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환기와 습도조절을 하고 소금물로 코세척을 하고 등등 아침 루틴을 하던 중에 방구석의 물건들을 보니 정리하고픈 생각이 났다. 좀 큰 일은 뒤로 미루고 책상옆 작은 서랍장 부근의 물건들만 좀 정리하던 중에 맨 윗서랍을 확 열었는데…
또르르 굴러나오는 동그란 것…
엊그제 레슨을 가려고 바쁘게 가방을 챙기는 와중에 이상하게도 이어폰이 안 보였다. 책상에도 맨날 두는 맨윗칸에도 안 보이고, 아 내가 비오는 날 혼자 음악회에 갔었다. 공연장 들어가기 전 까페에서까지 음악을 들었으므로 분명 그때까지는 나에게 있었다. 혹시 어두운 공연장에 떨군걸까? 아들과 같이 보려고 두 자리 예약했는데 아들이 안 오는 바람에 빈 좌석에 가방을 놓아두고 편하게 볼까 잠시 생각했다가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안 편하다는 걸 깨닫고 도로 가져왔는데 이때 뻥 뚫린 가방 위로 넘쳐서 떨어진걸까? 혹은 빗속에 버스 타러가는 길에 혹은 공연장 근처의 풀숲에 떨구었는데 어둡고 시끄러워서 몰랐던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
애타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찾아보고 혹시나 해서 맨아래 서랍까지도 찾아봤지만 안 보였다. 보통 외출했다 돌아오면 가방 속의 물건부터 제자리에 놓는데 그날은 너무나 피곤해서 대충 책상 위에 널부러놓고 그냥 잤었다. 그래서 이걸 어디 두었는지 어쨋는지 기억이 안 난다…
시간이 있다면 다시 한번 맨처음 있어야할 서랍부터 제대로 차근차근 다시 찾아보겠지만 레슨시간에 늦을 수는 없어서 일단 공연장에는 전화를 걸어서 분실물 없나 물어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보통은 다른데 다 찾다가도 안 나오면 집에 있으니까…
지하철 타고 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분실물이 없다고 한다. 알았다고 하고 끊었는데 내가 앉았던 좌석번호가 기억이… 난다! 얼른 다시 전화를 걸어 좌석번호를 알려주며 다시 한번 봐줄 것을 부탁했다. 마카롱같이 생겼어요. 빨간색 계통이라 혹시 양탄자가 빨간색이면 안 보였지 않았을까? 찾아봤는데 없다고 한다. 그렇게 포기를 하려고 하니… 선생님한테 그 이야기를 하니 무척 안타까와하신다. 내가 벌써 JVC 비싼 클래식용 유선이어폰 자랑을 했었나 보다. 8년이나 쓴 이어폰인데ㅜ;; 중간에 소니 무선 이어폰을 2년 썼지만 배터리 닳았다고 배터리 교체가 안 되니 이걸 버리고 새 제품으로 보상구매를 하라는둥 어이없는 얘기를 해서 됐습니다, 하고 다시 유선으로 돌아왔다는 얘기까지…
돌아서는 길에 나의 아쉬움과 애절함은 배가가 되고 응축이 되었다. 그 기운으로 집에 가는 길에 들러서 공연장에서 버스정류장 사이의 길을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정말이지 개고생을 하게 된다ㅜ;
우선 아무 생각없이 기차가 와서 뛰어가 탔던 나는 내가 내릴 역을 지나친 후에야 이 차가 급행인 줄을 알았다. 평시 안 타던 9호선을 탔더니;; 네이버지도로 검색을 해보니 환승역에 내려서 밖에 나가 버스를 타라는데 이미 퇴근시간에 접어들기 시작한 이 사람많고 어지러운 거대환승역에서 막힐게 뻔한 버스에 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지하철을 거꾸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급행이 왔다. 그래서 다시 기다렸다. 다행히 완행이 와서 타고 무사히 갔는데… 아파트 재개발 공사지역이라고 보행자 통로가 폐쇄된 것이다.
어쩐지 네이버지도가 여기 말고 옆역에 내려서 버스 타라고 하던데 나는 버스 갈아타기가 싫어서 10분 걷고 말지 하며 호기롭게 혹은 에너지 절약 혹은 건강을 위해 걷기를 선택했다가 아주 곤란하게 된 것이다. 차마 찻길은 갈 수가 없고 건너편 도로도 아주 복잡한 상황이라 어려울거 같아서, 네이버지도가 시키는 대로 버스를 타러 걸어갔다가 버스노선표를 보다보니 왠지 이상해서 다시 보니 왠걸, 이게 버스 하나가 아니라 두 대를 타야 가는 노선이다. 햇볕은 쨍쨍 아주 더운 오후-저녁이었다. 거대 공사장이 바로 옆이라 미세먼지를 우려해 마스크까지 쓰고서 나는 택시를 잡기로 결심했다. 몇분도 안 되는 거리를 가기엔 영 억울했지만 이 시간에 그 거리에 버스 환승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택시는 안 잡히고, 자세히 보니 건너편에서 택시를 불렀어야 빨리 간다. 이 차막히는 시간에… 얼른 길을 건너가다 보니 이미 택시가 잡혀서 취소를 하고 다시 택시를 부르는데 안 잡힌다;;; 그렇게 땡볕에 10분여를 기다리다가 겨우 택시를 탔다. 차가 막혀서 아주 오래 걸려서 겨우 공연장에 도착했다.
후회에 후회를 했다. 내가 혼자서 우산 들고 걷던 길을, 간만에 멋진 그림이 나올 만한 풍경에 신나게 사진을 찍던 길을 아주 느리게 다시 갔다. 그날도, 몇십년만에 나만의 자유시간이냐! 하고 좋아했지만 결국 혼자서 재미난 공연을 보는데 둘이서 여럿이서 온 다른 사람들을 보며 좀 쓸쓸해졌었다. 힘들고 짜증나더라도 아들을 데리고 갔어야 하나 후회도 되었다.
길에는 없는 것 같았다. 혹시나 몰라,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내가 앉았던 좌석 밑을 다시 내가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부탁을 하려고 보니까 담당자가 안 계시단다. 담당자가 전화로 지금 리허설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다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하셔서 그럼 알겠습니다 포기하려는데 아마도 십분 정도면 끝날테니 기다리시겠냐고 묻는다. 딸래미한테 걸려온 전화를 무시하면서 전화를 받던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담당자가 오시고, 다시금 가서 좌석 밑을 살피고, 정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친 후에야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돌아왔다.
많이 지치고 힘들고, 많이 허무했다. 이젠 무선 이어폰으로 트렌드가 다 넘어가서 이런 좋은 클래식 감상용 유선 이어폰은 딱 마음에 드는 것을 살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는데… 완전 비싼건데… 일자잭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선이 자주 꺾이기 때문에 선이 한번 끊어져서 10만원이나! 주고 선을 교체한 놈인데… 아이폰이 이어폰잭을 없애는 바람에 라이트닝 이어폰 젠더를 연장해 끼워서 다행히?! 그 이후는 선이 꺾일 일이 없어서인지 안 망가져서 단지 젠더가 맛이 가면 바꿔주면서 계속 앞으로도 십년도 더 쓸 수 있는 놈인데…
돌아와 아들에게 이어폰 잃어버린 이야기를 했다. 요즘 완전 사람을 열받게 하는 생활태도를 굳건히 시행하며 달라진 언사로 나를 놀라게 하던 아들은 굉장히 속상하시겠다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케이스가 겉보기에는 허접해보여서 그렇게 비싼 이어폰인지 모르고 쓰레기통에 버렸을지도 몰라ㅜ 아니, 그래도 잃어버린 데가 만약에 공연장 안이었다면, 만약에 어떤 양심없는 사람이 집어갔더래도 그게 비싼 건지 알아보고 잘 써줄지도 몰라… 엄마 그건 이해가 안 되는데요? 나의 심정은, 나의 개를 훔쳐간 양심없는 놈이 그래도 내 개를 잘 키워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란다.
내가 그걸 처음 샀을 때가 둘째 어린이집 다니던 땐데, 사는게 힘들어서 맨날 이어폰 꽂고 클래식-진정제 넣고서 살았는데, 왼쪽귀에만 꽂고 있어서 지금도 왼쪽귀만 좀 작게 들려. 진짜요? 응 내가 나이보다 귀가 좋은게 다 청소년기에 이어폰을 안 들어서 그렇다. 이어폰을 하루에 1시간 이내로만 들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지. 다른애들은 다 이어폰 꽂고 공부하다가 귀 나빠졌는데, 나는 그제서야 나빠졌어…
나는 위가 뻥뚫린 얕은 에코백을 겁도 없이 들고 다닌 것을 반성했다. 맨날 편하게 쓰는 이어폰이 굴러다니는데 뻥뚫린 에코백이라니… 다시는 이 놈을 들고 외출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면서, 아 또 사야 하나… 아니 며칠은 두고 보자. 애지중지 케이스째 모시고 다니는 클래식용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이 있으니까 당장은 어떻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오늘 아침 발견하였다.
맨윗 서랍 뒷쪽에 딸려들어가 있는 나의 이어폰을. 아… 기쁜 것인가? 아픈 것인가? 이걸로 여러 사람을 성가시게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개고생시킨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을 한다더니, 안쪽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데 바깥을 먼저 찾았으니 고생할 수밖에. 소서법에는 순거가 있는 법. 늘 자신에게선 이유를 찾지 않고 남에게서만 이유를 찾는다고 내가 타박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나도 마찬가지…다.
원래 물건찾기의 기본원칙이 그렇다. 맨처음 의심했던 장소를 철저히 수색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나는 이미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약속시간에 쫓기다보니 제대로 판단을 못 하고 대충대충 찾아보았고 그래서 찾을 수가 없었다. 일단 나가서 정해진 일정을 진행하고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으면 일정을 한 다음 다시 원칙대로 내 서랍-내 방-내 집-바깥을 향했었야 하는데, 내가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귀찮고 번거로운 길을 먼저 택했다. 공연장에 전화를 하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잃어버렸을지 모른다’가 ‘잃어버렸다’로 고정되고 내 아깝고 귀한 이어폰에 대한 애절한 마음만이 불타오른 것도 큰 원인이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원칙이었는데도, 내 마음이 급하고 좁아지면 쉽게 제끼게 되는 것인가. 5분 10분 늦더라도 중요한 것이라면 찾았어야 했는데, 나는 이미 잃어버렸거나 혹은 안 잃어버렸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약속을 안 늦게 가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다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혹처럼 커져서, 배보다 배꼽이 커져서 나를 흔들었다.
지금 나를 단속하더라도 또 실수를 향해 나아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금 나에게 말해준다. 안을 먼저 보고 밖을 보아라.
내 안에서 먼저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