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어른

by 인솜니 lamiremi

아마도 고등학교때 일이다. 내가 다닌 학교는 불교학교라 해마다 초파일이 가까와지면 연등을 만들었고 초파일 행사에 참가해야했다. 한잎 한잎 연꽃을 정성스레 붙이는 일은 좀 재미있었지만 초파일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일은 좀 그랬다. 하지만 어쨋거나 나는 반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신나게 떠들면서 여의도로 갔다.


고등학생인 우리는 이제 머리가 좀 굵었다고 종교 및 사회현상을 비판했다. 불교는 썩었어, 나와 한 친구가 논쟁을 주도했다. 천주교는 그래도 깨끗해. 때는 80년대, 즉슨 김수환 추기경의 인덕이 온누리에? 미치고 명동성당이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통하던 시절이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는 아기를 데리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우리의 논쟁을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우리가 열띤 종교 논평을 끝내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서 앞에 앉은 사람과도 이야기를 하게 되는 여유를 드디어 갖게 되자 알게 된 사실은, 그 아주머니는 아기를 데리고 초파일 행사를 가는 중이었고, 당연하게도 불교신자라는 것이었다. 아 그렇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초파일 행사를 가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친구들은 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없이 서있었다.


초파일 행사는 과연 시끄럽고 정신 없고 쓰레기가 열두 트럭 나오게 생긴 아수라장이었다. 앞전의 한국 천주교에서 열었던 세계성체대회(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오셨던)와는 딴판이었다. 그 속에서 평정을 찾으려고 나는 학교에서 배운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 속으로 침잠했다.


그러나 세월이 가도, 갈수록 나에게 생각나는 것은 불교는 썩었어, 하고 면전에서 토론을 하는 어린 학생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주었던 그 아주머니다. 나에겐 그후 불교신자들, 보살님들을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이 생겼다.


기실, 그게 어느 종교를 믿는 사람이냐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 어떤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믿는가보다는 그가 다른 이에게 심지어 자기의 믿음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느냐가 진짜 그 사람의 진면목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20대에 이 사회의 제도와 문화에 대해 많은 부정을 했고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만난 같은 생각, 심지어는 같은 취향의 사람들을 믿고 좋아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큰 나의 해방구였다. 그러나 인생을 살면서 점점 알게 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하는 것은 어떤 것을 그가 좋아하느냐와는 다른 것이라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어떤 것이 옳다고 그가 믿는가와도 매우 다르다는 것이었다.


요즘 어른 김장하 열풍이 훈훈하다. 나도 넷플릭스에서 찾아보았고, 눈물을 흘렸다. 요즘엔 만나기 힘든 진정한 어른을 오랜 만에 만나볼 수 있었다. 진정한 어른이란 누구인가? 나는 다시금 그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나는 그분이 우리가 되어야할, 되고 싶어야할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어떠한 주장이 아니다. 단지 한 사람이 어른이 되기 위해 꼭 만나야할 삶의 표상을 나는 그분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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