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모는 자기에게 결핍되었던 것을 아이에게 주려고 한다.
나의 엄마는 한국전쟁 전에 태어났지만 전쟁의 기억은 없고 전후의 어려운 시절을 기억하는 분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네 집에 가면 5개의 냉장고를 가득 채운 식료품의 넉넉함에 감탄하게 된다.(지금은 4개로 줄었다.) 들어보면 그 세대의 다른 분들도 다 비슷하다. 심지어 영업용 냉장고를 꽉꽉 채운 이야기도 들어봤다.
어떻게 애들을 잘 먹여야할까? 하루 밥 3끼니 먹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듯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후 4시경만 되면 ‘오늘은 뭘 하지…’ 고민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세대는 어떨까?
나는 모든 물자가 부족하고 아껴써야 했던 70년대를 기억한다. 풍요의 80년대에 자라난 후배들과는 좀 세대가 다르다. 그래도 옷은 얻어다 입히면서도 책은 계몽문화사 전질을 현질해주던 엄마 덕에 좀 읽었다. 내가 어렸을 때 레고가 처음 나왔는데 나는 레고가 무척 갖고 싶었지만 우리집에는 비싼 레고는 당연히 없고 비스무리한 짝퉁만이 조금 있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아니 저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수많은 의문들을 콩나물 시루 같이 빽빽한 학생들 속에 진도 나가는 것이 지상목표인 듯한 선생님들에게 제기하지 못하고 우물우물 삼켜버리는 습관을 반복학습하던 나는, 도덕 시간에 인생의 목표는 자아실현이라고 배웠고, 그것을 잘 하기 위해서 참 열심히 살았지만 더 잘 살기 위해 결혼해서 애를 낳고 난 후에는…
나는 책과 레고를 무진장 아이에게 공급하였고 아이의 잠재성을 행여라도 짓밟을까 두려워하며 비폭력대화로 아이를 키우고 힘들게 유치원을 보냈다. 그러나 아들은 유치원과 학교와 친구들에 적응하는 것을 힘겨워했다. 나는 피아노도 노래도 발레도 다 시켜줄 수 있지만 아들은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아했다. 단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어했고 책을 보고 혼자 놀았다.
만약 내가 아이들에게 완벽한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답은 대안학교나 이민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건 할 수 없었다. 우리는 할 수 없었다. 나의 자아실현도 어렵지만 내 아이의 자아실현은 정말이지 어렵다.
나의 냉장고는 더 크고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