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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Jan 10. 2019

애 둘 낳고, 왜 하필 지금이야?

애둘맘이지만 강렬하게 나를 찾고 싶어


나는 한참 손이 많이 간다는 40개월, 11개월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동시에 스타트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응?


어디 나가서 이런 상황을 얘기하면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놀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라는 놀라움과 '그럼 애는 누가 봐?'라는 우려가 섞여있는.


현실적으로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고3 때보다 더 빡세게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쓰면 된다. 그렇게 쓰고도 시간이 모자를 땐 남편은 물론이고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의 도움을 빌어가며 시간을 구걸한다.


이렇다 보니 점점 두꺼워지는 것은 철면피요, 점점 얇아지는 것은 나의 유리 멘탈.



나의 스타트업은 아직 초기라 지지부진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나지만 더욱 시간이 필요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힘들다. 솔직히 많이 힘들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누가 봐도 내 상황이 스타트업을 할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체력적으로 지친 것은 이미 오래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점점 힘이 빠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 하필 지금이야?


자책도 많이 한다. 왜 애를 둘이나 낳아놓고 이 난리를 벌이고 있는지.


사춘기에도,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도, 취업 준비를 할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나였는데 애를 둘이나 낳고 나서야 '나'를 찾겠다고 방황하는 나 자신을 감당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책하고 자문하며 스스로 더 가혹하게 군다.


그런데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지금이어야 한다는 거다.



사실 난 두 아이를 낳고 기르기 전까지 스스로 소진될 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적이 그다지 없다. 늘 시간도 기회도 충분히 주어졌기에 그저 난 내 삶을 안전하게 영위하기 위한 선택을 할 뿐이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고 기를 때까지도 그랬다. 운이 좋았다.


그런데 두 아이를 기르는 것은 정말이지 날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지만 아침 7시에 눈을 떠 아이들이 모두 잠드는 (빨라야) 밤 11시가 돼야지만 혼자가 될 수 있는 이 풍요 속의 빈곤 같은 사이클을 매일 반복하는 괴로움. 먹이고, 재우고, 치우고, 놀아주고… 모든 욕구를 내 손으로 도와야 하는 존재가 완전히 날 의지하고 있다는 부담감(그것도 둘이나!) 등.


처음으로 완전히 나를 잊고 지낸 시간이었다. 심지어 난 친정엄마와 남편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모냥 이 꼴로 너덜너덜 만신창이.


이러다 정말 내 인생 망하겠다.


지금은 육아를 위해 일을 쉬는 시기이기도 하다. 완전히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권리이기 때문에 이 시간을 아이들을 위해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 시간들이 나를 망치고 파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완전히 나를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나를 잃으면 평생 나를 다시는 찾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를 찾아야 할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아이를 위해 나를 바쳐야(!)하는 바쁜 시기이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더 바짝 긴장할 테다.


'나'에 대해 돌아보고 '나'를 찾기 위해 치열해지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물론 방법도 다르다. (꼭 스타트업 아니어도 가능, 그릇이 큰 분들은 육아로도 자아실현 가능)


하필 애 둘 낳고 다소 엉뚱한 시기에 찾아온 듯한 나의 자아실현 타이밍,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나 자신을 지켜야 할 때도 없다.


생각해보니 요즘의 '엄마 열풍'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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