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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Aug 03. 2019

나는 왜 지방을 먹기 시작했나

[저탄고지 후기 ①] 내가 저탄고지 식단을 시작한 이유


약 3개월 전부터 '저탄고지(탄수화물은 적게, 지방은 많이 먹는 식단)' 식사를 하고 있다. 의지박약의 끝판왕인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 우선 2주만 해보기로 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전체 식단에서 나쁜 탄수화물은 대폭 줄였고 좋은 지방은 더했다. 완전무결한(bulletproof) 것은 아니지만, 주말에 가끔 탈선을 하기도 하지만 핵심 원리 안에서 나름대로 식단을 지킨다.


배불리 먹으면서도 살을 빼는 다이어트 식단으로 유명한 저탄고지. 평생 다이어트 중이었지만 이번엔 살을 빼겠다는 의지는 크게 없다. 그럼 대체 왜 하냐고?


건강해지고 싶어


저탄고지 식단을 시작하기 한 달 전, 난 산후 여성을 위한 온라인 운동 프로그램 서비스를 준비 중인 소셜벤처로 이직했다. 피트니스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회사이니만큼 구성원 모두가 건강을 무척이나 챙겼다. 매일 건강을 위한 운동법, 식이법, 영양제 등을 공유하는 분위기. 40대에 막 진입한 대표와 연구소장은 지금이 당신 인생에서 최상의 몸상태라고 했다. 나와 같은 워킹맘인 그들도 여러 노력 끝에 건강한 몸을 얻었다고. 부러웠다.


이런 분위기에서 난 지금 내 몸 상태가 누굴 도울 처지가 아니라는 걸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래도 운동이라면, 체력이라면 어디 가서 뒤지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4년 간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연이어하며 내 몸은 말 그대로 황폐해졌다. 생기와 근육을 잃었고 처진 뱃살과 속근육(복직근, 골반저근)을 얻었다. 몸 구석구석을 지배해버린 근골격계 통증도 빼놓을 수 없다.


심각한 나의 몸 상태를 새삼 깨닫고 나니 이제는 진정 나 자신을 챙겨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 4년 만에 본격적으로 일에 복귀한 참이었다. 왕복 4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며 일도 하고, 두 아이도 돌봐야할 터. 게다가 끝을 알 수 없는 장기전이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라도 건강해야만 했다.


뇌가 맑아진다고요?


건강해지려면 뭐부터 해야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 옆자리 동료가 매일 챙겨오는 점심 도시락이 눈에 띄었다. 회사의 운동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연구소장이었는데 언뜻 샐러드와 닭가슴살이 보이길래 그저 체중 관리를 위한 식단인 줄 알았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특이점.


"이 덩어리들은 뭐예요?"
"버터예요."


두툼한 버터 덩어리가 도시락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건 저탄고지 도시락. 그는 저탄고지 식이를 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고 했다. "지방 흡입 빼고 다 해봤다"고 할 정도로 수십 년간 다이어트와의 전쟁을 치러온 그는 저탄고지가 체중 관리를 하기에 가장 좋은 식이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양질의 버터와 MCT오일 섭취가 포만감을 주기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허기가 지속된다면, 그 때문에 밤늦게까지 자주 먹는다면 이 식단으로 개선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체중 관리 외에 그가 가장 강조한 저탄고지의 장점은 따로 있었다. 피로가 사라지고 정신, 뇌가 맑아짐을 체감하고 있다는 거였다. 오랫동안 뇌기능 이슈를 갖고 있던 그는 저탄고지 식단을 한 이후 증상이 완화되고 있다고 했다.


눈이 확 뜨였다. 나 또한 두 번의 임신과 출산 후 뇌기능이 저하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특정 단어가 쉬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물론, 머리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대화 중 말이 꼬이기도 했다. 캐답답. 게다가 열 번을 불러도 모를 정도로 빠져드는 집중력, 전보다 잦아진 건망증 등에 대한 우려도 늘면서 뇌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물론 사서 걱정) 정말 저탄고지 식단으로 뇌를 깨울 수 있을까?


저탄고지 식이 입문서 중 하나이자 방탄커피(bulletproof coffee)를 만든 데이브 아스프리는 저서 <최강의 식사>에서 말한다. "생애 최초로 머릿속의 전구에 불이 켜져서 가장 강력하고 맑은 자아를 느끼는 상태"를 만날 것이라고. 이 문장을 본 순간, 내가 진정 무엇을 갈망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가슴이 뛰었다.


저탄고지 핵심, 탄수화물과 당 줄이기


내가 이해한 저탄고지의 식이의 핵심 중 하나는 좋은 지방 섭취량을 대폭 늘리고 당과 탄수화물의 섭취는 줄이는 것이다. '당과 탄수화물 섭취 축소' 또한 나에게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난 '빵순이', '탄수화물 중독자'로 스스로를 명명할만큼 탄수화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식이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아주 튼튼하고 포용력 있는 위와 장을 가진 게 문제였을까. 흰쌀밥, 빵, 떡, 과자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내 몸은 모든 걸 받아들였다. 한 번도 위장 장애로 애를 먹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빵 10봉지를 먹을 수 있는 내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먹고도 고도 비만이 되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하지만 어쨌든 살도 쪘고 늘 어딘가 불편했다.


책 <최강의 식사>는 당과 글루텐(모두 탄수화물에 들어있다)이 몸에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는지 아주 자세히 설명한다. 난 탄수화물 폭식이 나의 무엇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단순히 내 의지박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을 왜 더 이상 지속하면 안 되는지, 어떻게 중단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당을 먹으면 피곤해지고, 뇌와 호르몬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 비만이 촉진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슈거 크래시 sugar crash(당을 섭취한 뒤에 급격하게 떨어진 혈당이 원상 복귀할 때까지 오는 극심한 무력감)'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 말의 유래는 잘 모를 것이다. 당을 먹은 후에는 집중력과 에너지만 급격하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실제 혈당치도 급락한다. 인슐린은 췌장에서 분비되어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데, 당을 섭취하면 혈당이 상승하므로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된다. 그런데 췌장은 인슐린을 얼마나 방출해야 하는지를 잘 계산하지 못해서 대개는 지나치게 많이 분비하여 혈당을 급격하게 떨어뜨린다. 멍한 머리와 무력감과 강력한 식욕을 초래하는 '크래시(충돌)'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머릿속의 래브라도는 몸이 굶주렸다고 판단하고 인간 뇌에게 보내는 에너지를 줄인다.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쿠키를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있을 것이다." - 데이브 아스프리 <최강의 식사> 103p


"내 경우는 토요일 밤에 글루텐을 먹으면 월요일 아침에는 머릿속이 몽롱하고 뿌옜다. 글루텐이 든 곡물은 중독성이 있다. 글루텐은 장에서 글루테오모르핀으로 분해되는데 이 화합물은 헤로인 같은 마약과 똑같이 뇌의 수용체를 자극한다. 만일 래브라도 뇌가 곡물을 소화하면서 생성된 마약에 '중독'되면 인간 뇌는 마지막으로 곡물을 먹은 후 며칠간은 끝없는 공복감과 맹렬한 식욕을 경험하게 된다. (중략) 나는 이 문제와 몇 년씩이나 씨름했다. 글루텐과 곡물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치팅데이에 '딱 한 조각만' 먹는 식으로 조절했는데, 그러면 다음 날 래브라도 뇌가 '딱 한 조각만 더'하며 꾀어 댔다. 나는 머지 않아 글루텐이 유발하는 체중 증가와 멍한 머리라는 위험한 비탈길로 곤두박질쳤다. 마약 중독자가 '딱 한 번만'으로 끊지 못하듯 글루텐이 든 곡물을 딱 한 조각도 먹지 말아야 한다." - 데이브 아스프리 <최강의 식사> 111p


내 몸뚱이라도 내 맘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두 살, 다섯 살인 아이들은 점점 통제하기 어려워졌다. 계획을 세웠다가도 아이들에게 일이 생기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아이들에게 발목 잡혀 뒤처지는 것만 같았다. 조바심, 걱정, 자존감 하락과 같은 심적 불안이 찾아오는 날이 잦아졌다. 답답한 현실에 불안까지 더해지니 점점 더 무기력해졌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새로운 일터에서 일을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일터에서 작게나마 나의 공간을 되찾으니 숨이 트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아프고, 사고 치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건강을 되찾기로 한 것, 저탄고지 식단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사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어서다. 지금 상황에서 진정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뚱아리 하나 뿐. 단순하게 좋은 것을 먹고, 나쁜 것은 먹지 않는 것. 이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20대 시절 운동에 심취했을 때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사람도, 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에 운동을 시작했다. 내 몸, 내 자신 스스로를 콘트롤 하면 내 삶 전체를 콘트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1-2시간의 운동 시간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선택한 게 '식단 조절'. 그중에서도 '저탄고지'다.


아직은 '야매' 수준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러나 하나씩, 하나씩 완성해나갈 것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저탄고지 식단을 실천하고 있는지,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가려고 한다. 극적인 다이어트 성공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일상의 작은 성취에서 얻은 기쁨과 삶의 원동력이 기록되길 바랄 뿐.


다시, 건강해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탄수화물 폭식에서 벗어나 내 몸을 콘트롤하고 '가장 강력하고 맑은 자아'를 얻기 위해 저탄고지 식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극적인 다이어트 성공기는 아닐테지만 건강을 위한 일상의 작은 성취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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