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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Jun 18. 2024

기어이 닫힌 마음을 파고든
별것 아닌 선의

[센텐스로그] 책 <별것 아닌 선의>를 떠올리게 한 커피숍에서 생긴 일


자료 사진: Unsplash의 Trinity Treft


이번 센텐스로그를 발행하려고 어렵고 복잡한 것들을 잔뜩 썼다가 모두 지웠습니다. 아침에 커피를 사다 겪은 일을 기록하고 또 얘기하고 싶어졌거든요. 무슨 대단한 일이냐 싶겠지만, 사실 별것 아니었습니다.


가끔 아침에 커피를 사러 들리는 집 앞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능하면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때문에 단골도 아니고 점주가 직접 나오지 않는 대형 프랜차이즈라 직원도 자주 바뀌어 친근한 동네 가게도 아닙니다. 포장 주문은 매장 밖에 설치된 키오스크로 하기 때문에 직원과 말을 섞기는커녕 서로 얼굴도 스치지 않죠.


오늘도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 버튼을 누르던 그때, 갑자기 커피를 전해주는 창문에서 “고객님~”하며 얼굴이 튀어나옵니다. 놀라 쳐다보니 직원분이 난처한 표정으로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서 음료를 만들어 드려도 되겠냐”고 물으셨죠.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괜찮으니 천천히 다녀오시라 말씀드리고 커피를 주문한 후 기다렸습니다. 10분도 안 되었을 것 같은데 직원분이 헐레벌떡 뛰어오시며 연신 죄송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빨리 만들어 주신다길래 “천천히 하셔도 된다"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소리를 듣고 향한 카운터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커피를 내주시는 직원분께서는 환한 얼굴로 감사하다며 작은 간식을 같이 건네셨어요. 전혀 예상치 않았던 호의라 더 놀랐습니다. “별일 아닌데요.”라고 말하면서도 순식간에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죠. 처음으로 그곳에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책 <별것 아닌 선의> 표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 <별것 아닌 선의> 떠올리고 오늘의 ‘별것 아닌 선의'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의 경향신문 칼럼을 엮은 <별것 아닌 선의>. ‘뭐 이런 것까지’ 싶을 정도로 여러 작은 선의를 그러모은 책은 냉소하기 쉬운 현실에서 위선이라 한 소리 들을지언정 선의를 하나 더하고, 더합니다. 이 선의가 모여 미약하나마 서로를 돌보고, 서로가 상처 대신 공감과 연민을 나누길 소망하며 말이죠.


최근 1년 가까이는 지금까지 제 인생사에서 가장 굴곡과 부침이 많았습니다. 건강도, 일도, 관계도 엉망이 될 뻔했죠. 자책과 원망을 반복하다 제풀에 지쳐 냉소라는 높은 담벼락을 쌓고 누워만 지낸 날도 많았습니다. 누워서도 지옥 같은 마음으로 괴로워했고요.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것은, 그리고 결국엔 담을 허물고 넘어 꾸역꾸역 나아가게 한 것은 작은 선의였습니다.


맛있는 거 먹자고 영화 보자고 글 쓰자고 자꾸 불러내 준 룰루랄라김치,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때 “차라리 더 푹 쉬라”고 집을 비워준 배우자, 소설이니 훌라니… 새로 쌓아가는 작은 일을 기꺼이 응원해 주는 친구들, 혼자 조용히 뛰고 오려던 마라톤에 사진 찍어주겠다며 동행해 준 언니, 유방암 정밀검사 시술을 하는 내내 “아프면 내 손을 더 꽉 잡으라”고 곁을 내어준 의료진.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한 여러 미소한 선의는 여유를 찾기 어려웠던 마음의 아주 좁은 틈새를 찾아 기어이 파고들었습니다. 곳곳에 자리 잡은 깨알 같은 선의는 어느새 마음의 틈을 벌려놓았고 제게 조금씩 여유를 되찾아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말들은 이 여유에서 흘러나온 것이겠죠. 여유가 없으면 말부터 날카로워지는 법이니까요.


모든 일을 선의나 호의에만 기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압니다. 지금은 별것 아닌 선의에 들떠 이 글을 후다닥 써내렸지만, 내일은 또 예상치 못한 어떠한 일로 인류애가 바스러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내일의 짜게 식을 기분을 버텨낼 자신이 있습니다. 제겐 오늘 커피숍 직원이 건네주신 간식, 작은 선의가 있으니까요.


“어두운 터널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깨닫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 터널이야말로 찬란했음을. 그리움에 사로잡혀 뒤돌아보던 우리 머리 위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었다는 사실을. 이 역시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을 것임을.” - 책 <별건 아닌 선의> 중


‘큰일'만을 갈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런 작은 선의에 얼마나 주목했었나 돌아봅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을 쓰며 어두운 터널 안에 들어서는 때에야 작은 것들의 반짝임을 알아차리는 제 미숙함을 뼈아프게 깨닫고 고백하고 기록합니다.



Written by 아침 커피를 종일 아껴 먹으며 ‘별것 아닌 선의’를 만끽한 치즈




책 <별것 아닌 선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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