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자신의 죽음으로 완성한다

영화 콘클라베

by 인솜니 lamiremi

스포일러 워닝: 이 리뷰에는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콘클라베를 보았다. 영화를 보러가고 싶은데 할 일들이 많아 미루다가 동네 영화관에서는 그만 상영이 끝나고 말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돌아가셨다. 슬픔과 먹먹함, 그러나 사랑과 감사로 가득한 가슴을 부여안고 며칠이 지났다. 아무래도 보러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할 일은 많지만 멀리 센트럴시티까지 보러갔다.


영화가 시작될 때 이미 교황은 돌아가셨는데, 미스테리 영화답게 그 죽음을 건조하게 처리하는 씬에 왠지 너무 매정하다고 느꼈다.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이 눈물을 가득 담아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영화는 기대했던 대로 추기경들의 암투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여주었다. 이탈리아 우선주의자, 돈을 뿌려서 교황이 되려고 하는 금권주의자, 검은 대륙에서 온 보수주의자,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이 교황이 되는걸 막기 위해 나선 자, 믿음이 흔들리면서도 ‘관리자’로서 돌아가신 교황의 명령에 따라 좋은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외줄타기를 거듭하는 주인공, 여기에 분쟁지역에서 목숨걸고 사역하던 숨겨진 추기경도 추가된다.


재미난 것은 이미 죽어버렸고, 그의 죽음이 이 영화와 콘클라베의 기본 전제인데도 교황이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마치 그가 플레이어이고 추기경들은 체스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해리포터의 덤블도어가 매우 생각났다. 아데예미를 좌초시킨 스캔들의 촉매가 트랑블레를 좌초시키기 위한 촉매로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매우매우 그랬다. 부정할 수 없는 가설이다.


나는 모두가 투표권을 갖고 피선거권을 가진 구도가 참 흥미로왔다. 전세계에서 가장 중앙집중적인 종교조직인 카톨릭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자를 뽑는 선거만큼은 가장 민주적이고 공정하다. 참 재미있다. 내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안 될 것 같으면 어떤 사람을 뽑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고 토론하고 파당을 짓고 휩쓸린다. 민주주의라는 것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러다보니 결국 옛날엔 돈많고 권력있는 자들이 교황이 되고 면죄부도 팔고 그런식으로 타락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진실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베니테즈 추기경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적이 어디있나? 이 가슴 속에 있다. 정말 그런걸까? 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싸워야하는 것일까? 아집 때문에, 그것을 버리지 못해서 종교를 앞세워 반목하고 싸우는 것인가? 사악한 자들 때문이 아니라 나를 부정하는 그들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인가? 현실에서는 자기 이득을 보려고 하는 자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만, 그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진정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나라도 나서야지라는 마음을 내었을 때, 성당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는다. 어디까지가 우리의 신실한 선의인지, 어디까지가 교묘한 아집인지 결국 우리는 알지 못한다.


현실에서도 콘클라베가 열리고 레오14세가 즉위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레오13세의 이름을 이었다고들 하는데 나는 왠지 사자처럼 멋지게 트럼프와 한판 붙어주시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뚜렷한 개혁성향이었고 가없는 사랑으로 약자들을 포용해주셨지만 재위기간 동안 부정부패 척결이나 여성권리 증진 등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어쩌면, 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비유럽 출신 추기경단’을 만들어놓고 가신 것으로써 그분은 영화 콘클라베의 선임 교황 이상으로, 덤블도어 이상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가신게 아닌가 한다.


교황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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