스의 랭스(Lens)에, 2017년엔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에 분관이 개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